요즘 전세계가 기막힌 '이탈리안 잡'에 다시 한번 깜짝 놀라고 있다. 지난 24∼25일 치러진 총선에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최악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온갖 스캔들의 주인공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불사조처럼 부활한데다가, 반기성체제와 반긴축재정을 부르짓은 신생정당 '오성운동'이 향후 정국의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이 된 것이다. 기성체제의 상징인 베를루스코니와 반기성체제의 오성운동이 동시에 국민지지를 받은 셈이다. 중도좌파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실타래처럼 꼬이고 꼬인 정국을 풀어나가기엔 역부족이다. 그 결과, 총선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이탈리아는 사실상 무정부상태이다.
이탈리아의 국가총부채는 2조유로, 국내총생산(GDP)의 120%가 넘는다. 지난 2011년 말 베를루스코니는 국가운영의 실패를 자인하고 마리오 몬티에게 총리직을 넘긴 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던 그가 극적으로 부활한 데 대해 세금환급 약속 등 돈살포 전략이 통했다느니, 언론재벌의 파워가 새삼 입증됐다느니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늘 '강한 남자(uomo forte)'를 선택해온 이탈리아 국민들의 성향도 원인으로 꼽힌다.
베를루스코니와 '오성운동'의 베페 그릴로가 정치성향 면에서는 정반대이지만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란 점에서 '강한 남자'강박관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에서야 통일국가가 성립됐을 만큼 국가의식보다는 지역주의 또는 개인주의가 강한 전통,지나치게 혹독하게 밀어부친 긴축정책도 이번 총선결과를 낳은 중대요인 중 하나이다.
문제는 유로존 4위, 유럽 3위 경제국가인 이탈리아의 정치위기로 인해 이제 겨우 회생기미를 보이고 있는 세계경제가 다시 앞날을 알 수없게 됐다는 점이다. 당초 예상보다 늦은 유럽경제 회복은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는 2차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서 1960∼70년대에 '유럽의 이머징 국가'로 불릴 만큼 초고속 성장을 이뤘던 국가이다. 패션, 디자인, 영화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개했던 것이 바로 그때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저성장을 계속하고 있는데다가, 이제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마저 현실을 외면하는 바람에 이탈리아 전체가 바닷 속으로 가라앉는 베네치아가 되고 있다는 치욕적인 소리까지 듣고 있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호소처럼 이탈리아 국민들이 과연 중용과 현실주의, 책임감을 회복해 국가적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해낼 수있을까. 세계가 지금 이탈리아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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