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짜르 향수에 빠진 러시아

bluefox61 2013. 12. 13. 15:55

로마노프 왕조(1613∼1917년)  400주년을 계기로 러시아에서 왕정 시대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역사에서 왕정이 사라진지 96년, 소비에트체제가 붕괴된지 20여년만에 러시아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왕실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고 모스크바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FT), 보이스오브러시아 등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 11월 한달동안 모스크바를 뜨겁게 달궜던 전시회 '로마노프: 나의 역사'는 왕실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관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러시아 정교회, 문화부, 모스크바 시가 공동주최한 이 전시회는 로마노프 왕조의 1대 짜르(황제) 미하일 1세부터 볼셰비키 혁명으로 강제폐위돼 처형당했던 마지막 짜르 니콜라이 2세까지 로마노프 왕조의 역사와 유물을 한 눈에 볼 수있다는 점때문에 관람객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크렘린 인근의 마네즈나야광장에 있는 역사박물관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몇시간씩 줄을 서며 기다리는 모습이었다고  FT는 전했다.   


올해는 로마노프 왕조가 세워진지 꼭 400주년이 되는 해. 1대 짜르의 즉위식이 치러진 날인 지난 2월 2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 정교 최고 지도자 키릴 대주교의 집전으로 기념 미사가 열렸다. 이 기념미사에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 유럽 곳곳으로 흩어졌던 왕실 후손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1918년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티에프 하우스에서 가족과 함께 총살당했던 니콜라이 2세를 추모하는 미사가 열렸고, 지난 11월 4일에는크렘린 궁에서 왕실 무도회를 재연하는 행사가 처음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올 한해 내내 이어진 로마노프 왕조 400주년 기념행사들을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사실상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그 배경과 의도를 둘러싼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러시아의 영광스런 과거 역사를 되살려내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쳐왔으며, 최근에는 역사학자들에게  러시아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도록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중고생들을 위한 교과서들은 학생들의 연령을 고려해 제작해야 하지만 단일한 개념과 단절되지 않는 러시아 역사의 논리, 시대별 연관 관계, 과거 역사에 대한 존중의 틀 안에서 제작돼야 한다"면서 " 내부적 모순이나 이중적 해석을 배제한 새로운 러시아 역사교과서"를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로마노프:나의 역사'전시회 개막식에 직접 참석하기까지 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3기 집권에 들어서 권위주의적 통치스타일에 대한 거센 비판을 잠재우고, 시민 자율성보다는 국가의 안정과 외세 개입을 배격하는 '푸틴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역사와 왕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적지 않다. 


심지어 푸틴이 21세기 짜르가 되려는 야심을 숨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로마노프:나의 역사' 전시는 푸틴시대의 발전을 묘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푸틴 덕분에 소비에트 체제 붕괴이후  혼돈을 모두 극복하고 러시아가 제2의 도약에 성공할 수있었다는 식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번 전시회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왕정시대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는 추세이다. '전 러시아 여론조사 센터'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28%가 짜르 통치체제의 부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짜르가 됐으면 좋겠는가'란 질문에는 6%가 로마노프 혈통의 왕족, 13%는 현재 활동 중인 정치인을 짜르로 임명하자는 의견을 나타냈다. 


어떤 정치인이 짜르가 됐으면 좋겠는가란 질문은 이번 여론조사에 포함돼있지 않았으나, 누구나 특정인물을 쉽게 떠올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짜르는 과거의 역사로 남겨두자"는 의견이 67%여서, 왕정 부활에 대한 반대의견이 아직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