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미국 캘리포니아 소인이 찍힌 편지 한장을 받았다.
발신인은 스펜서 H 김. 지난해 11월말 눈 속에 갇힌 아내와 어린 두딸을 구하기 위해 오리건주 로키산자락을 헤매다가 1주일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던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김의 아버지다. 그의 짧은 영문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당신이 보내준 위로와 관심에 아내 미아와 나는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에, 위로의 메시지는 우리 삶에 빛을 가져다줬습니다. 제임스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밝게 빛날 겁니다. 우리 가족은 삶의 길을 따라 앞으로 걸어나가겠습니다. 또한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방식을 바꿔나가도록 촉구하는 노력을 통해 제임스를 기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편지 안에는 그가 지난달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내 아들의 죽음이 남긴 교훈’이란 글의 복사본, 그리고 퍼시픽 센추리 재단의 이번달 행사와 관련된 안내장이 동봉돼 있었다. 퍼시픽 센추리 재단은 우주항공산업으로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스펜서 김이 설립한 비영리재단으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미국 간의 보다 폭넓은 교류와 이해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안내장은 오는 22일 개최되는 ‘2007년 애뉴얼 디너’행사 때 미국내 아시아 커뮤니티에서 괄목할 만한 활동을 보여준 톤 누 티 닌 주미 베트남 대사에게 ‘다리놓기 상(Building Bridge Award)’을 수여한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죽음을 감수한 가족애로 큰 화제와 감동을 낳았던 제임스 김의 아버지 스펜서 김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여름이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한국교민들은 물론 워싱턴 정가의 한국통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한국계 사업가이자 사회활동가였다.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그림 같은 목초지에 자리잡은 그의 어마어마한 저택과 말들이 뛰노는 목장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뜨겁고 열정적인 그의 성품이었다.
20대 초반 시절 거의 빈손으로 유학생활을 시작해 자수성가했다는 그의 당시 최대 관심사는 “미국내 한국교포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미국 주류사회, 문화, 정치 속으로 파고들 것인가” 인 듯보였다. 또한 조국땅의 동포들이 편협한 국가관, 민족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와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스펜서 김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것이 바로 그가 퍼시픽 센추리 재단을 세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외신을 통해서 접했던 제임스 김의 죽음이 특별히 더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아버지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미교포사회의 성장을 위해 정열적으로 뛰었던 스펜서 김 가족이 겪고 있을 좌절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이해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재단 등 각종 단체를 통해 그가 추진해왔던 사회활동이 위축될 것이 내심 우려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위로 편지에 대한 답장형식으로 날아온 스펜서 김의 편지는 그런 걱정이 어쩌면 기우에 불과했을 것이란 점, 무엇보다도 불행을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는 한국인들의 끈질긴 힘과 저력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요즘 미국언론들을 통해 재미 한국동포들에 대한 소식이 자주 전해져오고 있다.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를 비롯해 방송 연예계뿐만 아니라 백악관, 의회 등 정계에서도 한국계 파워가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마침 뉴욕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도시미래센터’는 7일 보고서에서 “로스앤젤레스, 뉴욕, 휴스턴 등 대도시에서 한국 등 이민자 출신 기업이 미국의 진짜 경제엔진”이라고 지적하며, 재미교포사회에 대해 “교육수준이 높고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급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보고서가 빼놓은 것이 하나 있다. 재미 한국인들이 이제는 개인의 성공차원을 넘어서, 자신이 속한 더 큰 공동체와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슬픔과 고통이 행간에 묻어나는 스펜서 김의 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기분좋은’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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