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1894년과 2014년

bluefox61 2014. 7. 8. 17:31

 1894년 7월 25일, 아산만 풍도 앞바다가  대포소리로 요동쳤다. 일본 순양함 부대가 청(淸)의 군함을 향해 대포를 쏜 것이었다. 일명 '풍도해전'에서 일방적으로 청을 제패한 일본은 8월 1일 청을 상대로 정식의 선전포고를 한 후 승승장구를 거듭하다가 9월 15일 평양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하루 뒤 청군은 결국 평양을 포기하고 압록강 건너 후퇴했다. 한 해 전 갑오농민전쟁이 발생하자 당황한 조선의 요청을 받고 한반도에 들어온 청군이 일본군에 쫓겨나가는 순간이었다. 9월 17일 일본군은 압록강 하구에서 청의 북양함대를 격파한 기세를 몰아 중국 본토로 진격한지 약 두 달만인 11월 2일 뤼순(旅順)을 점령했다. 

 

   <청일 전쟁 당시 상황을 묘사한 일본의 그림. 위 그림에는 '조선 안성', 아래 그림에는 '평양'이라고 쓰여있다.


 올해와 내년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역사 흐름을 바꿔놓은 굵직굵직한 사건이 유난히 많이 일어난 해이다. 우선 7일은 중·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일명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이 일어난지 77주년이 되는 날이다. 1931년 괴뢰정권 만주국을 세웠던 일본은 1937년 7월 7일 밤, 베이징(北京) 남서쪽 외곽에 주둔하던 자국 군인이 야간훈련 중 실종되자 중국군 탓으로 돌리며 베이징으로 연결되는 요충지인 루거우차오를 점령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했고, 전쟁은 1945년 9월 2일 일본이 미군함 미주리호에서 태평양전쟁 항복문서에 서명할때까지 8년동안 이어졌다.


 오는 25일은 제국주의 야욕에 불타는 일본과 중국 청이 한반도 땅에서 정면 충돌한 '청일전쟁'이 발발한지 꼭 120년이 되는 날이다. 1895년 4월 일본은 시모노세키(下關) 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을 파기시킴으로써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했으며, 타이완(臺灣) 등을 장악하고 막대한 보상금까지 챙겼다. 이 때 확보한 재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대폭 키운 일본은 10년 뒤인 1905년 러·일 전쟁에서도 승리했고, 같은해 7월 29일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 육군장관과 일본의 11대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는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일명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내년은 한국에겐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며, 중국에겐 중·일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 '종전 70주년'이고,일본에게는 '패전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렇듯, 올해와 내년에는 한국·중국·일본 간에 '역사적 지뢰밭'이 유난히 많은 해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주석은 "내년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와 중국의 항일전쟁승리, 한반도의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갖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우리 정부는 일단 화답은 했지만, 가뜩이나 경색된 한·일관계가 더 경색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관계까지 얽혀 있으니, 한반도에서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벌였던 120년 전의 동아시아 상황과 비교해 더 복잡하면 복잡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1894년과 2014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무기력하게 한반도를 전쟁터로 내줬던 과거와 달리 이제 한국은 당당한 주권국이자 세계 10위 권의 경제강국이다. 박근혜 정부가 과연 높아진 국력에 맞는 수준높은 외교력을 발휘할 것인지, 지금 국민은 무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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