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이-팔 사태 새 변수로 떠오른 하마스 지하터널

bluefox61 2014. 8. 1. 11:19

 지난 17일 새벽, 이스라엘 수파 키부츠(집단공동체) 인근 풀 섶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이스라엘 방위군(IDF) 의 적외선 카메라에 포착됐다. 갑자기 땅 속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 검은 형체의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듯 두리번 거리더니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손에 하나같이 총으로 보이는 물체를 들고 있었다. 그 순간 이스라엘 군이 분주해졌다. IDF 본부는 가까운 곳의 부대에 긴급 연락했고, 현장에 급파된 이스라엘 군과 괴한들 간에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IDF는 이튿날, 가자의 무장정파 하마스 소속 대원들이 지하터널을 이용해 분리장벽 너머 이스라엘 수파 키부츠 부근까지 침입했으며, 이스라엘 군과의 교전으로 13명이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4일 뒤인 21일, 이번에는 니르 암 키부츠 부근에  하마스 대원 10여명이 지하터널을 이용해 출몰해 이스라엘 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날 교전으로 하마스 대원 전원과 이스라엘 군인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팔 사태 새 변수 , 하마스 지하터널= 하마스의 '지하터널'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 지하터널은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세운 높이 8m짜리 분리장벽과 봉쇄를 뚫을 수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에겐 '생존의 터널'인 셈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인들에게 하마스의 지하터널을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집 앞마당이나, 학교 운동장 한가운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튀어나와 총을 난사하거나 주민을 납치해 끌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는 지하터널을 통해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에게 납치돼 가자로 끌려갔으며, 5년 뒤에야 인질교환 형식으로 풀려났다. 따라서 가자 분리장벽과 가까운 키부츠들에서는 최근 지하터널 공포에 때문에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주민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정부와 군은 가자의 유치원, 유엔 난민센터, 병원 등 민간시설을 폭격해 수많은 어린이들을 살해한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마하려는 듯, 이스라엘 군이 찾아낸 지하터널을 CNN, BBC 등 해외 언론에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IDF가 하마스 대원들을 포착한 적외선 카메라 사진을 신속하게 내외신에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밀수터널'과 '군사터널'=가자지구 인근에서 하마스의 지하터널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전부터이다. 지난 2006년 가자에 하마스 정권이 들어서자 이스라엘이 분리장벽을 쌓고 봉쇄를 단행한 이후 지하터널은 최소 수백개, 최대 1000개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터널은 이집트 쪽으로 난 '밀수 터널'과 이스라엘 쪽으로 난 '군사공격용 터널 '로 크게 나뉜다. 이스라엘의 봉쇄 때문에 극심한 생필품 부족을 겪고 있는 가자주민들은 '밀수 터널'을 통해 이집트 쪽으로부터 담배·약 등 작은 물건부터 염소·가사도구·가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몰래 들여온다. 심지어 자동차가 지하터널을 통해 가자로 들어왔다는 소문도 있다. 일부 터널은 하마스가 직접 관리하면서 주민들로부터 일종의 '통행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 곳을 통해 무기를 밀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밀수 터널'도 예전같지 않다.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정부가 이스라엘의 봉쇄로 고통받는 가자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지하 밀수터널을 사실상 눈감았던데 비해,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압델 파타 엘시시 정부는 정반대 노선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이집트가 올해 들어서만 파괴한 지하터널이 약 1600개에 이른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지하터널 ='군사공격용 터널'은 분리장벽 넘어 이스라엘 쪽에 집중돼있다. 최근 이스라엘 군은 가자지구 안팎에서 60∼70개의 지하터널을 찾아내 파괴했다. 가자 쪽 입구는 대부분은 민간시설의 지하에 숨겨져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주장이다. 짧은 것은 수백m, 긴 것은 수km에 이른다. 정확한 터널 갯수는 아무도 모른다. 터널 시설은 갈수록 정교화되는 추세이다. 최근 에인 하슐로샤에서 발견된 지하터널 경우 콘크리트로 마감처리가 돼있고, 전기선과 통신선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하마스 대원들이 먹다 남긴 과자와 물, 로켓 추진 수류탄, 자동화기, 납치용 마취장비, 플라스틱 수갑, 이스라엘 군복 등이 발견됐다. 군 전문가들은 이같은 터널 한 개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기간을 최소 1년, 최대 3년으로 추정한다. 이스라엘 군의 음파탐지를 피하기 위해 직접 손으로 파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1개 건설비용으로 100만∼200만 달러가 들어갔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스라엘 군은 최근 지하터널 전담 작전팀도 만들었다. 일명 '페렛 작전'이다. 땅굴을 파는 습성을 가진 족제비과의 동물 페렛에서 따온 명칭이다.

 ◆봉쇄해제가 먼저냐, 터널 파괴가 먼저냐 =하마스의 지하터널을 둘러싼 갈등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비슷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주민들을 '말려죽이기'위해 먼저 봉쇄를 단행했기 때문에 터널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테러 터널'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군사공격을 멈출 수없다는 입장이다. 가자의 정치학자인 므카히마르 아부사다는 지난 26일 미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휴전에 합의하고 봉쇄를 풀면 하마스도 지하터널을 포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8일 연설에서 하마스의 지하터널을 '테러 터널'로 부르면서 "우리의 시민과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지하터널을 완전히 없애기 전까지 (가자) 작전완수란 없다"며 강경입장을 재확인했다. 

 

 지하 터널의 유용성을 일찍이 활용해온 이들은 팔레스타인 하마스 뿐만이 아니다.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지역과 아시아 지역에서도 지하 터널은 물품 보급로이자 은신처, 작전기지 등으로 사용돼왔다.
 뿌리깊은 종파적, 정치적 갈등으로 매일같이 교전이 발생하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지하 터널은 효과적인 전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시리아 반군은 최근 정부군 기지를 겨냥해 지하 터널을 파고 그안에 설치한 폭약을 터뜨리는 방식의 작전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30일 주요 반군 세력 중 하나인 이슬람전선이 알레포 지역에 뚫어 놓은 3개 지하 터널에 폭발물을 설치한 후 터트려 정부군 십수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5월에도 반군조직은 정부군 기지로 활용되던 알레포 호텔 지하 터널에 폭탄을 설치하고 이를 원격 조정으로 터뜨려 수십명을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가 북한의 기술 지원을 받아 지하터널을 건설해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 워싱턴DC 지방법원은 2006년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등 공격을 감행했던 레바논 헤즈볼라가 북한의 원조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북한이 레바논 남부 지역에 지하 터널과 벙커, 창고 건설을 지원했다고 판결했다. 게릴라전에 강한 헤즈볼라는 과거 이스라엘 등과의 전투에서도 지하 터널 은신처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기습공격을 가하는 전술을 사용해왔다.
 아시아에서 널리 알려진 지하 터널 중 하나는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이 미군과의 전투를 위해 호치민시 구찌지역에 만든 이른바 '구찌 터널'이다. 길이 250km, 깊이 지하 3m~8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구찌 터널은 베트콩을 위한 일종의 지하요새로 터널 안에는 병원과 침실, 회의실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콩이 1968년 1월 말 새해 테트를 맞아 미국과 남베트남의 군사 시설을 대대적으로 공격했을 때에도 구찌터널이 작전기지로 사용됐다.
 미얀마에서는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지하 터널들이 비밀리에 대거 건설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얀마 망명언론들의 모임인 '버마 민주주의소리(DVB)'는 지난 2009년  600∼800여개에 이르는 지하 시설 및 터널이 미얀마 곳곳에 건설되고 있다고 공개했다. 당시 북한 기술고문들이 미얀마에서 지하터널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다수 발견돼 미얀마 군정과 북한과의 협력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핵개발 의혹을 받았던 미얀마 군정이 북한으로부터 핵심 설비를 들여오기 위해 터널을 설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미얀마는 이같은 주장을 부인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