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이라크 사태 속에서 주목받는 쿠르드

bluefox61 2014. 8. 25. 06:57

이라크 내 소수 민족 쿠르드 자치지역인 '쿠르드자치정부(KRG)'가 이라크는 물론 중동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KRG는 미국과 손잡고 수니 극단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공격해 승리를 거두는가 하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각국으로부터 정치적, 외교적 지원을 얻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2011년 미군 철수이후 또다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극도의 혼란 속에 빠진 이라크에서 KRG는 유일하게 정치적 안정과 안보, 경제성장의 세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라크가 시아, 수니, 쿠르드로 3등분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KRG는 새로 출범하는 이라크의 하이데르 알 아바디 총리 체제의 성패를 좌우할 '킹메이커'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라크 내전 위기의 최대 수혜자가 KRG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


미군의 이라크 재개입 결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KRG는 18일 IS가 장악하고 있던 모술댐을 탈환하는 성과를 올렸다.  IS와의 전투에 이라크 정부군도 참여했지만, KRG 군조직 '페쉬메르가(쿠르드어로 '죽음과 맞서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라크 정부군과 페쉬메르가는 여세를 몰아 IS가 장악하고 있는 티크리트 탈환을 위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같은 성공적인 군사작전을 통해 KRG는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입지를 굳건하게 다지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이라크의 분열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KRG에 대한 군사지원을 꺼려왔던 것과는 180도 달라졌다. KRG의 페쉬메르가는 백척간두에 선 이라크 중앙정부는 물론, 이라크 전략실패의 위기에 직면한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연정으로 정치안정 이뤄


이라크 북부에 주로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1980년대 말까지 사담 후세인 정부의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후세인 정부는 1991년 북부 쿠르드 지역의 실질적인 자치권을 인정해줬으며, 이라크전 발발 이후인 2005년 새 헌법에 따라 합법적인 자치정부인 KRG가 수립됐다. 대통령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마수드 바르자니이다.
 

쿠르드 족의 역사는 분열과 반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라크는 물론 터키, 이란, 시리아 등 각국으로 흩어져 살아온데다가 패권다툼으로 동족상잔을 벌인 적도 있다. 그러나 2005년 KRG가 출범한 이후부터는 비교적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바로 연정체제이다. 양대 정당인 이라크쿠르드민주당(KDP)와 쿠르디스탄애국동맹(PUK)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것. 


대통령(마수드 바르자니)과 총리(네셰르반 바르자니)는 KDP, 부총리(쿠바드 탈라바니)는 PUK가 맡는 식이다. 온건 수니파인 바르자니 대통령은 세계 각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강력하면서도 실용주의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대 약점은 부패와 혈연정치이다. 쿠르드 저항의 역사가 곧 바르자니 집안의 역사일 정도로, KRG에서 바르자니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KRG 내 주요 사업체가 바르자니 집안 소유란 소문도 있다. 대통령과 총리는 삼촌-조카 사이이다.

 



비약적인 경제성장


KRG 경제는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비약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KRG의 국내총생산(GDP)는 2013년 기준 약 1687억달러(약  172조 원). 1인당 국민총생산(GNP)는 약 9600달러로, 10년 전인 2003년에 비해 무려 10배나 올랐다. 연평균 성장률은 7.4%나 된다. 


주 수출품은 원유로, 약 450억 배럴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이라크 전체 매장량의 3분의 1이 채 못되는 규모이지만, 미국 매장량의 배가 넘는다. 2015년에는 하루 100만 배럴을 생산하고, 2020년부터 하루 200만 배럴을 생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에는 터키와 연결된 송유관을 건설, 이라크 중앙정부를 거치지 않고 터키에 원유를 직수출할 계획이다. 물론 이를 둘러싼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독립이냐, 연방 내 영향력 증대냐


BBC, CNN, 포린폴리시 등 외신들은 역사상 한번도 국가를 가져 본 적이 없는 '비운의 민족' 쿠르드가 이라크로부터 분리독립할 수있는 환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다고최근 분석했다. 바르자니 대통령은 지난 6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주민투표를 거쳐 분리독립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KRG에 '이라크 통합유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독립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KRG가 일단은  현재와 같은 자치정부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되, 알 아바디 정부로부터 독자적인 원유 수출권을 보장받고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하는 등 실리를 챙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독립국가를 가져보지 못한 '중동의 집시'


쿠르드족을 가리키는 명칭 중 하나는 '중동의 집시'다. 세계 최대의 유랑민족으로 알려진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중동지역과 인근 아르메니아에 집단적 난민촌을 형성해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의 총 인구는 3000만~3800만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중 절반가량인 1500만여명이 터키에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500만~600만명이, 이란에는 80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이 온건 수니파로 분류된다.
 

쿠르드족은 역사상 한번도 독립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는 탓에 각국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탄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분리독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쿠르드족은 수천년 전부터 이들 지역에 거주해온 것으로 추정되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에는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설립 등의 내용이 담긴 세브르 조약이 체결되기도 했지만 3년 뒤 터키와 유럽 강대국들이 이를 뒤집는 로잔 조약에 합의하면서 이들은 하루 아침에 여러 국가로 흩어지게 됐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개별 국가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면서도 강력한 민족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한 국가에서 쿠르드족이 위기에 처하면 공조하는 등 남다른 결집력을 보여줬다. 최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쿠르드자치정부(KRG) 관할 지역을 위협하자 곧바로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은 시리아와 터키 등지의 쿠르드 세력이었다. 지난 7월 IS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거주 도시인 아인알아랍을 포위하자 터키와 이란 등에서 온 쿠르드계 병력 800여명이 시리아로 입국해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터키 전체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은 오래전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유혈테러를 자행해오다가 최근에서야 터키 정부와의 평화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터키 쿠르드족이 결성한 쿠르드노동자당(PKK)은 창설 이후 지난 30여년간 반정부 무장항쟁을 벌여왔으며 이 과정에서 4만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PKK는 지난해 초 터키 정부와 평화안 협상에 합의하고 휴전을 선언했으며, 지난 7월 관련 법안이 터키 의회를 통과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인구의 10∼15%정도를 차지하며 내전으로 치안이 불안해진 틈을 타 일부 지역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시리아 내 대표적인 쿠르드세력은 민주동맹당(PYD)으로 내전 발발 이후인 2012년 중반부터 쿠르드족 주민이 다수인 북부에서 자체적으로 행정과 사법, 치안 등의 조직을 구성해 실질적인 자치를 실현해왔으며 올해 초 일부 도시에서 자치정부 설립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란 서북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쿠르드족도 끊임없이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며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으면서 정부요인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