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리처드 3세, 530년만에 영면하다

bluefox61 2015. 3. 13. 10:00

 전투 중 사망한 국왕의 유골을 530년만에 매장하는 역사적인 이벤트가 오는 26일 영국 중부 도시 레스터에서 펼쳐진다. 지난 1952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 조지 6세의 장례식 이후 영국에서 국왕의 장례식이 치러지기는 63년만에 처음이다. 현지 언론들은 국장에 준하는 절차와 예를 갖춰 정중히 치러지는 이번 장례식이 2011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못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1485년 보스워스 전투에서 사망한 리처드 3세(1452~1485).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걸작 ‘리처드 3세’의 실제 주인공이다. 지난 2012년 레스터대 발굴팀이 레스터 시내의 한 주차장 땅 속에서 리처드3세의 유골을 발굴한 지 약 2년반 만에 드디어 장례식이 치러지게 됐다. 그동안 매장지를 둘러싸고 유골이 발굴된 레스터와 연고지 요크 시가 법정 싸움까지 벌였고, 결국 법원은 리처드 3세가 숨을 거둔 레스터의 손을 들어줬다.이에 따라, 인구 약 30만명의 조용한 도시 레스터가 이른바 ‘리처드 효과(Richard Effect)’로 영국의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BBC, 가디언, 데일리 메일 등이 최근 보도했다.

 

 장례일은 오는 26일이지만, 장례 절차는 2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리처드 3세의 유골이 이날 오전 11시 40분 레스터대의 보관시설을 떠나 장례식이 치러지는 레스터 대성당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레스터 시내를 관통하는 운구행렬이 장관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대성당은 23일부터 25일까지 리처드 3세의 명복을 비는 조문객들을 받을 예정이다. 장례미사는  26일 오전 11시 30분부터 대성당 내에서 성공회 최고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한다. 미사에 참석할 왕실 인사의 명단은 아직 정확하게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는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참석이 확실한 왕실인사는 에드워드 왕자의 부인인 웨식스 백작부인, 여왕의 사촌동생인 글로스터 공작 등이다. 입관식은 장례식 다음날인 27일 낮 12시에 대성당 내에서 치러진다. 대성당 측이 사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리처드 3세 유골은  떡갈나무관에 넣어져 십자가 무늬를 넣은 석관에 안치된다. 전체적으로 간결하고도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리처드 3세 장례식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약 250만 파운드(약 42억 원). 일부 정부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 레스터 시와 대성당이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과 관련된 모든 행사는 채널4TV로 생중계되며, 전 세계 58개국 매체가 벌써부터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가디언 등은 전했다. 
 지난 2012년 야외 주차장 땅 속에서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굴된 후 레스터 시는 ‘리처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난 2012~2013년 관광수입 4억 8200만 파운드의 대부분이 리처드 3세와 관련된 매출이었다는 통계도 있다.지난해 7월  발굴지 인근에 리처드 3세 센터가 문을 연 후 8개월동안 4만 명이나 다녀갔다. 시 측은 리처드 3세가 레스터 대성당에 묻히게 되면서, 이 곳이 영국 중세역사 관광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 국민들이 리처드 3세에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530년전 사망한 정확한 매장지조차 몰랐던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굴된 과정이 웬만한 드라마 못지 않게 흥미진진했던 것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리처드 3세란 인물 자체가 워낙 강렬한 캐릭터인데다가  국왕으로서의 평가도 극과 극으로 갈리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레스터대 연구팀의 리처드 3세 유골 발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온 리처드3세 학회의 필리파 랭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리처드 3세는 재위 기간이 2년 남짓에 불과한 단명 국왕이었지만, 영국 역사상 가장 독특한 삶을 산 국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리처드 3세는 어린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사악한 국왕, 선천적 척추기형 때문에 추악한 외모를 가졌던 국왕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냉철하고 명석하며 용맹스런 국왕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랭리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 리처드 3세 역시 복잡하면서도 단점이 많은 인간이었다"며, 바로 이런 점을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리처드 3세의 매력으로 꼽았다. 

 리처드 3세(1452년 10월 2일∼1485년 8월 22일)는 영국의 중세인 플란타지네트왕조의 마지막 국왕이다.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세조와 비슷하다. 선천적 척추기형(척추측만증)의 장애를 가진 국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483년 형인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한 후 12살짜리 조카가 즉위해 에드워드 5세가 되자 글로스터공작이었던 그는 어린 조카를 보필한다는 명분으로 섭정이 됐다.하지만 불과 두 달 뒤, 그는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이 적법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왕의 아들인 에드워드 5세의 왕위 또한 인정할 수없다는 이유로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위를 가로챘다. 이후 리처드 3세가 조카인 에드워드 5세와 동생을 런던탑에 가둬 죽였다는 설이 파다했고, 그로부터 200여년만에 런던탑에서 어린이 2명의 유골이 실제로 발견되면서 리처드 3세의 악행은 사실로 굳어졌다.
 30년에 걸친 왕위계승전쟁인 ‘장미전쟁’을 끝낸 보스워스전투에서 전사한 후 종적이 묘연했던 리처드 3세의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사후 527년이 지난 지난 2012년 9월이었다.레스터대 발굴팀이 공영주차장 발굴 현장에서 그의 유골을 발굴한 것. 발굴팀이 이 곳을 리처드 3세가 매장된 곳으로 추정했던 이유는 보스워스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인데다가, 그가 묻혔다는 기록 속의 그레이프라이어스 수도원 성당 터였기 때문이었다.유골의 척추는 리처드 3세처럼 한 쪽으로 심하게 휘어있었다. 유골 곳곳에 난 상흔도 리처드 3세가 전투 중 입었다는 상처에 관한 기록들과 일치했다. 옷을 벗긴 후 서둘러 매장한 듯, 유골 주변에서는 갑옷은 물론 휘장이나 반지 등 왕을 나타내는 표식조차 없었다. 이 유골이 리처드 3세가 맞다면, 1922년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집트의 소년 파라오 투탄카멘 미이라를 발굴한 이후 국왕의 유골이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기는 처음이었다.
 발굴팀은 역사연구단체인 리처드3세학회와 혈통연구가들이 이미 지난 2005년 확보해둔 리처드 3세의 17대 외조카뻘인 마이클 입센의 DNA와 유골의 DNA를 비교했고, 2013년 2월 드디어 기자회견을 통해 리처드 3세의 유골을 발견했다고 학계에 공식 보고했다.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하면서도 매력적인 악인으로 각인돼온 리처드 3세가 무덤으로부터 되살아나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