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미얀마 개혁의 그늘

bluefox61 2015. 6. 3. 16:14

며칠전 이양희 (아동·청소년학) 성균관대 교수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유엔 인권이사회(UNHCR) 미얀마 특별보고관이다. 메시지는 " 미얀마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습니다"였다. 미얀마 로힝야 해상난민 사태에 대한 최근 기사를 눈여겨 봤던 모양이었다.지난해 9월 미얀마를 방문해 현지의 인권상황을 직접 조사했던 이 보고관은 지난 1월 다시 미얀마를 찾아 조사활동을 벌이던 중 선동가로 유명한 한 불교승려로부터 ‘막말 테러’를 당했는가하면,미얀마 외교부로부터는 ‘내정간섭’이란 비난까지 받았다.

 

이슬람교도에의 급진적인 주장과 종교 갈등을 선동하여 감옥까지 다녀오고, 불교계의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악명을 얻은 불교 승려 아신 위라투.


지난해 1차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 보고관을 만났을 때, 미얀마에 대해 칭찬을 아끼는 듯한 그의 태도가 솔직히 다소 의아스러웠다.오랜 군부독재체제로부터 벗어나 자발적으로 과감한 개혁,개방정책을 취하고 있는 미얀마에 뜨거운 관심과 기대를 나타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그가 바라본 미얀마 사이에는 상당한 온도 차가 있었다. 심지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여사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대단한 신념의 소유자답게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간단히 언급할 뿐 말을 아꼈다.
 

사실, 미얀마의 소수 종족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이 ‘위로부터의 개혁’정책을 도입해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때부터 현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미얀마 민주화의 마지막 장애물로 소수 종족 문제를 지적했다. 미얀마 인들이 ‘벵갈리’로 낮춰 부르는 로힝야 족 문제만 하더라도 영국 식민체제 때인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갈만큼 뿌리가 깊다. 영국이 불교 국가인 미얀마를 분열시켜 식민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서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슬람 신도들을 이주시켰고, 그들이 바로 로힝야라는 것이다. 미얀마 정부는 이 보고관은 물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공식석상에서 로힝야란 단어를 사용하기만 해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낼 정도이다. 이번 로힝야 해상 난민 사태에서도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는 불법이주민"이란 기본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정부에 박해받고, 불교 폭도들에게 학살 당해온 로힝야는 자유와 안전을 찾아 바다 위와 정글 속을 떠돌다가 오늘도 죽음을 맞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일부 난민 구조에 나서고 있다지만,지난 5월 29일 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사실상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미국,호주,터키 등 일부 국가들이 난민 구호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약속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고, 풍부한 자원을 가진 미얀마 시장 진출을 노리는 해외 국가들은 테인 세인 정부의 눈치를 보여 로힝야 난민 사태를 ‘내부 문제’로만 제쳐두려는 태도다.
 

로힝야 난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멀리서 외신으로나마 접하면서, " 미얀마의 변화를 보수적으로 보자는 입장"이라고 했던 이 보고관의 말이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듯했다.민주주의 역사, 인권의 역사가  좀 더 약한 사람, 좀 더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빛과 온기를 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미얀마의 민주화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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