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여론의 역설

bluefox61 2015. 5. 11. 16:59

지난 7일 영국 총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당한 노동당 못지않게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곳이 있다. 바로 여론조사기관들이다.


유거브,ICM,포풀러스, 오피니움 등 영국의 유명 여론조사 기관들이 투표 직전까지도 일제히 집권 보수당과 야당 노동당의 초접전을 예상하면서, 어떤 정당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헝의회(Hung Parliament)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총선 며칠 전부터는 노동당이 연정 구성에 성공해 5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할 것이란 분석이 쏟아지기까지 했다. 2008년 미 대선결과를 정확하게 예상해 ‘족집게’란 별명을 얻은 네이트 실버조차 총선 열흘 전 내놓은 분석에서 보수당이 제1 정당의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과반의석(326석)에 한참 부족한 283석을 차지하는데 그칠 것이라면서, "차기 영국 정권을 예상하기 극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었다.
 

여론조사와 정반대 결과가 나온 이번 영국 총선을 지켜보면서,지난 2004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때가 떠올랐다. 당시 한창 잘 나가던 여론조사 기관 조그비는 대선투표가 끝난 직후 발표한 조사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압승을 예상했었다. 주요방송사들이 박빙의 승부라는 점을 감안해 신중을 기하고 있는 가운데 케리의 승리를 확신한 조그비의 분석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조그비가 앞서 역대 미 대선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점도 신뢰감을 높였던 것이 사실이다.


개표가 시작되면서 미 언론들은 조그비 예상을 토대로 케리의 승리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했고,본보 역시 이를 비중있게 전했다. 하지만 승자는 케리가 아닌 조지 W 부시였고,결과적으로 본보도 오보를 하고 말았다. 국제부 기자로서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쓰라린 기억이다. 이후 조그비가 미 언론보도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물론이다.


 

지금 영국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왜 이번 총선에서 엄청난 오류가 발생했는가를 분석하느라 분주하지만, 선거가 끝난지 나흘째인 아직까지도 뾰족한 해답은 찾지 못한 모양이다. 똑같은 방법론을 사용했던 이전 선거 여론조사는 정확했는데,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국민당에 대한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의 뜨거운 지지열기를 과소평가하고 현지의 높은 투표율을 예상하지 못했던 점, 숨은 보수표의 규모를 폄하하고 극우정당 영국독립당의 지지표가 막판에 보수당에 쏠릴 가능성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던 점 등은 영국 여론분석가들이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할 뼈아픈 실책으로 남게 됐다. 여론조사 때 의사표현이 적극적인 노동당 지지자들에 비해 보수당 지지자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거나, 심지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솔직히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여론조사업체들의 연합회인 영국여론조사위원회(BPC)는 총선 결과와 예측이 어긋난 이유를 결국 외부에 의뢰해 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 세계 여론조사기관들은 물론 정치인들이 그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릴 듯하다. 탁구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여론은 과연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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