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중반을 넘겨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기대와 달리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에서도, 대상인 황금사자상 후보작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평론가들과 저널들로부터 고른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은 영국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더 퀸>. 1997년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갑작스런 죽음 직후 영국 왕실 내의 움직임을 파헤친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을 맡은 헬렌 미렌의 탁월한 연기력에 힘입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영화는 다이애너의 사망에 대해 냉담한 자세를 나타내면서 국가적인 추모행사 개최를 거부하는 여왕과 국민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여왕 설득에 진땀빼는 토니 블레어 총리 간의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미렌은 완벽한 분장에다 말투, 걸음걸이에 이르기까지 여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똑같이 재연해냈고, 완고하면서도 수많은 스캔들로부터 왕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고민하는 여왕의 내면까지 충실하게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미렌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영화제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 역시 “영화제 첫주는 <더 퀸>이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의외의 호평을 받고 있는 또다른 작품은 미국 영화배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감독 데뷔작 <바비>. 1968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암살 사건을 통해 60년대 혼란스러웠던 미국인들의 일상생활 단면을 그린 작품이다. 샤론 스톤, 드미 무어, 애슈턴 커쳐, 앤소니 홉킨스, 린지 로한 등 스타들이 총출연하고 있다.
이들은 케네디가 총에 맞아 사망했던 로스앤젤레스 앰베서더호텔에 머무르고 있거나 ,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앤소니 홉킨스는 호텔 매니저, 드미 무어는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는 호텔의 무명가수로 등장하는 식이다. AP통신은 이 작품이 심사위원과 평론가들이 상당히 강한 인상을 줬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베트남전의 혼란속에 빠져있던 60년대 당시의 상황를 통해 이라크전 및 아프가니스탄 전의 혼란을 겪고 있는 2006년 현재 미국 간의 유사성을 드러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분석했다.
케네디 암살 당시 다섯살이었다는 에스테베스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그날 밤(암살 사건발생 당일밤)을 계기로 미국은 변했다. 닉슨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은 끊없이 추락하게 됐다. 케네디의 죽음은 희망의 죽음이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시니컬해졌다. 이제는 나락으로부터 회복돼야할 때다”라고 말했다. 또 자신의 영화가 “정치에 대해 무조건 냉소적인 젊은 세대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연출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프랑스 거장 감독 알랭 레네의 신작 < 공공장소에서의 사적인 두려움>은 7명의 남녀가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사랑,죽음, 이별 등을 다룬 작품으로, 비교적 고른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레네의 작품이 황금사자상을 받게 된다면, 그는 대표작 <마리엥바드의 마지막 해> 이후 무려 45년만에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기록을 세우게 된다.
50년대 TV드라마 <수퍼맨>의 주연배우였던 조지 리브스의 의문사를 소재로 한 앨런 쿨터 감독의 <할리우드랜드>는 모처럼만에 호연한 벤 애플렉의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그동안 <질리><데어데블> 등 숱한 영화에서 혹평을 불러일으켰던 애플렉이 “연기인생 10여년만에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고 사실상 극찬하기도 했다.
당초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블랙다알리아>는 개막작으로 선보인 이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어서 수상권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태국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군의 신작 < 신드럼과 한 세기>,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남자들의 아이들>, 네덜란드 감독 폴 버호벤이 고국으로 돌아가 절치부심끝에 내놓은 2차세계대전 배경 시대물 <블랙 북>등도 예상에 못미치는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영화제 조직위측은 4일 경쟁부문에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정물(스틸 라이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깜짝’발표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0년 <플랫폼>,2004년 <세계>에 이어 세번째로 베니스 경쟁부문에 진출한 지아장커의 <정물>은 세계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삼협댐의 건설로 바뀌어버린 현지 시골주민들을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오는 9일 시상식을 가진 뒤 폐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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