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마거릿 대처 잠들다

bluefox61 2013. 4. 9. 20:14
"마거릿 대처는 적수의 가치를 알았던 정치인이자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의 소유자였다. 용기와 열정, 설득력과 에너지는 대처의 엄청난 장점이었다. 그러나 불필요할 정도로 전투적이었고 멈춰야할 때를 몰랐던 점은 정치인으로서 그의 최대 약점이었다. " (사후 출간될 공식전기 '낫 포 터닝(Not For Turning)' 저자 찰스 무어)


"대처가 추진했던 정책 대부분이 옳았다. 영국 국내정책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유로존 정책에 있어서도 대처가 옳았다. (대처를 비판했던)언론들은 이 위대한 지도자에게 존경과 사과를 빚졌다."(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가 8일 87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고인이 현대사에 미친 영향력과 유산에 대한 평가작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에 걸친 집권기간에 대한 내밀한 증언과 평가를 대처 본인의 육성으로 접할 수있는 방대한 분량의 공식전기 '낫 포 터닝' 1권이 장례식 직후 선보일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 등 영국언론들이 8일 보도했다. 텔레그래프 편집자 출신인 찰스 무어는 2003년부터 대처와 주변인물들을 인터뷰한 것은 물론 대처 개인 문서 및 기밀해제 정부문서들을 모두 섭렵해 전기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어는 8일자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대처의 장점으로 확고부동한 애국심, 적을 이용할 줄 아는 능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인재 발굴술 등을 꼽았다. 격렬한 반대를 돌파하고 자신의 신념을 추진해나가는 용기와 결단력, 에너지와 열정, 정치적 술수 등도 정치인으로서 대처의 두드러진 장점이었다는 것. 70년대 중반 대처는 노조 권력화, 과도한 부채, 높은 세금, 치솟는 인플레이션, 소련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서 영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데 대해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무어에 따르면, 대처는 남성정치인들이 영국을 제대로 구원할 수없다면 여성이 나서야한다고 느꼈고 결국 1975년 보수당 당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경제'를 무미건조한 관료주의 영역으로부터 '주부의 수사(레토릭)'를 이용해  '일상의 문제''정치적 전투'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 무어의 평가이다. 



대처는 '적'의 가치를 꿰뚫어볼 줄 아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1976년 소련언론이 대처를 '철의 여인'으로 호칭한 것은 결코 칭찬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처는 이것이 '명예로운 훈장'임을 간파했다. 무어는 대처가 "소련,아르헨티나,아일랜드공화국군(IRA) 등 적이 있음으로서 자신이 존재함을 인식했다"면서 "2차세계대전 이후 좌파의 공세를 연이어 이겨냈던 유일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했다. 바로 이런 점때문에 대처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대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서기장이 되기 이전인 농업장관 시절 때부터 그의 잠재력을 알아봤던 혜안의 소유자였다는 것. 

반면 '과도한 전투성'이 대처의 정치적 몰락을 자초하는 원인이 됐던 것으로 무어는 지적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대처는 남성들의 파벌주의와 자기만족적 행태를 참지못해 지나치게 전투적이었고 심지어 각료들까지 몰아부쳤다"면서 "이점은 곧 미덕이기도 하지만 멈춰야할 시점을 몰랐던 것은 대처의 최대 약점이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역사학자 퍼거슨은 9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 대처의 정책 대부분이 옳았다"면서 , 특히 지난 1990년 2월 대처가 EU 연설에서 독일 패권주의를 경고했던 것을 현재 유로존 내 독일비판론과 비교하며 높이 평가했다. 특히 대처체제 당시 영국 언론들이 정부정책들을 맹공격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FT를 비롯해 유수언론들은 위대한 지도자에게 존경과 사과를 보내야한다"고 주장하기도했다.  



영국과 20세기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장례식은 오는 17일 또는 18일 '국장에 준하는 장례식(ceremonial funeral)'로 치러진다. 국장보다는 한단계 낮은 수준이다. 
윈스턴 처칠 장례식의 경우, 1965년 1월 31일 성대한 국장으로 치러졌었다. 영국에서 전직 총리의 장례식은 국장이 관행이었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처칠의 국장을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히스(2005년), 앤서니 이든(1977년) 등 역대 총리들의 장례식은 모두 '준 국장'형식으로 치러졌다. 국장과 준 국장 모두 국왕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5년전인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는 대처의 사망을 대비해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는 방안을 적이 있지만, 정부 안팎의 반대 여론에 포기하기도 했다. 
대처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는 것은 대처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데일리 메일 등 영국언론들은 대처가 이미 5년전부터 정부측과 자신의 장례식 절차를 논의했으며, 당시 국장을 하지 말도록 요구했었다고 8일 보도했다. 특히 장례식 전 조문객을 받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특히 장례식 때 전투기들이 상공에서 추모비행을 하는 것은 '돈낭비'로 일축했다는 것. 대처의 최측근 중 한명인 티머시 벨 경은 "고인은 생존시 원하는 장례식 방식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측도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대처의 관은 장례식 전날 웨스트민스터사원 내 세인트 메리 언더크로프트 예배당에 안치됐다가 장례식 당일 세인트 클레멘트 데인스 교회로 옮겨진 후 세인트 폴 성당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세인 트 폴 성당은 처칠이 묻혀있는 곳이다. 장례식에는 전현직 영국 총리와 각료들은 물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 등 전세계 국가지도자와 유명인사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자베스 2세의 참석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고인의 유해는 장례식 후 화장되어 런던 첼시의 왕립병원에 있는 남편 데니스의 무덤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