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계속되는 나치 약탈문화재 악몽

bluefox61 2013. 1. 31. 11:32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68년이나 지났지만, 독일 정부가 아돌프 히틀러 체제하에서 나치에 의해 약탈된 문화재 2만점을 아직도 원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신호(2월 5일자) 에서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약탈 문화재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채 사실상 방치돼있다고 보도했다. 2차세계대전 중 나치가 유럽대륙 전역에서 유대인 부호컬렉터, 성당 및 수도원 등이 소유하고 있던 문화재, 보석, 고문서 등을 조직적으로 약탈했던 것은 이미 잘알려진 사실이다. 
연합군에 따르면 2차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나치는 약 500만점의 약탈 문화재와 귀중품을 광산, 수도원 지하실 등에 숨겨놓았던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회화 및 조각품 46만6000점을 포함해 약 250만점은 원소유주의 품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해당국가 정부 또는 독일 연방정부 및 주정부와 박물관 등에 보관돼있다. 

슈피겔은 독일내에 남아있는 약탈문화재 2만점 중 회화작품 2300점의 가치가 2004년 시세 기준으로 최소 6000만 유로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 중에는 히틀러가 1936년 애인 에바 브라운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백금시계, 게슈타포를 창설한 헤르만 괴링 원수의 다이아몬드 황금 담배갑, 3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티아라 등도 포함돼있다. 바바리아주 뮌헨의 현대미술관 창고에 보관돼있는 이 보석들은 원소유주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번호표를 단채 수십년째 처박혀 잊혀지고 있다. 


슈피겔은 전후 역대 정부들이 히틀러 체제 청산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약탈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행보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5년전 앙겔라 메르켈 정부가 '약탈문화재 연구조사 워킹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조사건수가 84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독일내 미술관,박물관이 약6300개나 되는데 전담 직원은 4명 뿐인 점을 감안할 때 조사작업이 마무리되는데만 앞으로 수십년이 걸릴 지경이란 것이다. 전폭적인 예산지원과 정치적 의지없이는 나치 역사의 진정한 청산이 이뤄지기는 힘들다고 슈피겔은 비판했다. 문화계의 의지부족도 문제이다. 

미하엘 노이만 전 문화장관은 1998년 12월 44개국이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약탈문화재 조사 및 반환에 협력하기로 결의한 뒤 독일 내 미술관 및 박물관에 소장 문화재 현황보고를 요청했지만, 문화부의 요구에 답한 곳은 프로이센 문화재단 1곳뿐이었다고 개탄했다. 


슈피겔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가지 방안으로 오스트리아식 솔루션을 제안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전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약탈문화재 8422점 중 93점을 원소유주에 돌려준 후 소유주 미상의 작품들은 1996년 크리스티 경매에 부쳐 1100만달러 전액을 나치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놓았다. 슈피겔은 약탈문화재 조사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일부 소장품을 처분해 기금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히틀러 총통취임 80주년인 30일 연설에서 "나치의 부상은 그들과 함께한 독일의 엘리트들과 이를 묵인한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인권은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자유는 스스로 발현하지 못하며, 민주주의는 스스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 퍼온글>

모뉴먼츠 맨 / 로버트 M 에드셀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모뉴먼츠 맨(The Monuments Men)’, 기념비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정식 명칭이 ‘기념물, 미술품, 기록물 전담반(MFAA·The 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section)’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전후인 1943년부터 1951년까지 전쟁의 참화에서 인류의 걸작 유산을 보호한 연합군 병사들을 말한다.

‘모뉴먼츠 맨’은 13개국에서 모인 350여명의 남녀 요원으로 구성됐다. 이 책은 이들 가운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자였던 캐나다군 소속 로널드 에드먼드 벨푸어 소령과 미군 소속의 미술품 보존 전문가 조지 스타우트 대위, 독일계 유대인 해리 애틀링어 이병, 조각가 워커 행콕 대위, 건축학과 교수 월터 허치 헉트하우젠 대위, 나중에 뉴욕시립발레단 창립자가 된 링컨 커스타인 일병,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로 활약한 제임스 J 로라이머 소위 등 ‘모뉴먼츠 맨’을 비롯해 프랑스 국립박물관장 자크 조지르, 죄드폼미술관 임시관리인 로즈 발랑 등 10여명이 주인공이다. 저자는 마치 어드벤처 액션스릴러 영화처럼 빼앗긴 보물 찾기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히틀러는 ‘실패한 화가 겸 건축가’다. 명화를 그리지는 못했지만 명작을 갖고 싶어했다. 그는 고향 오스트리아 린츠의 도나우강을 따라 피렌체를 넘어서는 문화예술지구를 건설하고 그 중심에 아헨 대성당과 같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압도적이며 눈부신 미술관을 지어 걸작들로 가득 채우려 했다.

나치의 2인자 괴링은 이를 기회로 검은 사욕을 채웠다. 이들은 나폴레옹이 150여년 전 일방적인 조약으로 프러시아의 문화재를 장악했던 방법대로 평화조약의 담보물로 미술품을 압수하고 유대인의 컬렉션을 빼돌렸으며 패전하면서는 총칼로 위협, 마구잡이로 강탈해 갔다. 미술품, 보석, 금은세공품을 비롯해 교회종, 스테인드글라스, 고서적, 심지어 와인과 곤충채집까지 이들이 닥치는 대로 빼앗은 물품이 무려 500만점을 넘었다. 히틀러는 이 보물들을 오스트리아 알타우세 소금광산,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 알프스의 바위산 꼭대기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인성 등 1000여곳에 나누어 숨겨놨다.

‘모뉴먼츠 맨’의 활약은 1944년 이탈리아 몬테카시노 수도원 폭격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독일군 주요 방어 참호인 구스타프 방어선의 거점인 로마 남부 카시노 산등성이에 우뚝 솟은 천년 고성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치열한 전투에서 연합군의 사기를 꺾는 나치의 견고한 상징이었다. 결국 연합군은 수도원을 폭격, 벽돌 조각으로 분해해 버렸다.

하지만 수도원에 독일군은 없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와 관련, 연합군을 “야만인이자 배신자”라고 비난했으며 바티칸 역시 “어마어마한 실수이자 엄청난 어리석음”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연합군은 수도원의 폭격에도 불구, 이후 3개월을 더 치열한 전투를 벌여 5만4000명의 사상자를 내고서야 몬테카시노를 점령했다. 천년고찰을 파괴하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초기 몬테카시노 수도원과 같은 문화재 보호에 집중됐던 ‘모뉴먼츠 맨’의 임무는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진군하는 연합군의 최전선에 서서 독일 메르케르스 소금광산에서 현재 가치로 50억달러에 해당하는 히틀러의 금괴를 비롯해 393점의 회화, 2091개의 판화상자, 1214개의 나무상자, 140여점의 직물공예품 등 프러시아 국립미술관 작품 대부분을 찾아냈다.

오스트리아 알타우세 소금광산에서는 반에이크 형제의 ‘겐트 제단화’, 미켈란젤로가 살아 있을 때 유일하게 이탈리아 밖으로 반출된 벨기에 브뤼헤의 ‘성모자상’, 베르메르의 ‘천문학자’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등 유화 6577점, 소묘 및 수채화 230점, 판화 954점, 조각 137점, 무기와 갑옷 129점, 가구 78점, 태피스트리 122점, 고서적 181상자, 고서적 또는 비슷한 물건을 담은 상자 1700여개 등 엄청난 보물들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벨푸어 소령과 헉트하우젠 대위 등이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다.

‘모뉴먼츠 맨’의 활약으로 수많은 인류 걸작 유산들을 되찾았지만 라파엘로의 ‘빈도 알토비티’와 표트르대제의 호박 패널을 비롯해 클레, 미로, 막스 에른스트, 피카소 등 수십만점의 걸작들이 실종, 파괴됐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또 되찾기는 했지만 원래의 주인을 찾지 못한 보물들도 수천점에 이른다. 소유주가 숨지고, 출처를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전쟁 중 미군이 몬테카시노 수도원 폭파의 반성으로 북한군이 집결해 있는 덕수궁 폭파를 보류, 오늘날 우리가 덕수궁을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또 외규장각 도서를 비롯해 불상, 그림 등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 해외로 반출된 수많은 우리 문화재를 찾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냉정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