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이탈리아 총리가 이르면 내주중 경제개혁조치들을 담은 경제안정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사통신, 코리에르 델라 세라 등 현지언론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8일 하원에서 치러진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 표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한 후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을 만나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대통령 궁은 e메일 성명에서 "임무(법안통과)가 완수되면 총리는 자신의 권한을 국가수반(대통령)에게 넘길 것이며, 나는 대통령으로서 각 정파와의 협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고, 총리실도 대통령의 성명 내용을 확인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10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제출한 15쪽 분량의 의향서를 통해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2026년부터 67세 이상으로 높이고 공공부문 및 기업의 근로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전면적인 개혁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약속한 바있다. 법안에는 연금개혁을 비롯해 정부자산 매각,지방 공공서비스의 민간이양 등의 조치가 포함돼있다.
앞서 8일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진 2010년도 예상지출승인안은 야당의원 321명이 기권한 가운데 찬성 308표로 가결됐다.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재적 630석의 과반인 316석을 얻는 데는 실패하자, 정권유지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퇴진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과도정부를 이끌 새 총리로는 마리오 몬티 전 유럽연합(EU) 반독점집행위원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국제시장은 일제히 환영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베를루스코니의 퇴진 발표에 힘입어 전날보다 101.79포인트(0.84%) 오른 12,170.18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이탈리아 연정의 과반확보 실패 영향으로 하락세로 장을 마쳤던 유럽 시장도 9일에는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올리 렌 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로 재무장관 회담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집행위 조사팀이 이탈리아가 약속한 재정 감축과 경제 개혁을 제대로이행하는지 9일부터 로마에 상주하며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망언종결자 베를루스코니
지지자에게는 '일 카발리에레(이탈리아어로 '기사'란 뜻)', 미녀들에게는 '파피('아빠')', 영미권 언론들로부터는 태플론 코팅처리된 프라이팬처럼 위기국면을 잘도 미끌어져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태플론 총리'로 불렸던 남자. 섹스파티를 일컫는 '붕가붕가 파티'의 창시자. 퇴진의사를 밝히기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주요20개국(G20) 정상들에게 "이탈리아의 레스토랑, 여객기, 호텔 리조트들이 풀부킹되고 있는데 무슨 경제위기냐"며 배짱을 부렸던 '망언 종결자'.
이탈리아를 넘어 전 국제사회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보다 더 논쟁적인 정치지도자를 찾기 힘들만큼 그는 하나의 '미스터리 현상'이다. 서구언론들은 이탈리아 국민들이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번(1994년 4월∼9월, 2001∼2006년, 2008∼2011년 11월) 씩이나 그에게 국정을 맡긴 이유를 분석하기 바빴고, 베를루스코니 언론제국과 2차세계대전 전후 수십차례 정권교체에 따른 정치혐오감 또는 무관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이해하기 힘들다"였다.
본인은 "총리를 네번이나 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네번째 정계 컴백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코리에르 델라 세라 등 현지언론들은 8일 집권 자유국민당(PdL)내 베를루스코니 최측근들이 가능한 이른 시일내 조기총선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PdL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재 선거법이 개정되기 전에 총선을 치르면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밀라노 출신인 베를루스코니는 건설업으로 번 돈을 바탕으로 언론제국(메디아세트)을 일군후 1994년 '포르자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창당, 같은 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총리가 됐다. 몇 달후 북부연맹이 연정에서 탈퇴함에 따라 사임해야 했던 그는 2001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총리직 복귀에 성공했고, 2006년 총선에서 사회당의 로마노 프로디에게 정권을 넘겨줬다가 2년뒤 집권당인 PdL을 결성해 세번째 총리직을 맡았다.
전후 최장수 정권기록을 세운 사실에서 나타나듯, 그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이탈리아 정치를 비로소 안정시켰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있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지도자답지 않게 지나치게 경박한 말과 행동은 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성추문이 격화되자 "동성애자인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했고,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나와 성관계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30%는 '예스'라 답하고 나머지 70%는 '또?'라고 답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 젊고 잘생긴데다가 선탠까지 했다"고 농담한 것도 모라자 이듬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는 " 미셸(오바마 대통령 부인)도 선탠했더라"라고 말해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망언으로 본 베를루스코니>
- ”무솔리니는 정적을 죽이거나 은퇴시키지 않았다. 무인도로 추방시켰을 뿐이다" (실제로 무솔리니도 반대파를 암살하였다)
- 2003년 7월, EU의장국의 연설에서 베를루스코니를 비판한 독일의 마르틴 슐츠 의원에게
“나는 나치 시절 독일의 강제수용소에 관한 영화 제작자를 알고 있다. 당신을 간수 역으로 출연할 것을 제안한다. 당신이라면 제격이다” (이 발언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는 외교분쟁 직전까지 갔다)
- “선거기간중 섹스를 끊겠다” (2006년 4월 총선 유세시.전세계 선거 역사상 이런 발언을 한 지도자는 베를루스코니가 유일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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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모택동 집권당시 중국은 아기를 삶아서 비료로 썼다”고 발언
- 2008년 4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스페인 각료의 과반수가 여성으로 교체된 것에 대해
“너무 선정적이다. 이탈리아에는 있을 수가 없다. 이탈리아는 우수한 남성이 넘칠 정도이고, 각료에 어울리는 유능한 여성을 찾는 것은 어렵다”
-2008년 11월 6일 버락 오바마 당선에 대해
“오바마는 젊고 잘생겼고 거기다 선탠까지 했다”
(이듬해 미국 방문때 "미셸도 선탠했더라")
-2008년 4월 "좌파는 여자에 대해서도 취향이 낮다"
- 2009년 1월 이탈리아에서 빈발하고 있는 강간사건에 대해서 의회가 대책마련을 촉구하자
“이탈리아는 예쁜 여자가 많기 때문에 강간이 사라지는 것은 무리다”
-이 발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탈리아인 여성을 칭찬해준 것뿐이다."
-2009년 4월 라킬라 지진 현장 방문때 이재민 텐트촌을 방문해 "주말 캠핑 왔다고 생각해라"
-2010년 11월 성추문에 대해 "게이인 것보다는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하는게 더 낫다"
-2010년 9월 청년집회에 참석해 "아가씨들은 나이 많은 부자들과 결혼해야한다. 여자들이 나와 결혼하려고 줄을 섰다"
-2011년 4월 "나하고 섹스하고 싶냐고 여성들에게 물으면 30%는 '예스'라고 하고 70%는 "뭐? 또?(What? Again?'라고 할거다"
-2011년 7월 성매수와 관련해 "정복의 기쁨이 없는 만족은 결코 이해 못하겠다"
-2011년 11월 5월 G20정상회의 후 "이탈리아는 위기를 체감못한다.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 급등은 지나가는 유행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레스토랑, 여객선에 손님이 꽉꽉 들어차고 호텔 리조트는 풀부킹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탈리아 경제회복의 최대걸림돌이 됐던 '베를루스코니 악재'가 제거된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지만 유로존 최대뇌관인 이탈리아 위기가 해제될 것으로 전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문제는 실종된 경제동력이다. 이탈리아의 지난 15년간 경제 성장률은 연 평균 0.75%이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이보다 더 떨어져서 0.6∼0.7%로 전망되고 있다. 인구노령화와 산업구조변화, 국제경제약화 등으로 인해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을 단기간내에 끌어올릴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이탈리아 정치권이 과감한 긴축을 단행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퇴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르는 내주중 추가경제개혁조치들을 담은 '경제안정법'이 상하원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