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 맘 때쯤 이탈리아에서 화제가 된 영화 한편이 있다. 제목은 '일 카이마노'. 이탈리아 어로 '악어'란 뜻이다.
풍자정신으로 유명한 나니 모레티 감독이 2006년 발표해 히트했던 이 작품이 뒤늦게 다시 관심을 모은 이유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를 탐욕과 부패, 뒷거래와 조작의 달인으로 묘사한 내용 때문이었다. 강 둑 위에 죽은듯이 몇시간씩 꼼짝않고 누워있다가 순식간에 물 속으로 몸을 던져 먹이감을 잡아채는 카이만 악어와 권력쟁취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 베를루스코니가 닮았다는 것이 모레티 감독이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였다.
이 영화가 개봉된 2006년 베를루스코니는 총선에 패배해 정계에서 물러났다가 2년 뒤인 2008년 컴백에 성공했고, 그로부터 3년뒤인 2011년 재정위기 속에서 자진퇴진했다가 최근 정계복귀를 선언해 생애 4번째 총리직을 노리고 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악어가 먹이감을 향해 달려들듯, 베를루스코니도 언제다시 행동을 개시할지 알 수없다고 했던 이탈리아와 유럽언론들의 1년전 전망이 지금 꼭 맞아 떨어진 셈이다.
피사의 사탑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탈리아적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베를루스코니이다. 지도자의 도덕성과 언행에 엄격한 서구언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초특급 스캔들을 연방 터트려대고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세번이나 총리직을 수행한 베를루스코니는 미스터리 그 자체라고 할 수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고향 밀라노의 호화저택에서 섹스파티를 뜻하는 '붕가붕가 파티'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십대 미성년 성매수, 탈세, 권력 남용 혐의 등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지금도 성매수와 탈세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베를루스코니는 망언에 관한한 일본 극우정치인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이다. 미성년 성매수 비난에 "동성애자인 것보다는 낫다"고 하지 않나, 관련혐의를 부인하며 한다는 말이 "정복의 기쁨이 없는 성관계에는 관심이 없다"였다. 가뜩이나 곤두박질치는 이탈리아 경제가 총리의 잇단 망언과 행동으로 국제사회의 외면을 자초하는 꼴이 되자, 지난해 피아트그룹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은 "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총리 재직기간 내내 논란과 추문을 몰고 다녔던 베를루스코니가 정계에 복귀하자마자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정치지형이 요동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파워가 아직도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지난 1년간 추락하는 이탈리아 경제를 근근히 지탱시켜온 마리오 몬티 과도총리가 조기퇴진을 선언했고, 베를루스코니가 창당한 제1당 '자유국민당(PdL)'은 의회에서 주요안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내년 3월쯤으로 예상됐던 이탈리아 총선이 최소 한달이상 앞당겨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세계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두차례에 걸친 그리스 총선 때 극좌, 극우 정당이 포퓰리즘으로 돌풍을 일으켜 유로존은 물론 세계경제가 휘청거렸던 사태가 이탈리아에서 재연될 수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유권자의 선택이다. 앞서 세차례의 베를루스코니 정권 탄생에 대해 일부 서구언론들은 언론독점에 따르는 여론조작, 부패정치에 염증난 국민들의 무관심 등을 원인으로 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은 듯하다.
몬티 총리는 11일 "정치란 무엇보다 문화" 라면서 " 국민들의 생각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문화로서 정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몬티 총리의 말에 따르자면, 정치는 곧 한나라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건 일주일 남짓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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