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칼럼/ 자살률 1위인 나라에서 '제대로 잘 산다는 것'

bluefox61 2013. 1. 10. 16:45

몇해전 어느날, 퇴근하자마자 어머니가 잘 읽어보고나서 사인하라며 종이 한 장을 내미셨다. 당신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방법을 당부하신 글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마시라"고 치워버리고픈 마음을 누르고 일단 읽기 시작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마지막이 다가오거든 과도한 의료기술을 동원해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서류를 만들어 자식들에게 뜻을 알려놓는 분들이 주변에서 여럿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동의의 서명을 했다. 그 종이는 정갈한 흰 봉투에 넣어져, 지금도 서랍장 안에 고이 보관돼있다. 지난  2009년 병상의 김수환 추기경이 의료진에게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말아 달라"면서 인공호흡기 사용을 거부한 사실이 전해져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기 훨씬 전의 일이다.



그 때 일이 새삼 생각난 것은, 새벽 출근 길에 들은 라디오 뉴스 때문이었다. 부산의 한 원룸에서 20대 초,중반의 여성 1명과 남성 2명이 자살로 추정되는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30초짜리 단신 뉴스였지만, 이상하게도 한동안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았다. 야구선수 조성민의 갑작스런 죽음이 가져온 사회적 충격 탓도 있겠지만,  20대 꽃다운 청춘들이 도대체 얼마나 무겁고 깊은 절망에 빠져있었던 것인지 짐작조차할 수없어 유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계 속의 한국을 나타내는 수많은 수치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곤혹스런 통계치가 바로 자살율이다. 한국은 8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국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자살 사망자는 1만 5566명으로 인구 10만명 당 31.2명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42.6명이다. OECD 회원국 평균치가 12.8명이라니  2.4배 수준이다. 그 다음으로 자살율이 높은 나라는 헝가리이지만 10만명 당 23.3명으로 한국에 비하면 훨씬 적다. 문제는 OECD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반해 한국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1년동안 언론에 꾸준히 등장했던 뉴스가 바로 '자살'이 아닌가 싶다. 대구중학생을 비롯해 많은 10대 학생들이 집단따돌림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했고  20대 청년들은 취업전쟁터에서의 좌절, 40대는사업실패와 가정불화로 소중한 목숨을 버렸다. 심지어 수발하던 치매 아내 또는 남편을 죽이고 자살을 택하는 노인이나, 고독사한지 수주만에 발견된 50∼60대는 이제는 별로 새롭지도 않는 지경이 됐다. 일자리를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벌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말할 것도 없다. 
 

희망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새해에 굳이 죽음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잘살아보세'를 넘어 '제대로 살아보세'가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에서 지난 1995년부터 17년동안 '죽음(Death)'란 이름의 인기 철학강좌를 이어오고 있는 셸리 케이건 교수에 따르면 "우리 모두 죽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웰빙(well being)과 웰다잉(well dying)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이란 이야기이다. 그 오랜 세월동안 장황한 철학강의의 결론이 고작 이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온갖 기대와 조언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딱 한가지라면, "누구나 제대로 살 수있는 나라"가 아닐까.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졌든, 그런 나라만들기가 부디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