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볼수록 매력있다. 당적은 바꿀지언정 정치철학만큼은 굳건하게 지키고,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며, 세상에서 가장 힘세다는 미국 대통령 보다 '일개' 시장 직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남자.
그래도 대통령에 출마해보라는 부추김에 "세상사람 다 사망하고 나 혼자 남기 전까지는 절대 그럴 일없다"고 딱부러지게 못밖을 때 진즉 알아봤다. 시민들의 몸무게와 영양상태가 걱정돼 도심의 금싸라기땅에 유기농 채소시장을 열고, 심지어 햄버거 가게 탄산음료의 컵크기까지 정해주는 사람, 범죄율을 줄이려면 가정이 회복돼야하고 그러기 위해선 기죽은 아버지를 바로세워야 한다면서 'NYC 아빠', 특히 흑인과 라틴계 아빠 지원프로그램을 시작한 시장님.
일부 시민들은 "당신이 우리 유모냐"며 지나친 간섭에 불편한 반응을 나타내지만 과하다싶게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진짜 유모같긴 하다. 그 남자는 바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다.
정치인이면서도 어쩐지 정치인같지 않은 블룸버그 시장이 최근 미 정계 안팎의 관심을 새삼 받고 있다. 자신의 중도진보적 초당정치 아젠다를 밀어부쳐 기성정치판을 뒤바꿔 놓아줄 후보가 당선될 수있도록 아낌없이 선거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선후보 중 한명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던 상황에서 공화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을 전격 선언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경제난으로 인해 워싱턴 정치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회의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블룸버그의 새로운 행보는 범상치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오랜 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공화당에 입당했던 블룸버그는 동성애자 권익, 총기규제, 교육개혁, 줄기세포,낙태권,부자과세 등 많은 정책들을 둘러싸고 조지 W 부시 정부와 부딛히다가 결국 공화당 당적마저도 벗어던졌다. 그때 한말이 "성공한 선출직 행정가라면 당파적인 전투보다는 진정한 실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특정 정치이데올로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좋은 정책과 아이디어를 선택하고 모든 당파의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였다.
그로부터 만 5년이 지난 2012년, 블룸버그의 '초당정치철학'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선후보와 연방상하원 선거후보 등 소위 '큰 물고기' 지원 뿐만 아니라 주의회 후보, 심지어 지역 학교 이사회 선거와 판사선거 후보까지 지원하겠다고 나선게 신선하다. 한마디로, 나무에 제대로 열매가 맺히려면 토양이 달라져야한다는 이야기이다. 당적도 가리지 않는다.
단 한가지 조건은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총기규제를 강화하며, 교육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주장하는 블룸버그와 뜻을 같이하고 직접 실천할 수있는 능력을 가진 후보인가란 점뿐이다. 언뜻 보기엔 그리 어렵지 않을 것같지만, 이슈 하나하나가 미국사회에서는 지뢰밭과 다름없는 것들이다.
블룸버그의 정치실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 중에는 상위 0.1%에 들어가는 초특급 부호답게 결국은 돈으로 정치를 움직이겠다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아무래도 가장 많은 듯하다. 결국엔 대통령 출마를 위한 밑작업이란 분석도 있다. 3기 시장 임기를 마치는 내년, 블룸버그 나이가 71세이다. 그 때가서 블룸버그가 "세상사람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바꿨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블룸버그의 파격적이면서도 고집스런 행보는 기성정치의 무능과 당리당략에 신물난 보통사람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외신을 오래 다뤄온 탓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외신 속에서 아름다운 정치인, 아름다운 정치를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블룸버그에 눈이 가는 이유도 그렇다. 아름다운 정치인,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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