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출신 캐나다 이민자 남성과 둘째 부인이 첫째 부인과 딸 3명을 이른바 '명예살인'해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반인류적 범죄 명예살인에 대한 관심이 새삼 집중되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등 일부 남아시아와 중동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던 명예살인이 서구 이민자사회에서도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사건은 가부장적인 이슬람권 이민자들이 서구로 이민와서 겪는 가치관의 혼란, 가족관계파괴 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명예살인은 얼마나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각국의 법적 대책은 얼마나 이뤄지고 있으며, 과연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일까.
샤피아 가족의 비극
지난 2009년 6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의 운하에서 물에 빠져 가라앉은 차 한대가 인양됐다. 차 안에는 4구의 여성 시신이 있었다. 로나 아미르(50), 자이나브(10) , 사하르(17),지티(13)였다.
경찰은 4명의 여성이 모두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모하마드 샤피아(58)의 가족 구성원이란 사실에 주목했다. 수사초반부터 가족내 살인사건일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자 경찰은 결국 샤피아, 둘째부인 투바(42), 두 사람의 아들 하메드(21)를 일급살인죄로 구속했다.
지난 1월 29일 배심원단은 15시간에 걸친 토론끝에 세 사람이 첫부인과 딸 3명을 이른바 '명예살인'했다고 평결했다. 아이를 낳지 못했던 로나는 최근 수년간 남편에 이혼을 요구해온 상태였으며, 샤피아와 투바 사이에서 출생한 맏딸은 화려한 옷을 입고 파키스탄 청년과 연애를 하는 등 아버지와 자주 마찰을 겪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이슬람 전통에 맞지않는 서구식 생활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을 샤피아 등 3명이 '처벌'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3명이 다른곳에서 여성 4명을 죽인 후 사체를 차에 실어 운하에 빠트려 우연한 사고인 것처럼 위장했을 것으로 판단했고, 배심단은 결국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서구 이민자사회와 명예살인
캐나다에서 명예살인이 발생한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06년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 가정의 여성 카테라 사디키가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약혼자와 함께 오빠에 의해 살해당했다. 2010년에는 무하마드 파르베즈란 남성이 히잡(이슬람 여성스카프)을 쓰기 싫어하는 16세 딸을 아들과 함께 살해했다.
인도,파키스탄 등 옛 식민지역 이민자가 많은 영국에서는 살인을 포함한 '명예범죄'가 2010년 현재 2283건 보고됐다. 이는 전년대비 47%나 늘어난 규모이다. 유럽의 이슬람국가인 터키 경우 2008년까지만해도 평균 1주일당 1명꼴로 '명예살인'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최근들어서는 크게 줄어든 상태이다. 터키 이주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독일에서도 이슬람 전통과 서구문화의 충돌로 갈등을 겪는 이민자 가정들이 많고,이로 인해 관련 범죄가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명예살인' 연간피해자 최소 5000명
유엔 통계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명예살인 피해자는 연간 5000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동, 남아시아 인권운동가들은 비공식 피해규모는 유엔 통계치보다 4배나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악의 국가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에서 각각 해마다 약 1000명이 '명예살인'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0년 6월 인도의 인권변호사 란지트 말호트라는 한 국제인권회의에서 발표한'강제결혼의 사회적 법적 측면'이란 보고서를 통해 펀자브, 하리야나, 우타르 프라데슈 3개주에서만 해마다 최소 900명이 명예살인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주에서 발생한 100∼300건을 포함하면 인도 전역에서 명예살인 건수는 최대 1300건에 이른다는 것이다.파키스탄 경우 2005년 무려 1만건이 보고됐다가, 현재는 1000여건으로 '급감'한 상태이다. 지난해 12월 20일 파키스탄 인권위원회는 같은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으로 675명의 여성이 '가문의 명예'란 이름으로 살해당했다고 공식보고했다. 전년도에는 791명이었다.
살해된 675명 중 중 71명은 18세 미만의 소녀였다. 450명은 '부적절한 관계'때문에 살해됐고, 129명은 '가문의 허가없이 결혼'한 죄로 목숨을 잃었다. 일부는 집단성폭행 당한 뒤 살해되기까지했다. 인권위원회는 "명예살인 근절을 위해서는 법적 개혁, 행정력 강화, 사회적 관심, 지방 부족원로들의 적극적인 제지 등이 필요한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법보다 인식변화 시급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지난 1월 31일 법무부와 내무부 관계자 등으로 이뤄진 정부위원회가 현행 형법에 명예살인 처벌조항이 없어 독립적인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안에 따르면 가족으로부터 명예살인 위협을 받는 커플은 피난처를 제공받게 되고 명예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게 된다.그러나 입법화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이 야기될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정치적 영향력이 강력한 인도 북부지역 마을 공동체 원로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 과연 법안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여성을 '소유물'로 보고 , 교환가치를 잃었을 경우 '폐기처분'해도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은한 명예살인은 근절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하나의 비극 '명예범죄'... 아이샤와 마이의 슬픈 이야기, 그리고 그녀들의 용기
2009년 아프가니스탄 남부 우루즈간주의 한 마을. 18세 소녀 비비 아이샤는 어느날 밤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깼다. 문을 부술듯 열고 들이닥친 사람은 탈레반 조직원인 남편과 일행들이었다. 14살때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남편과 결혼한 아이샤는 온갖 학대를 견디다 못해 가출해 아는 사람의 집에 숨어있던 참이었다.
이미 한차례 가출했다가 친정아버지에게 붙잡혀 시집으로 돌려보내진 적이 있던 비비에게는 이번이 두번째 가출이었다. 남편은 아이샤를 산으로 끌고 갔다. 그 곳에는 시동생과 탈레반 사령관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은 아이샤가 남편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처벌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시동생이 아이샤를 쓰러뜨린 다음 발버둥치지 못하게 내리 눌렀고, 남편은 칼로 아이샤의 귀와 코를 잘랐다.
남편과 일행들은 피를 흘리며 기절해 쓰러져있는 아이샤를 산에다 그대로 내버려둔채 마을로 내려가버렸다. 아이샤가 정신을 다시 찾은 때는 깜깜한 한밤중이었다. 그는 그 순간을 훗날 이렇게 기억했다. "깨보니 코에서 차가운 콧물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콧물이 아니라 비비가 흘린 피였다.
이른바 '아프간의 코잘린 소녀' 사연은 지난 2009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8월 9일자 커버스토리로 사진과 함께 소개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의 절대적 지원을 받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정권하에서도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 '가문의 명예'란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저질러지는 만행에 세상이 경악한 것이다. 예쁜 얼굴 한가운데가 뻥뚤려 있는 비비를 찍은 타임지의 커버사진은 말그대로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파키스탄 여성 무크타르 마이(본명 무크타란 비비)의 사연은 더 끔찍하다. 펀자브지방의 작은 마을 미르와라에서 타틀라 부족 일원으로 태어나 성장한 마이는 28살때인 2002년, 마을의 실권을 쥐고 있는 마스토니 부족회의로부터 집단성폭행형에 처해졌다.
12세 남동생이 지체높은 집안의 소녀와 '부당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생이 상대 가문 여성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똑같은 식으로 벌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마을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끌려간 마이는 상대집안 남성 14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발길질까지 당한채 길바닥에 버려졌다.
아이샤와 마이는 '명예범죄'로 희생당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범죄의 유형도 신체훼손, 성폭행, 염산투척, 구타 등 수많은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두사람의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뒤 현지에서는 용의자 체포 등 법적 처벌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아프간 법정은 아이샤에 대한 보복을 사주한 혐의로 체포했던 시아버지를 증거불충분으로 슬그머니 석방했고, 같은해 4월 파키스탄 대법원은 마이를 성폭행했던 14명 중 1명에게만 종신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려 9년에 걸친 마이의 기나긴 투쟁이 사실상 패배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현재 아이샤와 마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프간 주둔 미군병원을 통해 미국으로 보내진 마이는 지난해 가을 코와 귀 복원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후 미모를 되찾았다. 아이샤는 지난해 11월 아프간으로 돌아갔다. 한 선량한 부부의 양녀가 된 그는 새로운 삶에 매우 만족해 있는 것으로 미 여성인권단체들이 전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마이는 여전히 고향에서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치안관과 결혼한 그는 지난해 12월 5일 첫아들을 출산해 엄마가 됐다. 죽음과도 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의지를 잃지 않았던 두 여성은 전세계에 '명예범죄'의 참상을 알리는 살아있는 메시지이자, 유사한 피해를 당한 수많은 여성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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