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얼굴들이 자아내는 공포를 보라!
저들은 계획을 칼날같이 수행해 나간다.
저들에게는 피가 훈장이다.
도살이 영웅적인 행동이다.
오, 신이여, 이것이 당신이 만든 세상입니까?
7일 동안 기적과 권능으로 일하신 결과입니까?
(중간 내용 줄임)
노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공포를 노래해야 할 때에는
내가 살아 있다는 공포
내가 죽어 간다는 공포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그처럼 무한대의 순간 속에
침묵과 비명만이 담겨 있는 것이
내 노래의 끝이다.
내가 보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내가 느꼈고,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
그 순간의 탄생이리라…….’
(1973년 9월 쿠데타 당시 살해당하기 전에 지은 시)
쿠데타 군의 총탄에 숨진 칠레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사진)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40년만에 과연 풀릴까.
로이터통신 등은 하라 피살사건과 관련된 군 장교 출신 용의자 4명이 2일 구속됐고, 미국 플로리다주에 거주 중인 1명에 대해서는 정식의 인도요청서가 발부됐다고 보도했다. 용의자들은 지난해 12월 28일 미구엘 바스케스 수사판사가 용의자 8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경찰에 자진출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우고 산체스 전 중위는 1973년 9월 11일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가 발발한 직후 하라를 포함한 수백명의 지식인들이 산티아고의 칠레스타디움(현재 이름은 빅토르 하라 스타디움)으로 끌려가 불법구금 상태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을 당시 부책임자였던 인물이다. 국내 거주 용의자 3명도 곧 경찰에 자진출두할 예정인 것으로 칠레 현지언론들은 보도했다.
'평화롭게 살 권리'등 수많은 노래들을 통해 하층민의 고통과 슬픔을 노래했던 하라는 군인들에게 끌려간지 닷새 후인 9월 16일 기관총으로 총살당했으며, 3일 뒤 한 공동묘지 인근의 철로에서 4구의 시신과 함께 버려진채 발견됐다. 당시 하라의 몸에는 40개 이상의 총알이 박혀있었으며, 저항가요를 부르며 기타를 쳤던 두 손은 처참하게 뭉개진 상태였다. 칠레 국민들은 하라의 처참한 죽음을 "누구든 저항하는 자는 이렇게 된다"는 경고장으로 받아들였다.
하라의 영국인 부인 조앤 하라는 2일 산티아고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빅터를 위한 정의가 실현되기를빌며 같은 고통을 당한 모든 이들에게도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정부는 플로리다에 거주하고 있는 페드로 바리엔토스를 칠레에 인계하라"고 촉구했다.
무용가 출신인 조앤 하라는 남편이 사망한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1973∼1990년) 치하의 잔혹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처벌을 촉구하는 한편, 남편과 함께 구금됐다가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증언을 채록하는 등 지난 40여년동안 칠레의 과거사 청산과 정의구현을 위해 뛰어다녔다.
지난 2009년에는 정확한 부검을 받기 위해 남편 유해를 무덤에서 꺼냈고, 재매장 장례식은 미첼 바첼레트 당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사실상 국장으로 엄숙히 치러졌다. 바첼레트 전대통령도 피노체트 쿠데타에 저항하다 당시 장군이었던 아버지를 잃었던 군부독재체제의 피해자이다.
<하라 장례식에 참석한 바첼레트 대통령(왼쪽)>
<쿠데타 당시 대통령 궁을 사수하고 있는 아옌데 대통령(가운데)>
1973∼1990년 피노체트 독재정권 기간동안 약 3000명이 납치 및 사망했으며 2만8000명이 고문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피노체트는 퇴임 뒤에도 합참의장, 종신 상원의원 자리를 차지한 채 버티다가 98년 영국 방문 중 스페인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됐다. 하지만 칠레로 송환된 뒤에도 건강 문제를 들어 재판에 응하지 않았고, 2006년 12월 가택연금 한달만에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다.
지난 20여년동안 과거사 청산을 위한 칠레 민선정부의 노력은 정계 및 군부의 피노체트 추종세력의 방해에 번번히 부딛혀 지연돼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라집안 변호사는 AP,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군부는 아직도 아직도 하라의 죽음 등 칠레스타디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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