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가 이미 10여년전에 런던 참수테러, 보스턴 마라톤폭탄테러에서 나타난 '외로운 늑대(Lone Wolf)'형 테러를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해 추진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극단화연구센터(ICSR)의 테러전문가 쉬라즈 마허는 23일 CNN과 인터뷰에서 " 알카에다가 10여년 전에 포스트 9.11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부 무사브 알 수리가 주장한 '1인 부대화'전략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1인 부대화'는 이슬람 신자 각자가 테러 부대가 돼서 지하드(성전)'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마허는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이 쏟아져들어오고 탈레반 조직이 무너지면서 알카에다는 더이상 아프가니스탄을 테러육성기지로 활용하기 어려워졌다"며 "이로인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내부토론이 벌어졌고 알 수리의 주장이 알카에다의 새 전략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0년 전후부터 알카에다는 추종자들에게 '작고 단순하게 생각하라'면서 소규모 테러를 독려했다는 것.
<알 수리가 테러캠프에서 화이트보드에 도표까지 그려가며 1인테러부대화 전략을 강의하고 있는 동영상 화면>
<알 수리가 유럽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당시의 모습. 청바지 차림이 지극히 서구적이다>
알 수리가 알카에다의 '가공할 신진전략가'로 미국과 영국의 대테러당국에 포착된 것은 2003년쯤부터이다. 알 수리가 알카에다 테러캠프에서 도표까지 그려가며 '1인 테러'전략을 강의하는 동영상이 입수된 것. 이 동영상에서 그는 9.11테러 이후 기존의 대규모 테러조직의 활동이 불가능해졌기때문에 이슬람 전사들이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 10명 이하 세포조직을 만들거나 단독으로 테러를 벌여야한다고 역설했다.
1958년 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하페즈 알 아사드 정권에 저항하는 무슬림형제단 봉기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소련전에 참전했고, 이 과정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만나 알카에다에 합류했다. 이후 그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는 대신 스페인, 영국 등 유럽각지에서 저널리스트로 행세하며 활동했고, 9.11테러 이후에는 피신생활을 하다가 2005년 파키스탄에서 미군당국에 체포됐다. 현재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허는 " 알카에다의 새로운 소규모 테러전략을 수립한 것은 알 수리이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은 미국출신 테러리스트 안와르 알 올라키"라고 지적하고, 아라비아반도알카에다(AQAP) 지도자 알 올라키가 2010년 창간한 영어판 온라인잡지 '인스파이어'가 1인테러를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알 올라키는 미군의 드론공격 작전을 받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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