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터키 시위가 탁심광장에서 열리는 이유

bluefox61 2013. 6. 5. 22:02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보수 이슬람화 정책에 맞서는 시위대가 탁심 광장에서 약 일주일째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이 그랬고, 그보다 앞서 1987년 서울 시청 광장이 그랬던 것처럼 
탁심 광장은 터키 젊은층과 지식인들에게 오래전부터 민주주의의 중심지이자 상징으로 받아들여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시위사태는 정부가 탁심 광장 옆에 있는 겐지공원을 밀어버린 다음 이 곳에 19세기 오토만 제국시대 스타일의 건축물과 이슬람 사원을 세우려는 계획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몇몇 시민운동가들을 과잉진압한 것이 단초가 됐다. 

도대체 이들은 왜 탁심 광장 개발계획을 이렇게 결사 반대하는 것일까.
일차적인 이유는 이스탄불의 과도한 개발로 인해 건물과 도로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녹지가 대폭 사라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공원이 줄어드는데, 하필이면 탁심광장 옆에 있는 겐지공원까지 밀어버리고 건물을 지어야하는가란 것이다. 

공중에서 본 탁심 광장과 겐지공원의 모습을 보면, 시민운동가들이 정부의 개발계획을 반대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사진을 보면 푸른나무들이 있는 곳이 게지 공원이고, 길 건너서 네모난 공간이 탁심 광장이다. 게지 공원 한가운데 동그란 모양의 공간 중앙에 있는 것이 분수대이다. 그리고 탁심광장 왼쪽의 동그란 공간에는 공화국 기념탑이 있다. 주변에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는데서 알 수있듯이, 이스탄불 시의 녹지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탁심광장과 게지공원과 아주 가까운 곳에 총리 공관이 자리잡고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이 사진을 보면,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 수있다.

 



게지 공원 근접 사진은 이렇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 분수대 모습.

 


탁심 광장 옆에 공화국 기념탑. 바로 그것이 시위대가 탁심 광장에서 점거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화국 기념탑이다. 1923년 오스만제국 지배를 끝내고 터키가 현대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군상 조각상의 한가운데 서있는 분이 바로 무스타파 케말 아타르튀르크, 흔히 케말 파샤로 불리는 초대대통령이다. 

그러니까 탁심 광장은 터키 공화주의를 기리는 현장,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엄격한 분리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공화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이념을 기리는 곳인 셈이다. 
바로 이런 의미가 있는 광장과 공원이기때문에, 굳이 이곳의 일부를 밀어버리고 19세기 오스만시대의 군대막사를 재연해 쇼핑센터로 이용하겠다는 에르도안 정부의 계획을 모종의 정치적 의도로 보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탁심 광장에 있는 18세기 물 관리 시설> 


사실, 탁심광장은 공화국 건설 이전에도 이스탄불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었다. 
'탁심'이란 터키어로 '분배'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고대시대부터 바로 이곳에 돌로 만든 지하 저수지가 있어서 시내 곳곳으로 물을 '배분'하는 역할을 했다. 그 이후로도 오랜세월동안 탁심 광장은 이스탄불의 수자원이 한곳에 모였다가 사방으로 전달되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정의로운 배분과 견제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탁심이란 명칭이 공화국건설을 기념하는 공원의 이름으로는 더없이 어울리는 셈이다. 

터키 정치 1번지로서의 상징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탁심 광장에서는 늘 각종 시위가 많이 열리고 있다. 
1969년 2월 16일에는 좌파 시위대 150여명이 우파 시위대와 유혈 충돌했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사건이다.
1977년 5월 1일 노동절때에는 노동계 시위대를 향해 우파 괴한들이 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무려 36명이 총탄에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후리예트 등 현지언론들은 탁심광장 주변 식당들이나 체인식당들이 최근 점거 시위대에게 음식을 보내달라는 시민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출판사들은 광장을 임시'시민도서관'으로 만들기위해 책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터키 시민들의 높은 사회의식을 잘 보여주는 단면들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