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소설의 모티프가 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뿐만 아니라 주인공 그리트가 양동이에 주전자로 물을 붓거나 유리창을 닦는 모습, 창가에 서서 무엇인가를 싼 수건을 펼쳐 보는 마지막 장면, 심지어 화실 창문의 문양이나 벽에 걸린 세계지도 등 소품에 이르기까지 페르메이르의 작품 그대로다. 화실에서 17세기 방식으로 물감을 섞는 과정이나, 카메라 옵스큐라를 만나는 것도 즐거운 경험.
창문틀까지 똑같이 복사한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그 뿐 아니라
빛이 들어오는 각도와 농도까지도 그림과 흡사하다.
영화 속에서 그리트가 그림에 나타나는 빛의 효과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
영화 속 하프시코드(버지날)과 그림 속 하프시코드. 뚜껑의 그림이 똑같다
페르메이르의 부인이 그림을 보면서 '음란하다'고 외치는 장면.
그림을 통해 남편의 욕망을 알아챘다는 점에서 부인이 그림에 아주 무지하지는 않은 듯 묘사된다.
절제된 감성과 우아한 영상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베르메르의 팬은 물론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동명소설을 먼저 읽은 독자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1600년대 중반 가난한 십대 소녀 그리트는 당대최고의 화가 페르메이르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그녀는 뜻하지 않게 화가의 모델이 되고, 두사람은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자, 그리트는 페르메이르의 집을 나오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가. 아무 일도 없었다. 아니,사실은 엄청난 일이 있었다. 그리트는 주인의 화실에서 색깔에 눈뜨면서부터 사랑을 알게 되고, 이해와 배려, 희생과 좌절, 그리고 육체적 갈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수만가지 빛깔을 배우게 된다.
이 영화에서 '진주'는 순결과 사랑, 그리고 갈망의 상징이다. 피터 위버 감독은 그리트가 페르메이르 작품의 모델이 되기 위해 귀를 뚫고 진주귀걸이를 거는 행동에서 명백하게 육체적 사랑의 암시하고 있다. 페르메이르는 바늘을 쥐고 그리트의 귀를 뚫고, 그리트는 첫경험처럼 핏방울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 이 사랑이 희망없는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그리트는 그 길로 푸줏간 청년으로 뛰어가 자신의 육체적 갈망을 해소하려 한다.
대사를 극히 자제하면서도 눈빛만으로 감정의 회호리를 표현낸 스칼렛 요한손의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연기에서 차세대 대형 여배우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 만 20세도 채 되지 않은 나이(84년 11월생 . 영화촬영은 2002년에 이뤄졌고 2003년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후 2004년 극장개봉했다. 국내개봉은 2004년 9월) 에 어떻게 이처럼 섬세하게 감정의 결을 눈동자에 실을 수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코엔형제의 '그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아버지같은 아저씨에게 천연덕스럽게 구강성교를 하던 그녀의 연기에서 진작 알아보기는 했지만,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번역되나요'로 성숙해진 감성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로 이번엔 깊이까지 더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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