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누구의 책임인가

bluefox61 2007. 4. 2. 14:16

충격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평화롭던 대학 캠퍼스에서 수십명이 총기난사로 목숨을 잃은 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범인이 한국인이란 사실에 경악했던 사람들은 사건발생 이틀 뒤 공개된 동영상에 또다시 할 말을 잃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총기소유 허용을 비롯해 세계 최강대국의 너무나도 허술한 치안 대처,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치료 및 적절한 사전대응, 이민자가 느끼는 압박감과 고립, 모방을 부르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대중문화, 인간관계가 파편화한 현대사회 등등의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생계에 매달리느라 자녀들의 내면을 보살피지 못하는 이민가정의 현실, 자녀의 성공을 모든 가족의 성공으로 여기는 한국적 가족문화에서 비롯된 압박감 등이 비극적인 이번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한가지 꼭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개인’과 ‘집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문제다. 


버지니아공대 사건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이 범인을 ‘아시아계’로 지목하자, 우리 국민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마도 ‘설마 한국유학생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범인은 중국인’으로 일부 언론들이 보도하자 일순 안심했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현지 경찰이 범인 국적을 공개한 후, 당장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교포들이 걱정됐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비자면제프로그램·일본군위안부 결의안 의회 상정 등 미국과 관련해 진행 중인 수많은 현안들에 미칠 파장이 우려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한 개인의 범죄와 우리 사회의 연결지점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거기에는 분명 한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안보·정치·외교·경제·문화적으로 특수한 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느끼는 집단적 죄의식의 근원에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에 앞서, 혹시나 이번 사건으로 받게 될 구체적인 불이익을 우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어쩌면 초래될 수 있는 불이익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조승희씨의 끔찍한 범죄를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의 돌출행동으로만 국한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사회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죄의식’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유감’과 ‘사죄’, ‘개인’과 ‘집단책임’의 의미를 정확하게 따지고자 하는 일각의 자세는 반갑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 한 조간신문은 유명 시인의 ‘우리가 당신들을 죽였다… 평화를 사랑했던 우리 민족이… 그 마음이 무디어졌다는 한마디 이 외에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부디 용서하시라’란 내용의 조시(弔詩)를 게재했다. 시인은 ‘우리 민족’이 당신들을 죽였다라고 사실상 말한 셈이다. 과연 그렇다고 단언해서 말할 수 있는가. 미국 사회조차 이번 사건의 본질을 아직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의 사죄는 과연 적절한 것일까.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기도가 열린 것을 비롯해 이번 주말에도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참가자들이 ‘미국’ 또는 ‘국익’을 걱정하는 동시에 ‘인간’을 위해 촛불을 켤 것으로 믿는다.


개인적으로도 촛불 하나를 켜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고립됐었을, 마음 속으로 지옥의 가장 어두운 구석만을 헤매고 돌아다녔을 한 한국청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