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 EU)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제재를 잇달아 발표하면서,이른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너서클,이른바 '푸틴 사단'에 대한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푸틴을 감싸고 있는 이너서클을 집중적으로 제재함으로써, 러시아 국민들에게 미칠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는 한편 권력층의 균열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서방의 목표이다. 현재까지 서방의 제재 명단에 오른 인물은 약 50명이다. 이중 푸틴의 이너서클로 꼽을 만한 사람은 3분의 1 정도이다.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의 경제와 권력을 틀어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푸틴 이너서클'의 구성원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번째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신흥부호인 '올리가르흐', 두번째는 행정부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실로비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푸틴의 고향이자 정치적 뿌리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마피아'로 불리기도 한다.
푸틴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수학하고 , 국가보안위원회(KGB)나 연방보안국(FSB)을 거쳤다면 그야말로 '푸틴 체제의 성골'이라고 할 수있다. 현 대통령 비서실장인 세르게이 이바노프와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회장이 대표적이다.
▶올리가르흐 = 러시아에서 '신흥부호'를 뜻하는 올리가르흐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중반 보리스 옐친 정권 때부터이다. 그러나 2000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올리가르흐의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철도공사 사장, 게나디 팀첸코 볼가그룹 회장 겸 석유거래기업 군보르 소유주, 유리 코발축 로시야은행 이사회 의장, 건설사업으로 부호가 된 아르카디와 보리스 로텐베르크 형제, 그리고 첨단기술회사인 로스텍의 세르게이 체메조프 최고경영자(CEO) 등이 꼽힌다.
이중 야쿠닌과 코발축은 이른바 푸틴의 '오제로(호수) 다차(별장) 집단농장' 멤버이다.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 시절인 1990년대 중반, 교외 호수 인근 지역에서 몇명의 친구,친척들과 함께 주말집단농장을 운영했다. 야쿠닌과 코발축은 주말농장에서 푸틴과 각별한 우정을 나눴던 인연으로 푸틴이 정권을 잡자 고위 관료직에 임명됐고, 현재는 러시아철도공사 사장과 로시야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중이다. 미국은 특히 코발축을 푸틴의 개인 재산을 관하는 '금고지기'로 보고있다.
팀첸코는 러시아 석유거래의 황제로 불린다. 서방 정부들은 팀첸코의 군보르 그룹 주식 상당수를 푸틴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유도선수였던 푸틴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유도클럽인 '야바라-네라'를 만든 사람이 바로 팀첸코이다.
아르카디와 보리스 로텐베르그 형제는 SMP은행과 국영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의 건설 협력사인 SGM그룹의 공동주주다. 형 아르카디는 푸틴의 어릴적 친구이며, 동생 보리스는 형 친구인 푸틴과 함께 어울려다니며 유도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알져져있다. 둘다 국제유도연맹 이사회 이사, 러시아유도연맹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유도광' 푸틴과의 인연을 이어나가도 있다.
문제는 두사람이 푸틴 정권의 대형 건설사업을 독식하다시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로텐베르크 형제 회사가 소치올림픽 파이프라인 등 공사 수주를 통해 약 70억 달러를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87억 달러가 투입된 소치올림픽 도로공사 역시 야쿠닌이 사장으로 있는 러시아철도공사가 맡았다. 소치올림픽 예산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500억 달러에 이르고 , 준비과정에서 온갖 부정부패가 판쳤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처벌은 커녕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는 것은 '푸틴의 친구'들 때문이란 말이 러시아에서는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푸틴의 이너서클 올리가르흐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최소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팀첸코가 153억달러로 가장 많고, 아르카디 로텐베르그가 40억 달러, 보리스 로텐베르그가 17억 달러, 코발축이 14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실로비키='실로비키(siloviki)'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대부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피아'출신이고, 정보기관 근무를 거쳐, 정부와 의회에서 최고위직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빅토르 이바노프 연방약물관리청 청장 및 국가안보위원회 위원,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비서실장,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회장, 세르게이 나리슈킨 하원의장, 드미트리 로고진 국방 및 우주산업 담당 부총리 등이다. 빅토르 이바노프는 KGB를 거쳐 FSB 부국장을 역임했고, 푸틴 1기 행정부때 행정실 부실장으로 재직하면서 푸틴을 최근거리에서 보필했다. 푸틴과 함께 KGB에 근무하면서 친해진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국방장관, 부총리를 거쳐 현재는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세친 로스네프트 회장은 기업인이지만,올리가르흐 보다는 실로비키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낸 그는 2012년 푸틴 3기 정부가 출범했을 때 내심 총리직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영 에너지기업 로스네프트 회장으로 임명됐다.
실로비키의 최대관심사는 돈보다는 푸틴 체제의 공고화이다. 과거 소비에트체제때처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중무장돼있다. 푸틴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푸틴 정치이데올로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그룹이라고 할 수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최대 위협을 '서방'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푸틴 정부가 소비에트체제때로 되돌아가는 듯한 극단적 보수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합병을 전격적으로 밀어부친 데에는 이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이들은 '위대한 러시아'의 재건과 국가안보강화를 역설하고 있다. 서방이 이들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킨 것은 바로 이런 점때문이다.
▶기타= 올리가르흐나 실로비키는 아니지만 푸틴의 이너서클 멤버인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드미트리 키셀료프이다. 친크렘린,극단 보수성향 언론인으로 유명했던 그는 TV 방송에서 "동성애자들의 심장을 땅에 묻거나 태워버려야한다"고 막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올해 초 국영언론 로시야 세고드냐 사장에 임명됐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왜곡보도를 주도한 인물로 EU의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밖에 푸틴 대선캠프의 총책임자로 활동했던 드미트리 코작 부총리,행정부의 방대한 살림살이를 도맡아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코진 행정실장은 푸틴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색적인 것은,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와 언론들이 지목한 '푸틴 이너서클'에 메드베데프 총리가 포함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력만 놓고 보면 푸틴체제의 성골이 되고도 남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에, 상트페테르부르크대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푸틴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에 근무하기도 했다.
푸틴 1·2기 때 가스프롬 사장과 제1부총리를 역임했던 그는 푸틴이 3선 금지 법에 걸려 더이상 대통령 직에 머물 수없게 되자, 2008∼2012년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가 푸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총리로 내려 앉았다. 하지만 그는 올리가르흐와 실로비키는 물론이고 '기타 이너서클'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으며, 미국과 EU의 제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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