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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의 홍역을 치른 그리스 수도 아테네는 6일 일상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아직도 시내 곳곳에는 채권단의 긴축요구를 거부하자는 ‘오히(oxi:반대)’전단이 붙어있고, 은행 벽에 휘갈겨 쓴 ‘유로=나치’란 낙서가 눈에 띄었지만, 시민들은 겉으로마나 차분함을 되찾고 있었다. 


오후 느즈막한 시간에는 시내 곳곳의 야외식당과 카페에 차가운 음료와 외식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들어찼다. 그리스 근로자들의 일반적인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전후까지이다. 오후 1시반쯤이면 은행과 관공서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들의 근무시간이 끝난다. 근무시간이 짧다보니 점심은 간단히 샌드위치 등으로 때우고, 퇴근 후에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카페나 식당을 찾고 있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철에는 낮잠을 즐기는 관습도 여전히 남아있다. 너무 여유있는 그리스 시민들의 모습이 외국인의 눈에는 솔직히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에 처한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시내 쇼핑가에서 구운 옥수수를 파는 상인


은행에서 하루 60유로 밖에 찾을 수 없는데 어떻게 외식을 하느냐는 질문에 한 교민은 "워낙 야채와 과일이 풍부한 만큼 음식값이 아직은 적절한 수준이고, 가족이 적을 경우엔 직접 재료를 사서 조리하는 것보다 외식이 경제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어려워도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 그리스 특유의 국민성이자 ‘그리스식 라이프(greek life)’ 라고 덧붙였다. 


신타그마 광장 근처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그리스에서는 비극을 코미디로 부른다"며 "인생도 그렇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 이 비극적 상황이 곧 코미디"라며 웃었다. 또다른 시민은 "외신들이 최근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그리스인이라면서 사진을 찍어서 보도했는데, 그것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면서 "어느 대도시에나 걸인이 있는 것처럼 아테네에도 경제위기 이전부터 걸인, 마약중독자들이 있었다"며 외신에 비친 왜곡된 그리스의 이미지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전보다 급감했다지만 여전히 몰리는 관광객들


하지만 은행의 현금인출기(ATM)앞에서 현금을 찾기 위해 줄 서있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경제위기의 고통과 불안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주 은행거래 제한조치가 처음 취해졌을 때처럼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지는 않았지만, 일일 인출 상한 금액인 60유로를 찾아들고 돌아서는 얼굴표정이 씁쓸해보였다.


ATM 앞에서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30대 청년은 "청년실업이 심각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분들이 가장 걱정이다"며 "뇌약볕에서 은행앞에 줄 서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이 정말 아프다"고 말했다. 또 "정부와 채권단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50대 여성은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채권단의 요구에 ‘반대’하는 결과로 나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가능한 빨리 은행거래가 정상화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어쩌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그리스 ANA-MPA 통신은 당초 7일 종료될 예정이었던 은행거래 제한조치가 8일에도 계속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ATM  인출한도도 60유로로 유지된다. 그리스 국민들은 여전히 짙은 안개 속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60유로를 찾기 위해 줄선 사람들

 

5일 치러진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박빙예상을 깨고 채권단의 추가긴축 요구안을 거부하는 압도적인 반대표가 쏟아지면서, 그리스의 금융가와 기업계가 패닉에 빠져들고 있다. 은행 영업 재개와 자본통제 해제가 언제 가능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물론이고, 내일(7일)쯤이면 그리스 전국 은행의 현금이 동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BBC는 5일 그리스 금융계 소식통을 인용해 "그리스 금융기관들이 수일내에 현금고갈 사태를 맞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예정대로 7일 은행 문을 열고 하루 인출할 수 있는 액수를 일일 60유로로 제한한 자본통제를 풀 경우 그리스 은행은 하루도 버티기 힘든 지경이다. 루카 카첼리 그리스 은행연합회 회장은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그리스 은행들이 가진 유동성 완충자금 규모를 약 10억 유로로 밝히면서  "6일까지는 유동성이 보장된다"고 밝혔다. BBC는 유럽중앙은행(ECB)이 6일 회의에서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 상한선을 확대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경우, 그리스 기업들이 당장 이날부터 대규모 직원 감원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5일 전했다. 

 
현재 아테네에서는 근거를 확인할 수없는 흉흉한 소문들이 돌고 있다. 이른바 ‘예금삭감’설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3년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받았을 당시 10만유로 이상 은행 예금에 대한 삭감(헤어컷)을 단행했던 것처럼, 그리스 정부도 현금고갈을 막기위해 같은 조치를 곧 발표할 것이란 내용이다. 앞서 지난 4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3차 구제금융 협상에 들어가면 예금 헤어컷 조건이 붙을 것으로 그리스 은행들이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FT는 8000유로 이상 예금의 30%가 삭감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파르테논으로 오르는 골목길의 한 레스토랑..이런 곳은 역시 관광객 용인듯

그리스 기업들이 해외이전을 신속히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한국출신의 그리스 국적자는 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선박회사에서 일하는 가족이 있는데,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 회사가 본사를 키프로스 등 다른 나라로 옮기는 비상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었다"며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상황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과연 ‘전폭적인 반대’표가 채권단과의 협상재개를 이끌어내고 그리스의 협상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가장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사람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다. 앞서 그리스와의 협상재개를 ‘국민투표 이후’로 못박았던 메르켈 총리로선 그리스 국민투표의 결과 뿐만 아니라 독일내 강한 반그리스 정서도 의식하지 않을 수없다. 타게스슈피겔 은 5일 "그리스와 유럽을 연결하는 마지막 다리가 무너졌다"며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시리자 정부가 그리스 국민을 희망없는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메르켈 총리는 6일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긴급 정상회의를 갖는다. 두 정상이 이 자리에서 그리스와의 협상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그리스의 배척을 결행하느냐에 따라 그리스 위기의 향배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국민의 선택은 ‘오히(oxi:반대)’였다. 

 

전 세계의 관심 속에서 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유권자들을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탈 유로존) ’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의 추가긴축 요구안을 거부했다. 그리스 내무부는 개표결과  긴축 ‘반대’표가 61.33%, ‘찬성’표가 38.6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결과는 투표 전 여론조사와 5일 오후 7시(한국시간 6일 오전 1시) 투표가 끝나자마자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에서 찬반 표차가 박빙을 이룰 것으로 전망됐던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국민투표에서 반대 표가 많이 나와야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있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호소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인 것으로 분석된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아테네 중심가의 신타그마 광장에는 추가긴축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그리스 국기를 흔들면서 기쁨을 나타냈다.‘반대’표를 던진 시민들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채권단의 긴축요구를 반대한 것이지 유로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찬성’표를 시민들은 "그렉시트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5일 밤  TV 대국민 연설에서 "반대 결정은 민주주의는 협박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은행 영업재개 등을 위해 즉시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국민이 오늘 위임한 권한은 유럽과 결별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도록 협상력을 높이라는 것임을 전적으로 알고 있다"며 유로존에 남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그리스 경제위기 사태가 그렉시트로 치닫을지, 아니면 협상재개를 통해 위기 극복 방안을 찾을지 여부가 향후 48시간에 달려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스 금융가에서는 당초 정부가 발표했던 것처럼 7일 은행거래를 재개하고 일일인출금액을 60유로로 제한했던 조치를 해제할 경우, 이날 은행들의 현금이 바닥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6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을 증액해주지 않을 경우, 그리스 은행들은 줄도산이 불가피하다. 카티메리니, 로이터통신 등은 그리스 정부가 7일 은행 영업재개를 위해 ECB에 ELA 증액을 공식요청했다고 보도했지만, ECB 회의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한편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은 6일 오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과 전화회의를 연다. 그리스 양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전화통화를 하고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7일에는 그리스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사태의 향배를 가늠할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와 재무장관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Posted by bluefox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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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c 2015.07.11 1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스 일반인이 9시부터 1시반에 일을 끝내면 하루 5시간 정도만 일하는데. . . 그런데 OECD 자료에는 한국인처럼 많이 일한다는데. . 뭐가 맞는건가요 ?

  2. Favicon of http://bluemovie.tistory.com bluefox61 2015.07.13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이미 몇해전 OECD가 회원국 노동시간 및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그리스 노동시간이 유럽 평균보다 훨씬 많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독일보다도 많다는 겁니다. 제가 기사를 찾아보니, 그리스인 주당 노동시간은 42시간인데 독일은 35.3시간으로 돼있더군요. 그리스인 보다 일을 많이 하는 국가는 한국 정도..란 지적도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리스의 수치가 왜 이렇게 나왔는지를 알 수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는 기본적으로 관광업과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공무원, 일반 직장인들은 오후 2시 전후면 일을 끝내지만, 농부와 상점근무자들은 오래 일한다는 것이지요. 또 산업생산구조가 탄탄한 독일 경우 파트타임 근로제가 활성화돼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적게 일하고도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데 비해, 그리스는 산업 기반이 부실하다보니 그렇지 못하다고 보고서가 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의 농부 등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은 하는데, 그만큼의 댓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