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67

크리스토퍼 워큰

누구나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못할 영화 한장면이 있을 겁니다. 제 경우엔 그게 지나치게 다종다양하다는게 문제이긴한데, 그래도 그중 톱 5를 차지할 만한 것을 골라본다면 바로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헌터의 러시안 룰렛 장면입니다. 78년작이니까 제가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소싯적의 영화군요. 사실 이 영화에는 기억나는 장면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펜실바니아의 작은 철강도시에 형성된 러시아 이주민 커뮤니티가 흥미로웠고, 추운 겨울날 친구들이 사슴사냥을 하는 장면,영화 초반부의 흥겨운 러시아식 결혼식도 생각나네요. 무엇보다 배우들이 인상깊었는데, 진중한 이미지의 로버트 드 니로부터 그를 감싸안는 지적인 여성으로 등장한 메릴 스트립, 섬약한 감성의 소유자를 연기한 존 새비지, 그리고 크리스토퍼 워큰 등 휼륭한 연기자..

수전 서랜든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해에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파인 여배우 수전 서랜든이 [데드맨 워킹]으로 받은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팔아먹으려다가 아카데미와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습니다. 트로피를 엿바꿔먹으려던 것이었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트로피를 경매에 붙여서 얻은 수익으로 전쟁 구호기금으로 사용하려 했던 것이죠. 아카데미는 펄쩍 뛰었습니다. 감히 오스카 트로피를 상품으로 내놓다니 , 무엄하기 짝이 없다는 거죠. 서랜든은 이에 대해 ″한번 준 트로피를 가지고 왜 아카데미가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보수적인 아카데미를 신랄하게 성토했구요. 후속기사가 없어서 트로피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랜든이 트로피를 팔아먹으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된 듯합니다. 서랜든이 요즘 언론에 거론되는 경우는 대개 정..

장만옥

여자가 여자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릴 수도 있더군요. 몇해전 화양연화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시네코아 극장에서 열린 일반시사회장에서 제 가슴은 순전히 한 여자때문에 쿵쾅거리고 있었습니다. 검은 망사 스타킹에 조금 투박해보이는 구두를 신은 튀는 옷차림을 하고 극장 벽에 무심히 기댄 한 여자때문에... 그녀는 바로 장만옥이었죠. 그녀와 내가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숨쉬고 있다니! 아비정전에서 그녀가 연기했던 수리첸처럼 전 그 짧은 1분이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수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할 수있었답니다. 장만옥이란 이름이 맨 처음 다가온 것은 순전히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 때문이었죠. 비가 쏟아지는 밤 부둣가에서 유덕화와 장만옥이 손을 맞잡고 전화 부스로 뛰어들어가 열렬한 키스를 나누던 그 장면! 그리고 그..

샬럿 램플링

예순을 바라보는 여자의 섹스를 아름답게 그릴 수있는 영화감독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프랑스 감독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랑수아 오종의 2000년작 [사랑의 추억](원제는 [모래 아래(sous le sable)])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만큼, 이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의 섹스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지요. 이 영화의 DVD 서플먼트에는 오종 감독이 장면장면마다 어떻게 연출했는지를 직접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주인공역의 여배우가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누드 연기도 해야 한다는 점때문에 캐스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나이든 여배우들은 젊지 않은 육체를 화면에 드러내야한다는데 모두들 고개를 내저었다고 합니..

[킬빌]의 배우들

킬빌 1,2는 타란티노 감독의 재치와 다재다능함을 멋지게 입증한 작품입니다. 또한가지 특기할 만한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 뛰어나다는 점이죠. 주인공 우마 서먼은 물론이고, 빌역의 데이비드 캐러다인, 빌의 동생 버드 역의 마이클 매드슨, 애꾸눈 킬러 엘르의 대릴 한나, 그리고 영화 초반의 보안관과 70대의 늙은 포주 에스테반 1인 2역을 한 마이클 파크스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빛나지 않은 배우가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이제는 전성기가 한참 지나버린 데이브드 캐러다인과 대릴 한나의 경우는 재발견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죠. 그리스 여신과 같은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는 금발의 이 여배우는 70년 생이니까 올해로 34세가 됐군요. 그가 맨처음 배우로서 주목받은 것은 88년작 [위험..

게리 올드먼

드디어 나왔습니다. 아니, 너무 늦게 나왔나봅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의 첫머리는 당연히 게리 올드먼이어야 했습니다. 너무 아끼는 나머지(솔직히 멋있게 써보리라는 욕심때문에), 이렇게 순서가 뒤로 쳐지고 말았네요. 게리 올드먼과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기는 이미 10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시드와 낸시]에서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 역으로 단박에 마음을 빼앗아갔던 그는, [JFK]의 저격범 오스월드를 거쳐 [드라큐라]의 영원히 잊지 못할 드라큐라로 다시 찾아왔지요. [로미오 이즈 블리딩]에서 레나 올린과 파괴적인 사랑을 나누던 그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사실 게리 올드먼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연기들은 거의 영화사에 기리 남을만한 강렬한 것들이라 할 수있지요. [레옹]에서 레옹이 숨어있는 아파트를 습..

양조위

[2046]의 스틸 한장 바라보고 있습니다. 양조위가 한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자는 등을 보인채 남자에게 안겨있습니다. 양조위는 여자의 어깨 넘어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한장의 사진에 양조위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은가요. 여자를 가슴에 안은채 이처럼 처절하게 우울한 눈빛을 지닐 수있는 남자가 양조위말고 또 있을까요. 양조위는 자기복제와 쾌락이 넘쳐나는 홍콩 영화계에서 마치 고요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깊어지고 여유로워지는 배우가 바로 양조위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할리우드를 거치지 않고도 세계적인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한 중화권 유일의 연기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소하고 평범한 외모의 이 남자의 어디에서 도대체 이런 내공이..

버지니아 매드슨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스’ 보셨나요. 와인매니아가 아니어도, 와인을 마구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죠. 이 영화를 보면서, 미당의 시 ‘국화옆에서’가 떠올랐습니다. 한 명의 여배우때문이죠.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란 구절을 연상시킨 배우는, 와인가게 종업원 마야로 출연한 버지니아 매디슨입니다. 63년 9월 생이니, 벌써 그녀도 마흔고개를 넘었군요. 사람은 먹을 것에 비유해서 좀 뭣하지만, ‘사이드웨이스’가 향긋한 와인향을 제대로 머금은 영화가 될 수있었던 것은 바로 딱 알맞게 농익은 와인같은 배우 매드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혼의 상처로 마음을 닫고 살아왔을 마야가 친구의 집에서 마일스(폴 지아마티)와 와인잔을 기울이며 와인에 대해..

리즈 위더스푼

반짝거리는 자연산 금발머리 이외에 그리 눈에 확띄는 미모라고는 할 수 없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배우가 지금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리즈 위더스푼(사진) 말이죠. 최근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앙코르'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그는″ 내 평생 이 자리에 서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팬들 역시 위더스푼이 이십대를 갓 넘긴 나이에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앙코르'에서 전설적인 가수 자니 캐시의 '운명적사랑'인 준 캐쉬를 열연하기는 했지만, 워낙 로맨틱 코미디 전문 배우쯤으로 각인이 돼왔던 터라 연기파들이 대접받는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을 것으로 인식돼왔기 때문이죠. 일부 언론들은 ..

안젤리나 졸리

미국 영화배우 앤절리나 졸리가 6년전인 2001년 유엔난민구호기구(UNHCR)의 친선대사로 임명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를 바라보는 세간이 시선이 우호적이었던 것만 아니다. 유명연예인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암으로 사망한 오드리 헵번은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친선대사로서 남다른 헌신적인 활동과 노력으로 큰 존경을 받았었다. 졸리는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섹시하고 강렬한 외모는 물론이고, 당시 남편이었던 빌리 밥 손튼과의 다소 엽기스러운 애정생활 덕분에 사람들에게 왠지 제멋대로인 ‘배드 걸(Bad Girl)’의 인상을 심어줬던 사실이다. 즉, 애인을 가진 여성이나 아들을 둔 어머니를 긴장하게 만드는 종류의 여자가 바로 졸리였던 것이다. “전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스폿라이트를 받는 유명 관광객”쯤으로 앤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