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67

숀 펜

미국이 유엔에서 이라크 무력제재안 통과를 한창 밀어부치고 있던 2001년 10월 18일 , 워싱턴포스트지에 편지로만 이뤄진 이색적인 광고 한 개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부시 대통령께. 당신이 추진하고 있는 이라크 공격계획과 테러와의 전쟁은 시민권을 파괴하는 것이며 선과 악에 대한 단순하기 짝이 없고 선동적인 견해를 보여줄 뿐입니다.” 이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를 펼쳐든 독자들은 누군가가 최소 5만달러가 넘는 지면을 사서 대통령에게 이런 공개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편지 끝에 적힌 서명을 보고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은 숀 펜(46)이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현역배우들 중 수전 서랜든, 팀 로빈스와 함께 가장 정치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는 숀 펜의 반 ..

쥘리에트 비노쉬-알수록 미스터리한 여자 

스크린 속 배우들을 동경하기는 해도, 나 자신과 비교하거나 닮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한들 제가우마 서먼의 여신같은 몸매라든가, 셜리즈 테론같은 고혹적인 미모를 가질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 닮고 싶은 여배우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쥘리에트 비노슈(42.사진)을 택하겠습니다. 상큼함과 현명함을 동시에 갖춘 여자, 아름답지만 가볍지 않고, 지성적이지만 가슴이 굳어있지 않은 여자, 알면 알수록 미스터리한 여자가 바로 비노쉬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기작인 ‘나쁜 피(86)’와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88)’부터 ‘데미지(91)’와 ‘블루(93)’을 거쳐 ‘히든(2005)’ 에 이르기까지 비노슈의 배우로서 성장과정과 함께 해온 셈인데, 지금도 ..

오다기리 조-나를 꽃미남이라 부르지말라

먼저 고백컨대 , 저는 오다기리 조(30.사진)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가 출연한 ‘가면 라이더 쿠우가’나 ‘사토라레’같은 TV드라마들은 한번도 본 적이 없고 , 이제까지 본 그의 영화도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불과 몇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얼굴만 예쁜 청춘 아이돌스타는 누가됐든 아예 관심이 없으며, 일본 대중문화에 썩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이십대 시절을 마감한 이 젊은 배우 오다기리 조는 제게 좀 유별나게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고나 할까요.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박치기(2004)’에서 영화 줄거리와 아무 상관없이 가끔가다 툭툭 튀어나오는 히피 청년 청년 사카자키로 그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잘 생긴 배우가 제대로 망가질 줄도 아는구나”..

홀리 헌터 -작은 고추가 맵다

로드리고 가르샤 감독의 ’나인 라이브스‘는 미국 최고의 연기파 여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마치 종합선물세트같은 영화입니다. 그중 가장 반가운 얼굴은 홀리 헌터(48.사진)였습니다. 지난 2000년 코엔 형제감독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가 주연으로 나온 작품들을 국내에서 만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90년대 그토록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화제작들을 쏟아냈던 홀리 헌터도 아마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 ’생사의 고비‘라는 40대 관문을 힘들게 통과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헌터에게는 ’남부 불덩이 (파이어볼)‘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닙니다. 남부 조지아주의 시골농장에서 태어나 성장한 배경때문이기도 하지만 , 157cm 밖에 안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남부의 햇볕처럼..

콜린 패럴 -천하의 악동도 변한다

마이클 만감독의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면서“이제 콜린 패럴(29.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때”가 됐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동안 콜린 패럴하면 오만방자하고 저속하며, 비열하고 경박하다는 느낌이 대부분이었지요. 좀더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어 보인다”라고 할까요. 품격이나 고상함같은 것과는 애시당초 인연이 없는 배우란 것쯤은 진즉 알아봤습니다. 그러나 마약주사라도 한방 맞은 듯 건들거리는몸가짐에, 입밖으로 내뱉는 말의 절반쯤은 F로 시작되는 욕설로 뒤범벅이었던 그의 모습은 부정적인 느낌을 더욱 부채질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말에는 심지어 섹스 비디오스캔들까지 터졌지요. 80년대 전설적인 TV드라마 시리즈를 영화화한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도 패럴의 이미지는 기존의 것과 ..

공리 -카리스마와 상실의 두얼굴

“국수 이래 중국으로부터 온 최고의 수입품!”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에서 출연한 중국의 국민배우 공리(41)를 최근 이렇게 격찬했다.뉘늦게 공리를 발견한 미국 영화계가 그의 탁월한 연기력에 매료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말 ‘연기를 살아있는 예술로 승화시킨 배우 6명’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유일한 동양배우로 공리를 꼽기도 했다. 타임지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에서 공리가 보여준 하츠모모 연기를 “베티 데이비스 이후 최고의 악녀”로 극찬했다. 지난 96년 싱가폴 담배재벌과 결혼한 이후 전성기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던 공리가 최근들어 할리우드 화제작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마흔에 접어들면서 그의 연기는 때보다도 오히려 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선이 살아나는 연기를 펼..

케이트 블란쳇-욕심꾸러기 카멜레온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중 한 에피소드에는 두 명의 케이트 블란쳇(37·사진)이 등장합니다. 한 명은 세계적인 영화배우인 금발머리의 케이트 자신이고, 또 다른 한 명은 록가수 애인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거칠게 살아온 검은 머리의 셸리입니다. 사촌 자매간인 두 사람은 영화배우로 성공한 케이트가 신작 홍보차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호텔 커피숍에서 오랫만에 만나게 됩니다. 처음엔 서로 다정한’척‘하던 두사람이 이내 서로를 지겨워하면서 배배꼬인 속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 이 에피소드의 묘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천사같은 케이트는 홍보용으로 받은 공짜화장품들을 사촌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선물인 양 생색을 내고, 성공한 사촌을 애써 깔보는 듯했던 셸리는 상대방이 커피숍을 나가자마자 혼자..

제임스 스페이더 -보기보다 독특한 그대

삶에 찌들었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게 예뻐보이고 싶은 중년의 여자와 말끔한 여피풍의 젊은 남자가 공원을 산책합니다. 말없이 걷던 남자가 갑자기 여자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여자의 풀어진 운동화 끈을 고쳐 매주기 위해섭니다. 막노동으로 거칠어진 여자의 손이 낡은 운동화위에 숙여진 남자의 금발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불후의 명작도, 논쟁적 걸작도 아닌데 유난히 가슴 깊이 새겨진 영화나 영화 속 한장면이 있습니다. 평론가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상관없는 나만의 명화인 셈이죠. 제게 그런 영화는 루이스 만도키 감독의 `하얀 궁전(1990)'입니다. 동네식당에서 여급으로 일하는 무식한 중년 여성(수전 서랜든)과 20대말의 성공한 광고회사 간부(제임스 스페이더)는 성적으로 강하게 끌린다는 점 이외에 공통점이 하나도 ..

이완 맥그리거, 천개의 얼굴을 가진 아웃사이더

이완 맥그리거(35)를 보고 있으면, 이 남자가 가진 얼굴은 도대체 몇개일까란 감탄이 절로 듭니다. ‘트레인스포팅’에서 더러운 변기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각으로 관객들을 구역질나게 만들었던 비쩍마른 마약 중독자였다면, ‘엠마’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은근한 눈길로 바라보는 18세기 영국 귀족청년이었고,‘벨벳 골드마인’에서 글램록스타였던 그는 ‘물랑루즈’에선 환락가 무희에게 홀딱 빠진 순진하기 짝이없는 작가 지망생으로 180도 변신을 거듭했지요. 그런가하면 ‘스타워즈’에서 현명한 제다이의 현명한 스승 오비완이었던 맥그리거는 ‘영아담’에서는 섹스에 중독된 청년이었고, ‘다운 위드 러브’에서는 기름독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뺀질뺀질하기 짝이없고 오만한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지난 94년 ‘쉘로그레이브’로 데뷔한 이래 ..

헬렌 미렌 - 세월도 비켜간 도발적 눈빛 연기

오는 30일부터 열리는 제6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 출품작들이 최근 발표됐습니다. 한국영화가 한 편도 선정되지 못해 아쉽기는해도, 출품작들 중 관심을 확 끌어당기는 영화 한 편이 있더군요. 바로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여왕’(The Queen)입니다.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갑작스런 죽음을 둘러싼 영국 왕실 안팎의 갈등과 움직임을 다룬 소재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역으로 헬렌 미렌(사진)이 출연한다는 사실에 부쩍 호기심이 커집니다. 1946년생이니깐 올해나이로 꼭 60세. 한 때 영국영화계에서 가장 옷 잘 벗는 대담한 배우로 유명했던 그도 이제 영락없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하지만 미렌은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섹시함과 예리한 지성미를 뿜어내는 소수의 여배우들 중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