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 이야기 28

‘카포티’ 그리고 ‘인 콜드 블러드’

1984년 8월 28일.뉴욕타임스 부고란에 한 남자의 사망을 알리는 장문의 부음 기사가 실렸다. 부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트루만 카포티. 명징하게 빛나는 탁월한 문장으로 전후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던 그가 59세 나이로 어제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다. 카포티는 소설가이자 단편작가이며, 로 논픽션 소설 장르를 개척한 문단의 셀레브리티(유명인사)였다. 십대 시절 첫 단편소설 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총 13권의 작품집을 남겼으나, 진정으로 위대한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존 말콤 브리닌에 따르면, 카포티는 명성과 부(富), 그리고 쾌락을 좇는 데 자신의 시간과 재능, 건강을 탕진했다.” 국내 영화팬들에게 트루만 카포티란 이름은 주로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의..

이마무라 쇼헤이의 죽음을 추모하며

지난 2001년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해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다. (1983) (1997)로 두 차례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거장 감독과의 만남에 기자회견장은 시작 전부터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마무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인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에 신작 를 내놓고 전체 제작비 중 약 4억 엔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참이었다. 1926년생이니 당시 그의 나이 75세. 나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거동부터 얼굴색, 언어구사 능력 등에 이르기까지 이마무라의 건강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1시간 남짓한 길지않은 기자회견 내내 그는 힘에 부친듯 기자들이 퍼붓는 질문에 짧게 대답했고, 그나마도 종종 질문의 방향과 어긋나곤 했다. 영화제작과 관련..

종로코아극장의 폐관을 아쉬워하며...

80,90년대 영화광세대에게 종로 2가의 코아극장은 특별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일겁니다. 왕가위의 '중경삼림'동사서독' 등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코아극장이었고, 비교적 최근에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류승완이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쁨을 안겨주었던 곳도 코아극장이었습니다. 영화뿐이겠습니까. 코아극장 앞은 종로서적과 함께 우리들의 단골 약속장소였고, 돈 좀 있는 날에는 반줄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즐기는 호기를 부렸는가하면, 호주머니가 가벼운 날은 오뎅과 떡볶이 한 접시를 친구들과 뚝딱 먹어치우며 수다를 떨었던 곳도 코아극장 주변에서였죠. 특히나 코아극장은 저같은 '프랑스 문화원'세대에겐 문화원 지하극장의 매케한 곰팡내를 추억할 수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크린이 작아도, 좌석이 조..

콜래트럴- 마이클 만을 사랑하는 이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게도 지성이 있다면, 마이클 만의 영화엔 지성적 테스토스테론을 끓는다. 그의 영화는 마초적이다. 그러나 마이클 만의 마초에게는 근육이 없다. 대신 그들에게는 일말의 감상이 끼어들 틈이없는 냉철한 현실주의와 일체의 환상을 거부하는 철저한 허무주의가 있을 뿐이다. 현존하는 미국 감독들 중 마이클 만처럼 남성적이면서도 동시에 허무주의적 영화색깔을 가진 이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또한 그만큼 미국 갱스터 누아르 장르를 풍요하게 만들고 새롭게 진화시켜온 감독도 없다. 인기감독의 명성을 안겨준 TV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부터 [맨헌터]와 [라스트 모히칸]을 거쳐 [히트]와 [인사이더][알리]를 거쳐 최신작 [콜래트럴]에 이르기까지 마이클 만은 거칠고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진 한남자의 처절한 ..

2004, 재미난 칸영화제 소식들

칸 영화제가 중반을 향해 순항 중입니다. [올드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두편이 모두 선을 보였고 마켓에서 한국영화의 판매도 비교적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외신 등 여기저기서 주워들은(정확히는 주워 읽은^^) 소식들을 전합니다. 국내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은 생생하고 재미난 소식들을 기대하시랏.^^ ==================================== 1.칸의 한국영화들 [올드보이]와 [여자는 남자다]는 현지에서 엇갈리는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선보인 [올드보이] 경우 강한 폭력성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기자회견에서 박감독이 ″ 내 영화땜에 [킬빌]이 흥행실패했다″″리메이크를 나보다 더 잘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 재치있게 답변해 화제가 되기도했다고. 스..

[오디션]과 [회로]- 일본엔 왜 공포만화, 영화가 넘칠까

지난주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일본영화제에서 미이케 다케시의 [오디션]과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를 봤습니다. [오디션]은 일본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수년전부터 악명이 자자했던 영화죠. [링][소용돌이][주온] 등은 [오디션]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아동용이지요. 저 역시 수년전 이 영화를 '야메' 비디오로 봤는데, 화질이 너무 나빠서 고생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관에서 제대로 보니까, 처음 봤을때의 충격과 또 다른 맛이 있더군요. 가녀린 분위기의 여자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온몸에 기다란 바늘을 꽂으며 생글생글 웃으면서 '끼리 끼리 끼리( '깊이 깊이'란 뜻이라죠?)'라고 혼자서 주문처럼 외던 대사도 소름끼치도록 실감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고통으로 반쯤 실신한 남자의 상상과..

바람의전설, 초콜렛, 봄날은 간다... 영화 속 바람, 바람, 바람

이성재 주연의 [바람의 전설]을 보면서, 새삼 영화 속에서 '바람'이 얼마나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한줄기 공기의 흐름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실어보내왔던지요... 자, 영화 속에 나타난 '바람'의 다양한 색깔과 느낌을 한번 살펴볼까요. 영화에서 '바람'은 [트위스터]처럼 말그대로 자연현상으로서의 '바람'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또 [바람난 가족]에서처럼 정분난 남녀의 '바람'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죠. 여기까지는 [바람]에 관한 전형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죠. 예를 들어 [바람의 전설]에서 바람은 진짜 바람과 함께 '춤바람''바람끼'란 의미까지 복합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 박풍식과 여형사 연화가 첫 댄스 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빅 피쉬, 블러디 선데이... 이런 영화 어때요?

요즘 영화가 무쟈게 많이 개봉하고 있더군요. 심지어는 같은 주말에 10편이 새로 개봉하는 때도 있던걸요. 때문에, 늘 그렇듯 '나중에 봐야지'하고 꼽아뒀다가 나중에 찾아보면 벌써 사라져 버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특히 요즘에 개봉하는 한국영화가 [그녀를 믿지 마세요][목포는 항구다][어깨동무] 등 전혀 취향에 맞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 그리고 뭔가 독특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몇편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본 것도 있고, 아직 못본 것도 있기땜에 그냥 참고로 하시면 좋을 것같아요. 우선 , 1순위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원제가 [LOST IN TRANSLATION]인데, 이 모양으로 우리말 제목이 붙어버렸습니다. 소피아 코폴라는 그 유명한 코폴라 감독의 외동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