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인터뷰/ 션, 정혜영

bluefox61 2009. 6. 19. 20:29

지난 7일 오후 3시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대 내 학생극장. 학생 300여명의 눈과 귀는 한 남자에게 쏠려있었다. 연단에 선 사람은 힙합듀오 지누션의 션(36·한국명 노승현). 그의 강연은 엉뚱하게도 아내인 탤런트 정혜영과 션 자신의 2004년 결혼식 비디오 상영으로 시작됐다.


“우리 두 사람뿐만 아니라 하객 모두 참 행복해보이죠? 큰 행복을 함께 느껴보고 나니깐 아내에게 뭔가를 제안하기가 참 편하더라구요. 손에 움켜쥐기보다는 좋은 일을 하며 살자고 했지요. 매일 1만원씩 모아서 매년 결혼기념일에 기부하자고 제안했는데, 큰 부담은 없는 액수이기 때문인지 아내가 선뜻 그러자고 하더라구요. 1년 동안 매일 1만원씩 모으니까 1500명에게 이틀 동안 식사를 제공하고도 남는 돈이 됐습니다. 여유있을 때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매일 밥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은 것부터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션이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에서 나눔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호웅기자


19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 힙합전사 션은 아내 정혜영과 함께 요즘 ‘기부천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날도 단국대에 이어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 ‘나눔강연’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서강대를 향해 내달리는 밴승용차 안에서 션과 나란히 앉았다.


션은 힙합가수가 공연이나 방송일정이 아닌 ‘나눔전령사’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많이 쑥스러워했다. 지난해 가을 아내와 함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내집 마련도 미룬 채 나눔을 실천하는 생활을 공개한 이후 쇄도하는 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장훈 형이 자기는 평생 딴따라로 남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같은 마음인데, 가수로 봐주기보다는 요즘엔 무조건 기부천사 하나의 이미지로 포장하려 드는 게 부담스러워요.”


그는 자신과 아내의 기부에 사회적 관심과 칭찬이 쏟아지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듯 보였다. 그야말로 “매일 끼니를 먹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며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는 일”이란 것. 연예인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셋집에 살면서 기부 및 사회봉사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마치 물질과 욕심으로부터 초탈한 사람쯤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더 ‘사절’했다.


“저희 부부도 두 아이(하음, 하랑)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 많이 사줘요. 우리도 부족한데 남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란 이야기죠. 세상을 위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대한 계획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결혼을 계기로 행복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아이들이 생겨나면서 더 많이 넘쳐흐르게 된 기쁨을 나누다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저희 경우는 그렇게 철저하게 가정의 틀 안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방식이에요.”


평범함이라…자신은 그저 평범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 남자,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1년을 하루 같이”란 말은 딱 그를 두고 생긴 말인 듯했다.


션과 정혜영 부부는 방 한쪽에 봉투를 놔누고 1년 동안 매일 1만원씩 모은다. 2004년 10월8일 결혼한 다음날부터 시작해 2009년 5월에 이르기까지 1만원씩 모으기는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단다. 두 사람은 지난 4번의 결혼기념일 때마다 모은 돈을 들고 결식자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인 ‘밥퍼’를 찾아가 기부하고 하루종일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그의 집에 있는 돈 봉투는 현재 3개다. 2개는 첫딸 하음과 아들 하랑의 것. 이제 곧 봉투는 4개로 늘어난다. 다음달쯤에 하율이 태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션 부부는 두 아이의 첫돌 때 각각 2000만원씩 모아서 서울대 어린이 병원에 기부, 심장병 및 청각장애 어린이들에게 수술을 해줬다. 첫돌 다음날부터 두 아이들을 위해 만원씩 모아온 부부는 아이생일 때마다 수술이 필요한 저소득층 난치병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다. “내 아이가 70세까지 산다면 최소 생일 때마다 70명을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션 부부는 현재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를 맡고 있고, 국제어린이구호단체인 컴패션을 통해 저개발국가 어린이 103명의 아이들에게 매달 3만원씩 보내고 있다. 그는 자신을 105명의 아버지로 불렀다. 이제 곧 아기가 태어나니 , 106명의 아버지가 된다. 게다가 매달 첫째 토요일은 홀트아동복지회, 둘째 토요일은 대한사회복지회, 셋째 토요일은 성혜원을 찾아 아내와 함께 아이들과 놀아주고 씻기고 먹이는 일을 한다. 넷째 토요일에는 연예계의 몇몇 동료들과 함께 따로 조용하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부부동반 CF로 번 1억원은 알려진대로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돕기 위해 기부했다.


“저 자신 또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이 있었어요. 친구들 집을 전전하며 지내기도 했지요. 그때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중에 나도 남을 도울 힘이 생기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션과 정혜영 부부는 최근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두사람이 펴낸 책 ‘오늘 더 사랑해’가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에 받은 인세 1억원이 토대가 됐다. 부부는 이 돈으로 매년 100여명의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장학재단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나갈지는 현재 연구 중이에요. 다만 제가 가수니까, 음악과 연결시켜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에 재능있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식으로 말이죠. ”


션은 동료 지누와 함께 오랜만에 음반 작업도 하고 있다. 새 음반은 이르면 올해 안에 발표될 예정이다. 5년 만이다. 그는 “데뷔한 지 12년째인데 많은 팬들이 아직도 지누션으로 나를 기억해주는 게 고맙다”고 말했다.


용인 단국대를 출발한 지 한시간 남짓 지나 어느덧 밴승용차는 서강대에 도착했다. 션이 강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수백명의 학생과 신부, 수녀들이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세상이 변하다보니 힙합가수가 나눔을 이야기하게 됐다”며 관객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파릇한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희망, 나눔의 기쁨을 전해주고 싶다는 그의 강연은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