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88

글로벌 트럼프 신드롬

부동산 개발업자 도널드 트럼프란 이름이 한국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88년 그의 자서전 ‘트럼프 - 아메리카의 꿈 ,재계의 새 우상’이 번역 출간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을 자랑하면서 아름다운 금발의 부인 이바나를 늘 대동하고 다니는 트럼프는 보통사람들이 꿈도 꾸기 어려운 성공의 상징,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얼마 못가 자신보다 한참어린 배우 지망생 말라 메이플스와의 떠들썩한 스캔들과 이혼소송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그는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서 고분분투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 ‘너 해고야(You’re fired)’를 외치는 ‘갑 중의 갑’ 역할로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6월 16일 트럼프가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만 해도..

그리스에서 본 한국

젊은 시절에는그리스의 국민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비슷했을 것만 같은 외모를 가진 70대의 마리아 할머니는 머나먼 한국에서 찾아온 낯선 여기자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격한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그의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그리스 국민투표를 앞두고 찾은 현지에서 만난 수 많은 아테네 시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바로 마리아 할머니이다. 그를 만난 곳은 아테네에서 가장 유명한 육류·생선 전통시장인 플라카 시장의 한 생선가게였다. 커다란 칼로 생선을 다듬고 있던 30대 청년 상인을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목소리를 높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건 다 유대인들 때문"이..

그리스 비극

지난 5년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그리스 경제위기를 지켜보면서, 저주스런 운명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길고 긴 고대 그리스 비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주인공은 물론 그리스 국민들이다. 나라가 파산 지경에 놓이면서, 그들은 희망없고 고단하기 짝이 없는 삶을 하루하루 이어나가고 있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를 겪어내고 있는 21세기 그리스 국민들은 죽을 힘을 다해 언덕 위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돌덩이를 또다시 밀어올려야 하는 신화 속 시지프스와 닮았다. 그리스 경제위기 비극의 시작은, 유럽에서 유로존 출범의 기대감이 드높았던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그리스는 유럽의 문제국가였다. 유로존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미얀마 개혁의 그늘

며칠전 이양희 (아동·청소년학) 성균관대 교수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그는 한국인 최초의 유엔 인권이사회(UNHCR) 미얀마 특별보고관이다. 메시지는 " 미얀마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습니다"였다. 미얀마 로힝야 해상난민 사태에 대한 최근 기사를 눈여겨 봤던 모양이었다.지난해 9월 미얀마를 방문해 현지의 인권상황을 직접 조사했던 이 보고관은 지난 1월 다시 미얀마를 찾아 조사활동을 벌이던 중 선동가로 유명한 한 불교승려로부터 ‘막말 테러’를 당했는가하면,미얀마 외교부로부터는 ‘내정간섭’이란 비난까지 받았다. 지난해 1차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 보고관을 만났을 때, 미얀마에 대해 칭찬을 아끼는 듯한 그의 태도가 솔직히 다소 의아스러웠다.오랜 군부독재체제로부터 벗어나 자발적으..

여론의 역설

지난 7일 영국 총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당한 노동당 못지않게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곳이 있다. 바로 여론조사기관들이다. 유거브,ICM,포풀러스, 오피니움 등 영국의 유명 여론조사 기관들이 투표 직전까지도 일제히 집권 보수당과 야당 노동당의 초접전을 예상하면서, 어떤 정당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헝의회(Hung Parliament)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총선 며칠 전부터는 노동당이 연정 구성에 성공해 5년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할 것이란 분석이 쏟아지기까지 했다. 2008년 미 대선결과를 정확하게 예상해 ‘족집게’란 별명을 얻은 네이트 실버조차 총선 열흘 전 내놓은 분석에서 보수당이 제1 정당의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과반의석(326석)에 한참 부족한 283석을 차지하는데 그칠 것이..

링컨없는 시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3년작 ‘링컨’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남부군의 항복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노예제 폐기를 명기한 수정헌법 13조를 하원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벌이는 또다른 전쟁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당시 타데우스 스티븐스(1792~1868)를 비롯한 공화당 급진파는 노예제의 즉각적인 폐기는 물론 흑백구분없는 보편선거권까지 밀어부치려 하고 있었고, 민주당의 보수 극단파는 수정헌법 13조가 발효되면 세상이 흑인판이 된다며 강경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국민들은 정치싸움은 나중에 하고,지금 당장 전쟁부터 끝내라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링컨의 생각은 분명했다.남북전쟁이 인류의 평등과 자유란 미국의 건국정신을 지키기 위한 고귀한 희생으로 역사에 기록되려면 수정헌법 13조의 명문화가 먼저 ..

하시마.. 한국의 뒷북 대일 외교

몇해전 소설가 한수산 씨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도쿄(東京)에서 열렸던 출판기념회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일본에서 그의 작품 ‘까마귀’가 ‘군함도’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였다.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다운 느낌을 지닌 그는 " 일본의 한 평론가가 내셔널리즘을 넘어선 작품이라고 칭찬하는데 계면쩍게 앉아만 있었다"며 쑥스러워했다. ‘까마귀’는 일제에 징용된 한국인 탄광 노동자들의 눈물과 절망, 원한이 서려있는 하시마를 무대로 한 소설이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채 하시마로 끌려와 해저 수백m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절망 속에 죽어간 한국 노동자들의 심정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갱 안에서의 노동이 가혹해질수록 거기 비례해서 자해행위가 늘어갔..

메르켈 리더십

독일 베를린 동쪽에는‘박물관의 섬’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베를린 중심을 흐르는 슈프레 강 위의 섬으로,우리의 여의도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 ‘박물관의 섬’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페르가몬 박물관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이 5개나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집중적인 폭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장엄한 옛 건물들 사이를 걷다보면, 동독 시절의 정취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무미건조한 아파트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 한 아파트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와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 한 명이 살고 있다.바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독일 총리의 집으로는 상상조차 못하는 이유는 경찰관 두 어명만 ..

IS에 빠진 아이들..

지난 1월 터키 남부 도시 킬리스에서 자취를 감춘 김 군이 결국 수니 극단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해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한다. 김 군은 소원을 성취했는지 모르겠지만,인간이기를 포기한 만행으로 국제사회를 경악시키고 있는 IS의 대원이 된 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서는 세 부모가 초죽음이 돼있다. 지난 17일 부모 몰래 가출한 십대 소녀 3명이 터키를 거쳐 이미 시리아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런던의 같은 학교 학생인 소녀 3명은 김 군처럼 터키 킬리스 루트를 이용해 국경넘어 시리아로 들어갔다.인터넷상에서 세 명과 접촉해 IS행을 꼬드긴 인물로 알려진 영국 국적의 20세 여성 아크사 마흐무드의 부모도 절망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이다.1..

극단의 시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정의한 것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다.그에 의하면 20세기는 1차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부터 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까지 ‘파국의 시대’를 맞았고, 그 후 약 25~30년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황금의 시대’를 거쳐, 70년대 중반부터 1991년까지 해체·불확실성·위기가 만연한 ‘산사태의 시대’를 겪었다. 홉스봄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21세기의 지난 14년을 정리하자면, 두 대의 비행기가 미국 뉴욕 무역센터를 들이받은 2001년 9월 11일부터 파키스탄의 소도시 아보타바드의 한 주택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2011년 5월 2일까지는 ‘파국의 시대’였고, 북아프리카부터 유럽, 미국 월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