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독일과 프랑스 대통령, 나치 학살 현장에서 마주 안다

bluefox61 2013. 9. 5. 12:00

 백발이 성성한 독일 대통령이 나치의 엄청난 만행 현장에 서서 할말을 잃었다. 방명록에 서명할 때는 울음을 참는 듯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방명록에 그는 이렇게 적어내려갔다. " 공포와 충격, 참담함을 느끼며 독일의 명령으로 자행된 (만행)현장에 선다. 나는 이 초청을 겸허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 독일은 (과거와)다르며 평화와 통일을 이루었음을 증언할 수있다. 그리고, (독일은) 그렇게 남아있어야 한다. 요아힘 가우크."

 

 

 

 


 서명을 마치고 허리를 편 가우크(73) 대통령은 프랑수아 올랑드(59) 프랑스 대통령에게 머뭇머뭇 다가가더니 두팔을 벌여 그를 안았다. 전범국가의 대통령이자,한 인간으로서 깊은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진 가우크를 위로하려는 듯 올랑드도 마주 포옹했다. 두 정상은 그렇게 아무말도 하지않은채 오래도록 팔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69년전 학살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6명 중 한명인 80대 노인 로베르 에브라를 부둥켜 안았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4일 가우크 대통령의 프랑스 오라두르 쉬르 글란 방문 현장을 보도하면서, 이날 방문이 전후 양국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높게 평가했다.나치군이 프랑스에서 저지른 최악의 집단 학살현장인 이곳을 독일 대통령이 방문하기는 가우크가 처음이다. AFP통신 등 프랑스 언론들도 가우크와 올랑드의 포옹을 1962년 샤를 드골과 콘라드 아데나워의 만남, 1984년 프랑수아 미테랑과 헬무트 콜의 베르덩 전몰자 묘역 참배 이후 가장 의미있는 순간으로 평가했다.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6월 10일 나치의 무장친위대(바펜SS) 는 프랑스 중서부의 작은 마을 오라두르 쉬르 글란에서 교회와 헛간에 여자와 어린이,남자들을 가눈채 독가스를 살포하고 기관총을 쏘며 불을 지르는 등 잔혹하게 학살했다. 레지스탕스의 근거지도 아니었던 이 마을에서 나치가 저지른 학살은 '광기'로  밖에는 설명할 수없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하루 사이에 주민 642명이 숨졌으며, 이 중에는 15세 미만 아동이 205명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끝난 후 드골 당시 대통령은 나치의 만행을 알리고자 마을 전체를 보존하는 칙령을 발표했고, 결국 독일 대통령이 제발로 찾아와 사과하기까지 지난 69년동안 고스란히 그날의 현장을 지켜냈다.

 가우크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독일 프랑스 우호조약(엘리제 조약)체결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됐으며, 오라두르 쉬르 글란 인근 도시인 튈의 시장을 지냈던 올랑드 대통령의 제안을 가우크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동독 목사출신의 인권운동가인 가우크 대통령은 이날 에브라의 안내로 마을을 둘러보며  "이 범죄로 피해를 받은 이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살인자들이 심판받지 않은 데 대한 비통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은 약 2년전부터 오라두르 쉬르 글란 학살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여오고 있다. 올해 초에는 정부 조사단을 현장에 직접 파견하기도 했다. 69년전 학살에 가담했던 나치군 중 일부는 아직도 생존해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가우크 대통령은 앞서 체코와 이탈리아의 나치 학살 현장을 방문하며 나치 과거사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