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이르면 9월 중 미국산 원유의 대외수출을 전면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이란핵협상 타결로 이란산 원유가 곧 시장에 복귀할 예정인데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거부 등으로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산 원유까지 가세할 경우 유가는 가파르게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9월물 선물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8% 떨어진 43.87달러를 기록했다. 북해산 브랜트유 9월물 선물가격 역시 배럴당 1.80% 하락한 48.61달러에 거래됐다.우리나라 원유 도입 가격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7월 1일 배럴당 60.93달러에서 지난 6일 현재 배럴당 49.71달러를 기록해 약 한달사이에 18.4%나 급락했다. 두바이유가 50달러 선 아래로 떨어지기는 지난 2일 2일 이후 약 6개월만에 처음이다.
WSJ에 따르면, 하원은 9월초쯤 미국산 원유의 해외수출금지 해제법안을 상정해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앞서 지난 7월 30일 상원 외교위원회는 원유 수출에 대한 금지를 해제하고 북극과 멕시코만, 대서양 지역에서 석유 및 가스를 탐사하는 에너지 법안을 표결에 부쳐 12대 10으로 통과시킨 후 상원 본회의에 상정했다. 상원 표결은 내년 초쯤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이 그동안 원유수출을 금지해온 법적 근거는 지난 1975년 발효된 에너지 정책 및 보존법(EPCA)이다. 지난 1973년 중동발 오일쇼크가 발발하자, 원유에 대한 미국의 대외의존성을 낮추기 위해선 자국산 원유의 해외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셰일가스 붐 덕분에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넘어서는 세계최대 에너지 생산국이 되면서,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은 원유수출금지법을 개정 또는 폐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지난 2013년부터 미 정계안팎에서 쏟아져왔다.
지난 2013년 12월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 장관은 "에너지가 부족한 시대에 만들어진 정책들의 검토가 필요하다"며 원유 수출금지 철회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역시 지난해 9월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수출 정책’ 세미나에서 "미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원유 수출 금지를 한시라도 빨리 해제해야 한다"며 "미국이 원유수출 금지 조치를 풀면 경제성장과 일자리, 지정학적 측면 모두에서 플러스 효과가 기대되는만큼 의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서라도 즉각 원유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반면 환경단체들은 원유수출이 재개되면 과도한 개발로 환경이 파괴된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수출 금지 덕분에 프리미엄을 누려왔던 정유업계 역시 반대입장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동안 원유와 천연가스의 해외수출을 꾸준히 늘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7월 최소한만 정제한 초경질원유(콘덴세이트)의 일부 수출을 허용한데 이어 같은 해 12월 수출량 확대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해 3월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일일 원유생산량은 951만 배럴로, 2007년 당시 생산량 대비 약 80% 증가했다.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은 아직도 해외로부터 많은 양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지만 정제유 등 석유제품 수입량은 전체 소비량의 약 27%로 1985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캐나다에 매일 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 등 전체 일일생산량의 약 5.2%를 해외에 판매하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핵합의로 이란산 석유의 시장 컴백이 사실상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데다가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산 원유까지 시장에 쏟아질 경우, 국제유가 급락은 물론 지정학적 판도 역시 요동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하락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면서 연말까지 총 270억 달러(약31조 5414억 원)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수도인 리야드시가 2007년 이후 8년만에 처음으로 40억달러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하기도 했다.재정지출을 유지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650억달러 규모의 외화보유액을 가져다 쓰기까지 한 상태이다. 미국의 원유수출로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더 하락할 경우, 2000년대 초중반 치솟는 유가 덕분에 오일머니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한편 천연가스를 무기삼아 동유럽 각국을 쥐락펴락했던 러시아의 영향력 역시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국제유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감산 불가’를 외쳤던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도박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있다.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가 지난 7월 지방은행을 통해 150억 리얄(약 4조6307억 원) 규모의 국채를 매각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10일 또다시 국채 매각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위기가 심각하다는 의미이다. 사우디의 국채발행은 지난 2007년 이후 약 8년만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0일 사우디는 5년 만기, 7년 만기,10년 만기 국채 매각으로 150억~200억 리얄을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특히 7월 발행한 국채는 대부분 준정부 펀드에 매각됐지만, 10일 발생한 국채에는 상업은행도 응찰대상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은행 관계자들은 약 2주전 사우디 중앙은행 격인 통화청(SAMA)로부터 국채발행에 관한 브리핑을 받았다.사우디 정부는 매달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일 사우디가 연말까지 약 270억 달러(약 31조 원)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우디 경제에 이처럼 빨간불이 켜진 것은 재정수입의 80%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면서도, 유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시장 점유율 유지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생산량을 공격적으로 늘여 공급과잉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란과 국제사회의 핵합의로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컴백하고, 미국이 40여년동안 유지해온 원유수출금지조치를 해제하면 유가는 더 폭락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 정부의 씀씀이는 더 커져 재정 위기가 악화됐다는 점이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사태가 사우디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민경제 부양용으로 약 1300억 달러를 뿌렸던 왕실은 지난 2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 즉위를 명분으로 군인과 공무원의 연봉을 인상했다. 게다가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공습에 참여하면서 국방 예산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서 올해 17%로 증가한 것을 알려졌다. 국제통화기금(IMF), 도이체방크 등에 따르면 사우디가 균형재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3.5~97.5달러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유가는 반토막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의 기준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10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배럴당 44.96달러(9월 인도분)에 거래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우디의 올해 재정적자는 1300억달러로 추정된다. 정부는 적자의 최대 40%를 국채 발행으로 메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로이터는 2015년 상반기에만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이 약 598억 달러 감소했다고 전했다. 아직도 6645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른 시일내 자금압박을 겪지는 않겠지만 ,외환 보유고가 급속히 줄어들면 심각한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가하락은 사우디 뿐만 아니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산유국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UAE의 올해 경제성장율을 지난 1월 전년대비 1%포인트 낮은 3.5%로 하향 조정한데 이어, 4월에 또다시 0.35% 포인트 낮은 3.15%로 내리며 6개월 사이 두 번이나 하향 조정한 바있다.베네수엘라는 지난 1년간 부도위험이 392%나 증가하는 등 파산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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