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

집 밖으로 나온 조선 최고 미인.. 동대문 DDP에서 만나는 <미인도>

bluefox61 2014. 7. 3. 05:48

조선 최고의 미인이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보화각을 나왔다고 합니다.

최첨단 동대문 DDP에서 개막되는 <보화각 전>때문이지요.

오래전 간송미술관에서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만났던 그녀가 생각나네요.

오랫만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2008년에 올렸던 글을 다시한번 올려봅니다. 너무나 앳된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아릿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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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월 4일>

 

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일 년중 이맘때가 가장 제맛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간송미술관은 일 년 중 5월과 10월 딱 2주일씩만 일반인들의 발길을 받아들인다. 5월은 너무 뜨겁고 후텁지근한 반면 청명한 10월의 날씨엔 간송미술관의 허름하기 짝이 없는 정원(?)마저 정겹고 서화의 묵향은 더 진하게 느껴진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면 여름더위가 벌써 시작되는 5월에 만나는 간송미술관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지난 5월에도 그랬다. 막 비가 쏟아지려는 듯 축축한 날씨였는데 간송미술관의 좁은 전시실 내부는 수많은 관객들의 체온 때문에 무더웠고, 더운 공기를 식히기 위해 모든 창문들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전시실의 창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항온항습장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간송미술관의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문화재 보존과 연구열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만지면 부서질 듯한 고서화들의 보존이 솔직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옷고름이 반쯤 풀려있는 저고리.. 이 여자는 옷고름을 막 풀려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묶으려는 찰라일까.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방에 돌아와 애잔한 눈길로 혜원 앞에서 옷고름을 풀고 노리개를 내리려는 모습

               을  그린 것이란 해석이 대부분인 듯...치마 밑에 수줍게 드러난 흰 버선 발도 포인트!!>


 

이번 가을에 다시 찾은 간송미술관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봄 가을로 간송미술관을 드나든지 십수 년이 넘었지만 그런 인파를 만나긴 처음이었다. 

긴 줄 때문에 한 차례 입장을 포기한 이후 두 번째 찾아가서야 겨우 <보화각 설립 70주년 서화전>을 관람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전시를 보기 위해 9시를 갓 넘긴 시간에 줄지어 서있는 사람이 벌써 수백 명. 당초 기대했던 ‘고즈넉히 간송 즐기기’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중학생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이 혜원과 단원에 관해 서로 소근거리는 소리를 훔쳐 듣는 재미가 새로웠다.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들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간송미술관 가을전시회가 26일로 2주일간의 전시회를 마쳤다. 마지막 날에만 2만 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주변 교통이 마비되고 경찰기동대까지 출동했다고 한다. 10년 전 보화각(간송미술관 건물 이름) 건립 60주년 전시회 때 10만 명 정도가 입장했다던데, 올 가을 전시회도 그보다 못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고새면 나라 안팎 할 것 없이 우울한 뉴스만 쏟아져 나오는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은 왜 혜원과 단원의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성북동 구석에 박힌 이 조그만 사설미술관은 왜 봄 가을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좋은 TV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신드롬은 과연 우리 문화에 넓이와 깊이를 더하는 것일까, 아니면 ‘패드(Fad , 단기간의 유행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바람의 화원>처럼 조선시대 회화를 소재로 한 영화 <취화선>은 왜 ‘장승업 신드롬’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회는 이런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의문 한 가지. 왜 간송전시회와 드라마 < 바람의 화원>를 보며 흥행에 실패한 영화 <황진이>를 ‘불길하게’ 떠올리는 것일까.

  

이번 간송 전시회에 인파가 몰린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TV드라마 <바람의 화원> 덕분이다. 원작소설의 탄탄한 설정, 연기자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미술전공자라는 장태유 PD가 만들어내는 놀라운 영상미학이 어우러져 과연 ‘명품드라마’ 칭호가 부끄럽지 않다. 좋은 드라마는 트렌드, 신드럼을 만들어낸다. <대장금>이 우리 먹거리에 대한 관심, 난관을 돌파하고 성공하는 전문직 여성에 대한 긍정적 시선 등을 담아내 성공했던 것처럼 말이다.

  

<바람의 화원>이 단순한 인기 차원을 넘어서서 간송미술관 문전성시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조선시대 회화를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앗, 조선회화에 이런 맛과 멋이 있었단 말인가”를 자각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시대의 감수성과 딱 맞아떨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혜원과 단원이 종이 위에 그린 그림들을 움직이는 3차원 영상으로 정교하게 재연해내는가 하면, 두 사람의 파격적인 예술관과 풍자정신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정해진 틀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 문화란 양반네 즉 ‘가진 자’만의 것이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살아 숨쉬는 모든 이들의 것이란 그들의 사고방식과 실천정신은 지금 이 시대 시청자들에게 매우 현대적으로 다가온다. 

이 점 때문에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혜원과 단원의 그림이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우 현대적인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됐고, 마침 전시회를 마련한 간송미술관을 찾아 실물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한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드라마의 최종적 성공여부를 벌써부터 이야기하긴 이른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드라마의 진행을 보면 남녀애정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조선회화의 제맛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연출자의 고집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연출방향이 세상살이에 지치고 짜증난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을 확 잡아당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다소 성급할지는 모르겠으나, <바람의 화원>은 미국 드라마들이 영화못지 않은 스케일과 작품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이제 우리 TV에서도 가능해졌음을 보여준다.


신윤복을 소재로 한 영화 <미인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혜원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라든지 단원과의 미묘한 관계 등은 드라마와 비슷하다. 현재까지 홍보는 주로 여배우들의 노출에 집중돼있지만, 과연 영화가 두사람의 예술정신과 조선회화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내밀하게 그릴 지가 궁금하다.

  

같은 소재의 TV 드라마와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선보이기는 <황진이>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드라마 <황진이>는 그동안 여러 차례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우려먹고 또 우려먹었던 황진이를 다시 끌어내면서 여성예술가로서의 치열한 정신을 부각시켰다. 황진이를 중심으로 한 주변인물들 역시 단순한 기녀가 아니라 직업적 예인으로서 그려졌다. 물론 황진이의 사랑도 중요한 테마였지만, 예술가로서의 황진이에 대한 재해석은 매우 현대적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에 비해 영화 <황진이>는 ‘혁명가’를 사랑하는 한 여성에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황진이를 통해 변혁의 시대상을 담아내려 했던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매우 퇴행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황진이 자체에 대한 시각 때문이었다. 황진이는 사랑에 빠진 여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영화 <미인도>가 과도한 팩션에 빠져 <황진이>의 단점을 답습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