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시작된 전쟁으로 사흘만에 사망자가 2000명, 난민은 3만명이 발생했다.
남오세티야를 먼저 공격한 그루지야가 휴전을 제안하는등 꼬리를 내리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참에 친 서방적인 그루지야를 확실하게 제압하고
북 오세티아뿐만 아니라 남오세티아까지 장악하려는 강경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사태는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막는다며 군사공격을 하면서
비롯됐다. 지난 91년 그루지야는 남오세티야측과 내전까지 벌였으며,
당시 사태는 러시아 중재로 남오세티야를 자국내 자치공화국으로 인정하면서 일단락됐었다.
러시아, 그루지아, 오세티아는 지난 수백년간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1801년 러시아에 강제합병된 그루지야는 혁명와중에 자유를 잠시 찾았다가
1921년 볼세비키에 의해 다시 점령됐다. 그루지야 고리는 스탈린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련 또는 러시아 역사와 그루지야 역사는 뗄레야뗄수 없는
것. 소련붕괴전 외무장관이었던 셰바르드나제는 그루지야가 분리독립했을 당시
초대 대통령직을 맡기도 했었다.8년에 걸친 셰바르드나제 체제하에서 온갖 부패와 무능에
지친 국민들은 2003년 이른바 '장미혁명'으로 불리는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결국 2004년 1월 혁명주도자였던 미하일 샤카슈빌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루지야의 역사는 다시한번 대변화를 맞게 된다.
나토가입추진 등 친서방정책을 취하고 있는 샤카슈빌리 정부를 러시아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일.러시아 입장에선 가뜩이나 폴란드에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겠다는 판에 , 그루지야가 확실한 친서방으로 돌아서는 것을 그대로 둘수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오세티아는 러시아로서도 가만히 앉아서 그루지야에게 그대로
넘겨주기 힘든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땅이다.
오세티야는 러시아, 그루지야, 체첸 사이에 놓여있으며 북은 러시아, 남은 그루지야에
통합돼있다. 북오세티아는 지난 2004년 체첸분리독립주의자들에 의한 학교인질사건 당시
러시아군의 잔혹한 진압작전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었던 곳.
러시아는 북오세티아의 분리 움직임을 제압하는 한편 남오세티아까지 자국 영향력하에
두려는 야심을 오랫동안 갖고 있다.
그루지야 속사정을 들여다볼수있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지난 2004년 1회 서울환경영화제 때 소개됐던 미국계 감독 폴 데블린의 [파워트립(Power
Trip)]은 경제난과 부패구조에 찌든 그루지야 상황을 리얼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관심을 끌었다. 영화의 시점은 셰바르드나제 정권 말기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에
지친 국민들이 왜 혁명에 나서게 됐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영화가 발표된지 약 5년이 지난 지금 그루지야는 얼마나 발전을 이룩했을까..
이번 사태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해볼 수있는 것은
혁명이후 등장한 샤카슈빌리 정권 역시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인 듯하다.
아래 리뷰는 2004년 영화제때 쓴 것으로, 당시 영화제 데일리에 게재됐었다.
폴 데블린 감독의 [POWER TRIP]
한 국가의 국제공항이 전기료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기는 사태를 맞는다.
이 황당하고도 코미디같은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흑해연안에 자리잡은 구 소련연방국 그루지야에서는 지난 2001년 공항 단전 사태가 실제로 벌어졌다. 공항뿐 아니다. 수도 트빌리 시민의 90%가 전기료를 내지 않거나 못내는 바람에 전기공급회사로부터 단전 통보를 받고, 지하철은 물론 심지어 국가 기관들까지도 밤이면 정전 걱정이 일상화돼있다.
폴 데블린의 `파워 트립``은 흑해연안국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공산체제 붕괴 이후 벌어진 전력부족사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전력``을 둘러싸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계관, 부패와 정의, 분노와 희망, 고통과 웃음이 치열하게 충돌하는 그루지야의 현실은 차라리 한편의 블랙 코믹 드라마다.
지난 91년 소련에서 독립한 후 처절한 내전을 거쳤던 그루지야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정부는 국영 전기회사 텔레시를 미국의 다국적 전기공급회사 AES에 매각한다.
독점 전기사업으로 막대한 수입을 챙길수 있을 것이라던 AES의 기대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에 부딛히게 된다. 전기공급시설은 엉망진창이며, 국민들은 전기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란 뿌리깊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최후의 강경책으로 대대적인 단전조치를 취하게 되고 , 결국 그루지야에서 전기는 단어그대로 `파워``의 상징이 되고 만다.
감독은 한달 월급 반치의 전기료 청구서를 들고 회사에 찾아와 애원하는 시민들, 불법으로 전기를 끌다가 감전사한 시신. 열악한 조건에서도 합리적으로 일하려 애쓰는 AES 직원들, 부패시스템에 안주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 혼란 속에서 과연 누가 악인인가.
그러나 데블린은 다국적 기업 AES의 직원들이나 전기를 도둑질하는 시민들, 그 어느 한쪽에 책임지우기를 거부하며 객관적인 시각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암흑으로 변해버린 트빌리의 밤거리를 흔들리는 카메라로 잡아낸 장면으로 시작한 `파워 트립``은 ″나는 전기를 원해″라고 울부짖는 록밴드의 공연장면으로 끝난다. 풀지못한 숙제처럼 영화는 가슴 속에 묵직한 돌덩이 한개를 얻어놓는 것같다.
좋은 다큐멘터리란 해답이 아니라 수많은 질문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워트립``은 마이클 무어의`볼링 포 콜롬바인````화씨 9/11``, 모건 스펄록의 `수퍼 사이즈 미`` 등에 이어 미국 다큐멘터리계가 거둔 또한편의 의미있는 수확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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