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이 지난 2년간 비밀리에 준비해온 3시간 반짜리 새로운 작품이 드디어 전세계에 공개된다. 동업자였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중국 정부의 수단 다르푸르 정책을 비난하며 중도 사퇴하는 등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다.
8일 오후 8시(한국시간 오후 9시)부터 베이징 주경기장에서 펼쳐질 올림픽 개막식은 장이머우가 지금까지 발표했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스펙터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제작비 약 1000억원, 출연자 약 2만명에 온갖 최첨단 영상기술 등이 총동원되는만큼 지상최대의 이벤트로 기대되고 있다. 관객도 주경기장 약 11만명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최소 수십억명이 위성 TV생중계를 지켜볼 예정이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다른 어떤 때보다도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는 것은 <영웅><연인><황금화> 등 최근 작품들을 통해 탁월한 영상미학을 보여줬던 장이머우 감독이 총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5천년 황허(黃河) 문명의 집약체로 불리는 개막 공연에 중국의 찬란한 과거와 번성한 현재, 창창한 미래를 담아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이머우에게 우호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7일자 기사에서 한때 정부로부터 핍박받던 그가 180도 변신해 친정부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대해 중국 안팎의 문화계로부터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극단적인 비판자들로부터는 심지어 장이머우를 독일 나치 체제시절 베를린올림픽 공식기록영화를 연출했던 레니 리펜슈탈에 비유하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 현재의 중국 정부를 나치와 동일시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장이머우의 놀라운 변신에 대해 그만큼 불편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타 바버라 분교의 중국문화 전문가 마이클 베리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 장이머우와 중국 정부 간의 관계는 활동초기와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이들의 눈엔 장이머우가 정부의 애완 동물로 비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장이머우는 <붉은 수수밭><국두><홍등><인생>등의 작품에서 중국의 우울한 현실을 조명해 90년대 후반까지 정부의 탄압을 받는 예술가였다. 그의 영화들은 국내상영이 금지됐고, 그의 해외영화제 참석 역시 금지됐다.
당시 장이머우는 정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가짜 시나리오를 제출해 새 작품의 제작허가를 받아내기도 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95년작 <인생>이 바로 그런 작품이었다. 하지만 중국을 부정적으로 그려냈다는 이유로 정부는 그에게 5년간의 영화제작 금지 명령을 내렸다.
장이머우의 변신은 2002년작 <영웅>을 계기로 노골화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집으로 가는 길><책상서랍 속의 동화><행복한 날들> 등의 작품에서 그 단초가 엿보이기도 했지만 , 중국과 미국 할리우드의 합작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웅>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장이머우가 권력과 손을 맞잡았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이 작품의 월드 프리미어를 위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을 빌려줬다. 인민대회당은 한국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곳이며, 중국 권력의 심장부라고 할 수있다.
인민대회당 시사회보다 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영웅>에 담겨있는 장이머우의 시각이었다. 물론 영상미를 나무랄데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안의 <와호장룡>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 진시황에 대해 정치적 해석이 문제였다.
영화 속에서 무명(이연걸)은 우여곡절 끝에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근접하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그를 살려준다. 춘추전국시대 혼란기에 강력한 권력의 존재야말로 백성들의 삶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줄 수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공개되자 장이머우의 정치관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으며, 그가 중국 정부와 화해하고 손을 맞잡았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장이머우는 이후 <연인><황후화> 역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만들었고, 지금은 정치조직인 인민정치협상회의의 의원으로 발탁돼 활동하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장이머우는 중국 문화계의 권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올림픽이 끝나면 국가유공훈장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이미 그의 몸값이 5배나 뛰었다는 보도도 있다.
중국언론 화상신보는 최근 장 감독의 20년지기 친구이자 사업 동료인 베이징 신화면영업공사(北京新?面影?公司) 장워이핑 이사장의 말을 인용해 “장 감독이 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을 때 2년 동안 영화를 찍지 않을 경우 2억 위안의 손실을 입게 될 줄 알았다”면서 “하지만 인류 최대 축제인 올림픽이 장 감독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한때 핍박받는 가난한 예술가였던 장이머우. 그는 과연 메피스토와 거래를 한 것일까. 그는 예술가의 영혼인 비판정신을 팔고 돈과 명예, 권력을 얻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장이머우의 성공은 중국 문화정책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일까. 그 해답은 올림픽 이후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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