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들/책을 읽자

소개합니다- 마이클 무어의 에세이집 '세상에 부딪쳐라, 세상이 답해줄 때까지'

bluefox61 2013. 5. 27. 21:55

지난해 번역했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의 자서전적 에세이 '세상에 부딛쳐라. 세상이 답해줄때까지'가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원제 '히어 컴스 트러블(말썽꾼 납시오)' 의 느낌이 어정쩡한 자기개발서 제목으로 바뀌어 아쉽습니다. 솔직히 분량문제로 빠진 챕터도 있고, 각 챕터에서 조금씩 쳐내진 부분도 있습니다. 

어쨋든 마이클 무어는 태어날때부터 말썽꾼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한때 신부를 꿈꿨으며, 배꼽잡게 웃기는 동시에 눈물도 쏙 빼놓는다는 점은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입니다. 번역 후기를 옮겨놓습니다. 


이 남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뭐 이런 사람이 다있나” 싶었다. 뚱뚱한 몸집에 야구 모자를 쓴 그는 끈질기게 한 남자 뒤를 좇아다니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로저와 나(Roger and Me 1989년작)’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제너럴 모터스의 로저 스미스 회장을 찾아 헤매는 마이클 무어는 기존 다큐멘터리 감독의 진지한 이미지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다큐멘터리감독인가, 아니면 코미디언인가. ‘로저와 나’는 GM이란 대기업의 공장폐쇄 결정으로 황폐해져버린 지역경제와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루면서도 배꼽잡게 웃긴 영화였다. 한마디로 희안한 다큐멘터리였다. 심각한 주제의식의 다큐멘터리를 코믹하게도 연출할 수 있다니! ‘로저와 나’는 다큐멘터리의 고정관념을 깬 신선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1990년대 말쯤 국내 몇몇 영화제를 통해 ‘로저와 나’와 ‘빅 원(Big One 1997년작)’ 등이 소개된 것을 계기로 영화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특이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03년, ‘볼링 포 콜롬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년작)이 장편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상업영화관에서 개봉되면서, 드디어 마이클 무어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명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 즈음, 무어는 신문 외신면을 통해서도 자주 만날 수있었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침공을 밀어부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무어가 공개적으로 맹비난하면서 연일 화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2003년 3월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 무대에서 그는 ‘볼링 포 콜롬바인’으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면서, “허구의 선거를 통해 뽑은 허구의 대통령이 우리를 허구의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스터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배짱좋게 직격탄을 날려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볼링 포 콜롬바인’에서 그가 첫영화 ‘로저와 나’ 때 로저 스미스 회장을 좆아다녔던 것처럼 미국전국총기협회(NRA)의 회장이자 원로배우인 찰턴 헤스턴 집에 들이닥쳐 폭력문화와 총기의 연관성을 물고 늘어지는 장면은 특히나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찰턴 헤스턴이 누군가. ‘벤허’에서 온갖 시련을 싸워 이긴 ‘숭고한’ 주인공 벤허가 아니었가.




영화 후반부에 무어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헤스턴의 저택을 쳐들어가, 1999년 미국과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건에도 불구하고 NRA가 총기애호가대회를 개최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헤스턴이 무어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한사코 피하면서 내뱉었던 대답을 이랬다. “난 다만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 조상들이 물려준 권리를 즐기는 것 뿐이야!” 영화 속에서 무어는 헤스턴이 자리를 떠나버린 후 잠시 앉아있다가 총기사고로 숨진 6살짜리 소녀의 사진을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일어선다.


이 장면을 본 관객의 반응은 둘로 확연히 갈렸다. “위대한 배우 헤스턴이 백인 우월주의자란 사실에 실망했다”와 “아무리 그래도 건강이 나쁜 노인의 집에 무단침입하다시피해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진 행동은 지나치다”였다.


2년 뒤 무어가 들고 나온 새 영화 ‘화씨 9/11(Fahrenheit 9/11)'의 파문은 ’볼링 포 콜롬바인‘과는 차원이 다른 쓰나미급이었다. 이 작품에서 무어는 조지 W 부시와 공화당 정부가 어떻게 미국인을 속여서 이라크 전쟁터로 몰고 나갔으며, 그 뒤에 숨어 있는 부시 일가와 오사마 빈 라덴 일가의 은밀한 관계가 무엇이었고, 이 모든 것을 미디어가 얼마나 감추고 있는지를 폭로했다. 부시 대통령 부자가 2001년 9.11테러 발생 전부터 오사마 빈 라덴 가문과 경제적으로 깊숙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테러직후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던 빈라덴 친척을 서둘러 출국시키는데 부시 행정부가 개입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떠들썩한 화제를 모았다. 제작사 미라맥스의 모회사인 월트 디즈니사가 “회사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미라맥스에 북미배급금지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월트 디즈니의 압력에 대해 무어감독은 이렇게 당당히 맞받아쳤다. “이번 사태는 이 나라에서 비판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내 영화가 지나치게 파당적이라고들 하는데, (이라크)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나라에 살고있는 가난한 노동자 편에 서있다 점에서 기꺼이 파당적이란 비판을 받아들이겠다.” 그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화씨 9/11’은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다큐멘터리 영화 기록을 세웠다.


이후에도 무어는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한 ‘식코(Sicko 2007년작)’ , 2004년 미국 대선당시 이른바 ‘스윙스테이트(경합주)’ 대학들을 찾아다니며 젊은학생들에게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을 담은 ‘슽래커 업라이징(Slacker Uprising 2007년작 ,온라인 무료개봉)’ , ‘자본주의 :러브스토리(Capitalism: A Love Story 2009년작)’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마이클 무어는 저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백인특권층을 통렬하게 비판한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en 2001년작) ’ , 부시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망쳐놓은 미국을 되돌려놓으라고 요구한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Dude! Where Is My Country? 2003년작) ’ ‘마이크의 선거가이드(Mike's Election Guide 2008년작)’ 등은 국내에서도 번역출간돼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무어는 늘 파문과 논쟁을 몰고 다니는 남자이다. 이 책의 원제목 ‘히어 컴스 트러블(Here Comes Trouble)'처럼, 한마디로 ’트러블메이커‘인 셈이다. 


그의 작품들을 과연 다큐멘터리로 봐야하는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엄정한 객관성과 논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통 다큐멘터리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이 자신의 관점을 입증하기 위해 뻔뻔스러울 정도로 팩트를 선별, 나열했다는 지적도 많고,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2시간짜리 정치 선동물이란 비난도 적지 않다. 권력층에 대한 의도적 망신주기와 조롱퍼붓기에 대해서도 “속 시원하다”는 반응만큼이나 “도를 넘어선다”는 비판이 늘 이어진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이클 무어에게 중간지점은 없다는 것이다. 인간 마이클 무어와 그의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열광하거나, 아니면 싫어하거나 딱 그 두가지 지점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큐멘터리들은 불편한 주제를 과감히 까발겨 사회적 논쟁을 촉발해왔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 것이야말로 마이클 무어가 진정으로 노리는 목적이며, 그런 면에서 그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 책은 무어가 2011년에 발표한 자서전이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편년체로 기술하는 대부분의 자서전들과 달리, 무어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인생의 전반기에 경험했던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을 회상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2003년 그 유명한 아카데미상 시상식 뒷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무어의 어린시절로 되돌아갔다가 데뷔작 ‘로저와 나’가 맨 처음 극장에서 상영되기 직전의 순간에서 끝난다.


무어를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말썽장이’였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얻은 유쾌한 발견이었다. 어린시절부터 타고난 ‘반골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들을 읽으면서 폭소를 터뜨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외였던 점은, 무어가 사람을 울릴 줄도 안다는 사실이었다. 책 곳곳에는 가족과 미국에 대한 그의 깊고 따뜻한 애정이 숨어 있다. 무어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거울삼아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이 지닌 보석같은 장점이다.


이 책은 자서전의 전반부에 해당된다. ‘볼링 포 콜럼바인’ ‘ 화씨 9/11’ ‘식코’ 등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을 제작하는 과정, 개봉 이후 영화가 불러일으킨 논쟁과 무어가 겪어야했던 시련 등에 대한 속깊은 고백은 후편으로 이어질 듯하다.


2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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