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영국과 스페인은 왜 지브롤터 놓고 싸우나

bluefox61 2013. 8. 16. 12:00

 영국과 스페인이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대서양과 지중해의 관문인 지브롤터를 둘러싸고 치열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스페인은 300년전에 영국에 빼앗긴 지브롤터의 영유권 문제를 이번 기회에 본격 이슈화하겠다는 자세이고, 영국은 지브롤터를 사수하겠다며 양측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정면대결하고 있다. 스페인은 포클랜드(스페인어로 말비나스) 때문에 반영감정이 높은 아르헨티나와 연대해 지브롤터 갈등을 유엔에 상정하겠다는 계획이고, 영국은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강경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1967년 스페인이 지브롤터 반환을 요구하며 경제봉쇄를 단행했던 이후 양국관계가 이번처럼 악화되기 사실상 처음이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 7일 전화통화에서 "문제를 유연하게 풀자"고 말했지만, 16일 현재까지 갈등국면은 해소될 기미가 없다. 지브롤터 자치정부의 대표인 파비안 피카르도 수석장관은 심지어" 라호이 내각이 부패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지브롤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스페인이 북한 식으로 행동한다"고 비난을 퍼붓기까지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지브롤터 바위'. 그 앞의 가로지는 도로는 비행기 활주로라네요. >

 

 ▶발단은 인공어초=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 남쪽 끝에 자리잡은 지브롤터는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 정도인 6.8km², 총인구 약 3만명의 영국 속령이다. 전세계의 영국 속령(해외영토) 14개 중 유일하게 유럽대륙 내에 자리잡고 있다. '더 록(The Rock)'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지브롤터 바위산( 425m)'을 제외하면 인상적인 문화재나 지형지물이 거의 없다. 영국 정부가 파견하는 총독이 있지만,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모든 통치권한은 총선을 통해 선출된 자치정부가 갖고 있다.
 이번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브롤터 자치정부가 수자원 보호를 명목으로 위해 최근 인근 바닷 속에 투하한 콘크리트 블럭 어초. 스페인은 지브롤터측이 영해가 맞닿아있는 지점에 어초들을 투하하면서 사전 통보하지 않았고, 자국 어선의 어망이 어초에 걸려 찢어지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보복조치로 국경검문검색 강화를 단행했다. 지난 7월말부터 시작된 국경 검문검색 강화로 평소 몇분 밖에 걸리지 않던 국경통과 시간이 무려 5∼6시간으로 늘어났고, 30도가 넘는 한여름 땡볕아래서 통과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과 자동차들이 몇 km 씩 뒤엉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고 BBC, 가디언, 로이터, 엘파이스 등이 보도했다. 스페인은 지금까지 여권만 보여주면 무료로 통과할 수있었던 국경관리정책을 바꿔 50유로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런 와중에 영국은 해군의 지브롤터 지역 군함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해 양국간의 대치 상황마저 벌어질 수있는 긴장된 분위기이다. 이에 맞서 스페인은 지브롤터행 비행기의 스페인 영공 통과를 불허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스페인어를 몰라서 뭐라고 쓰여있는지는모르겠으나, "서로들 싸우지 말고 빨리 해결하라"는 말인듯합니다>

 

 

▶갈등의 핵은 어업권과 정치,경제적 이권= 양국간의 갈등이 악화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이다. 스페인 해경 순시선이 지브롤터 유람선을 가로막고 진로를 방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데 이어, 지난 2월에도 스페인 순시선이 지브롤터 영해 안으로 들어와 20분간 항해를 하다가 나갔다. 지브롤터 자치정부와 영국 정부는 이같은 일련의 사건을 스페인의 의도적 도발로 받아들이고 있다. 
 양국이 이처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지브롤터의 지정학적, 경제적 중요성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으로서는 지브롤터가 지중해로 들어가는 출입문인데다가, 이곳에 있는 해군기지를 통해 유럽본토에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스페인은 자국 부호들이 지브롤터를 조세회피처로 이용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지브롤터가 낮은 세율로 스페인 부호들의 탈세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브롤터 부자들이 스페인에 들어와서 별장 등을 구입하면서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고있다는 것이 스페인 측의 주장이다. 특히 영국이 지브롤터 영해권을 행사하고 있는 점은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분통터지는 일이다. 스페인이 지브롤터의 콘트리트 어초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이면에는 영해권 문제가 있는 셈이다.

 ▶갈등으로 피해보는 쪽은 스페인= 지브롤터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피해를 보는 쪽은 스페인이란 분석이 대부분이다. 국경지역에서 긴 줄이 늘어서있는 것은 스페인 쪽이다. 스페인에서 지브롤터로 넘어가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이다. 매일 1만명 이상이 지브롤터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다. 지브롤터는 견고한 성장률을 누려 경기 침체에 허덕이는 주변국들이나 영국 등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12억 파운드(14억 유로)로 전년도 대비  7.8%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스페인 경제성장률은 -1.4%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바 있다. 실업률은 2.5%에 불과하다.
 이렇다보니, 지연된 통관절차로 피해를 보는 쪽은 지브롤터에서 돈벌이를 해야하는 스페인 국민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직장이 지브롤터에 있는 사람과 실업자들이 국경선 앞에서 양국 정부의 대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13일 엘파이스 등 현지언론들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단체인 ERC가 "정부가 지브롤터를 부적절하게 괴롭히고 있다"며 지브롤터와의 연대를 선언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땡볕에 고생하는 것은 정작 대부분 스페인 국민들.>

 

 ▶외교분쟁으로 비화 = 스페인은 아르헨티나와 손잡고 지브롤터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1960년 통과된 유엔 결의안 1514호에 "영토통합을 해하는 시도는 유엔 헌장 원칙과 불일치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원래 스페인 땅이었던 지브롤터와 통합을 영국이 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영국은 유엔 결의안 1514호가 자결권은 인정하고 있는데, 지브롤터 국민들이 이미 1967,2002년 투표를 통해 영국 속령으로 남기로 스스로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은 스페인의 국경검문 강화가 통행의 자유를 규정한 유럽연합(EU)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유럽사법재판소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EU 집행위원회가 조사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조사를 시작해 결론을 내리기까지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양국간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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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브롤터는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지중해 최고의 요충지다.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8세기 이슬람군이 점령을 시도한 이래로 지브롤터는 이권싸움 및 쟁탈전의 중심이 됐다. 특히 올해는 스페인 패전으로 지브롤터가 영국에 할양한 지 300년 되는 해여서 양국간 신경전은 깊어지고있다.
 영국과 스페인이 지브롤터를 놓고 처음 싸움을 벌인 것은 1588년 '아르마다 싸움'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이용한 해상무역로가 개발되면서 영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이권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싸움에서 무적함대로 불리던 스페인의 아르마다 함대와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끈 영국 함대가 충돌했고, 결국 아르마다 함대가 대패했다. 영국군이 곧바로 지브롤터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전투에서의 승리는 영국이 해상강국으로 거듭나는 발판이 됐다.
 두 번째 충돌은 100여 년 뒤인 1704년 영국이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 개입하면서 빚어졌다. 스페인 왕위 계승자로 프랑스왕 루이 14세의 손자가 지명되자, 이를 이유로 영국이 네덜란드와 연합해 지브롤터를 점령한 것이다. 영국은 이후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으로 땅을 할양받았고 지브롤터는 영국해군의 주요 거점지가 됐다. 1869년 수에즈운하가 완공되면서 지브롤터가 갖는 해상무역상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지브롤터가 미국의 아프리카 작전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독일 공군은 미군의 거점을 초토화 시키기 위해 지브롤터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고, 거주하던 대부분의 주민들이 런던과 모로코 등지로 피난을 가면서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총통이 지브롤터에 대한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고 나서며 갈등이 재점화됐다. 결국 1969년 스페인이 지브롤터 반환을 요구하며 경제봉쇄까지 단행하는 등 파행을 빚자, 영국은 지브롤터를 독립시킬 것인지 직할지로 남길 것인지에 대해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결국 영국의 보호 아래 자치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결정되며 영국과 스페인 간 수백 년의 분쟁도 미봉됐지만, 아직도 '스페인 속 작은 영국'이라 불리며 불씨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