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지아장커, 기타노 다케시가 되다..'천주정'으로 본 오늘의 중국

bluefox61 2013. 12. 2. 13:49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G2의 한 쪽 축인 중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미지 또는 인식은 대략 두가지이다. 하나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외교와 국방력을 휘두르는 중국이다. 영국 언론인 마틴 자크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이란 책에서 지적했듯이 ,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날이 곧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두번째는 한국보다도 더 급속한 부의 축적으로 인해 초래된 도덕적 아노미가 심각한 중국이다. 단적인 예로, 하루가 멀다하고 중국으로부터 전해지는 온갖 엽기적인 뉴스는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사회규범이 붕괴된 중국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중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어도, 중국을 이해하지 않고는 안되게 됐다는 점이다.


다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으로 돌아가면, 그는 이 책에서 "서구 잣대로 중국을 평가, 해석해서는 중국의 원동력을 파악할 수없다. 중국을 이해하는 것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인은 과연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늘 궁금했는데, 지아장커의 새 영화 '천주정'은 그 속살을 다소나마 내보여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영어제목은 '터치 오브 신(Touch of Sin)'. 늘 지아장커를 과격하게 사랑하는 칸 영화제답게, 올해 칸은 이영화에 각본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천주정'의 가장 큰 특징은 , 지아장커의 그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현실에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집중하는 것은 지아장커의 이전 영화들과 비슷하지만

지아장커 영화에서 폭력이 넘쳐흐르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그런 점에서 '천주정'은 지아장커가 기타노 다케시가 되기로 한 것일까,란 의문마저 들게 하는 영화다.

 

'천주정'은 주인공 4명의 스토리를 하나로 연결한 일종의 옴니부스 영화이면서도 느슨하게 겹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식으로) .

 

4명의 주인공은, 개발 광풍이 불고있는 시골마을에서 관리와 부동산 업자 간에 이뤄지는 비리를 상부에 고발하려고 애쓰는 광산 노동자,   노모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살인청부업자,  마사지숍에서 손님의 손다발에 얻어맞으며 추행을 당하는  여종업원, 어머니로부터 자식이 아니라 돈벌어오는 기계쯤으로 취급당하는 유흥업소 남자 종업원 등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산골 마을까지 휘젖고 다니는 졸부들의 자가용비행기와 아우디 자동차가 등장하고, 세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돈만 있으면 어떤 여자라도 살 수있으며 무엇이나 할 수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나온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중국의 한 대만계열 리조트를 무대로 오늘날 중국의 쾌락 산업을 조명하는 동시에 소외된 노동자들의 좌절을 그린다.  
 

4명의 주인공 중 네번째 에피소드의 청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의 최후는 영화 속에서 보여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좌절한 그들이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폭력뿐.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같이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천주정'을 보고 난 느낌은, 지아장커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보다 절망적이란 점이다. 4명의 주인공들에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 사실, 그나마도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뿐이다. 게다가 마지막 에피소드의 청년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다. 


미국과 맞서며 전세계를 호령할 수있는 강대국이 됐고, 엄청난 부를 끌어모으는 부자나라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국가와의 여전히 거리가 먼 , 오늘의 중국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천주정'이다. 지아장커는 인터넷 포털 웨이보에 보도된 실제 에피소드를 토대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바있다.

 

참고로, 지아장커의 앞선 영화들을 껄끄럽게 여겼던 중국 검열당국이 '천주정'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삼지않고 국내 개봉을 허가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나마 중국이 변하기는 변한 것일까?

 

 

 

< 다음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지아장커와 씨네21의 인터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를 통해 접하게 된 사건들을 소재로 하여 네 가지 이야기를 만들었다.
첫 번째 사건은 산시에서 일어났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패한 관료들이 생겨나고 법은 종종 공정성을 잃는다. 그래서 일어난 일이다. 두번째 사건은 충칭에서 일어났다. 어떤 정신적인 압력과 억압 때문에 이 사람이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 궁금했다. 세 번째 사건은 후베이에서 일어났다. 마사지숍의 여직원이 자기 자존심을 짓밟은 사람들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네 번째는 광둥에서 일어났다.
답답한 도시 생활 속에서 
그 도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동력만 착취당하던 한 젊은이에게 일어난 일이다. 이 4개의 이야기는 말한 대로 4개의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장 북부인 산시성에서 시작하여 가장 남쪽인 광둥성 광저우까지 내려가며 중국 전체를 관통하고 싶었다.


-무협영화적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당신은 말했다.
무협영화는 원래부터 좋아했다. 그리고 무협영화는 대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네 가지 사건을 나의 상상을 거쳐 무협영화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중국 고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사회 문제들을 끌어안고 있는 현대 무협영화 말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무협영화적으로 가장 강조된 건 자오타오가 마사지 숍의 접수원을 연기하는 세 번째 부분이다.


-그 여인이 거대한 협곡 사이를 걸어가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협곡이라는 자연 경관은 무협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다. 가장 아름다운 무협영화의 한 장면 또한 그런 거대한 협곡 사이에서 남녀가 만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신은 이 영화의 테마를 또한 폭력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알다시피 중국의 발전 속도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너무 가파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사람과 동물 사이에 자기들도 모르는 폭력이 발생하곤 하는것이다. 그게 이 영화의 네 가지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는 무참하게 소를 때리는 사내와 돈다발로 여자의 얼굴을 때리는 사내가 등장한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거나 사람이 소를 때리는 것이 잔인한 행위라는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폭력에 노출되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잔인한 행위를 하게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돈으로 여자를 때리는 사내에 관한 이야기는 신문에서 본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 물질만능주의의 무의식이 빚어낸 악행에 분노했다. 하지만 돈으로 여인을 때리는 그 사내조차 자기도 모르게 사회의 악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영문 제목은 <A Touch of Sin>이다. 호금전의 <협녀> 영문제목(<A Touch of Zen>)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왜 ‘죄(sin)’인가.
앞서 말한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가진 공통의 약점, 그걸 ‘죄’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었다.


-사건이 일어난 곳들을 직접 다 가보았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이 들던가.
가장 놀랐던 곳은 광둥 지역이었다. 그곳 젊은이들의 생활방식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일정한 직업도 없을 뿐더러 3개월 이상은 같은 곳에서 일을 안 한다.


-중국 전통 문학과 경극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했는데.
중국 전통 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마치 <삼국지>처럼 실제 했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되 그 안에 상상적인 것을 다수 넣는 것이다. 또 한 가지 가져온 건 기승전결의 방식이다. 그와 같은 방식을 통해 이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