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언론들이 동태를 주시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메인주에 사는 30대 간호사 케이시 히콕스이다. 국제의료봉사단체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시에라리온에서 에볼라 환자들을 치료하다 귀국한 그는 음성반응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강제로 격리됐다가 퇴원한 후, 주 정부의 21일간(잠복기) 격리명령에 강하게 저항해 주법원으로부터 ‘의무격리’불허 명령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히콕스의 행동은 언뜻 매우 이기적으로 보이지만,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체액접촉으로만 감염되는 에볼라의 특성을 무시하고 음성판정을 받은 사람까지 강제적으로 격리할 경우 ‘피어볼라( 공포란 의미의 ’피어(fear)‘와 에볼라의 합성어)’만 부추기고,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의료진의사기를 꺽을 뿐이란 것이 히콕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지난 10월 30일 주정부의 격리 명령을 무시하고 남친과 자전거를 타며 늦가을을 즐기고 있는 케이시 히콕스. 뒤에서 경찰차가 따라 오고 있다>
세계 각국의 의사,간호사들이 에볼라와의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헌신과 희생은 엄청나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에볼라 사망자 4951명(10월 31일 기준) 중 의사, 간호사가 200명이 넘는다. 이제야 시작된 에볼라 백신실험을 위해 자신을 ‘인간 마르모트’로 내놓는 의사들도 있다. 진정한 ‘21세기의 슈바이처’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제10차 아셈(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서 에볼라 발병지역에 대한 의료진 파견 등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면서,‘강건너 불’이었던 에볼라가 이젠 우리의 문제가 됐다. 오는 7일 마감되는 에볼라 파견 공개모집에 신청서를 내는 의료인들이 줄잇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들의 희생정신에 머리가 절로 숙여질 뿐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에볼라와 같은 고위험성 감염질병에 대한 우리나라의 공공보건 실태이다.
국내에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운영하는 병원이 17곳 있지만 철저한 격리치료를 행하기엔 한계가 있는데다가 , 미국 등 선진국처럼 에볼라 환자치료와 혈액,체액 등 모든 가검물 검사를 한 곳에서 할 수있는 격리 병상은 단 한 곳도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발견될 경우 이를 취급할 수있는 전문 실험실도 없다. 에볼라같은 ‘생물안전 4등급’바이러스를 다룰 수있는 실험실이 충북 오송의 생명과학단지 내에 곧 완공된다고 하지만 제 기능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 병상이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만약 서울에서 에볼라 환자가 발생할 경우, 가검물을 검사하려면 서울과 오송 사이를 왔다갔다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나마 있는 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문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지난 9월말 부산에서 에볼라 의심 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보건당국이 보여준 ‘총체적 부실’이 확인됐다. 대응과정에 부산소방안전본부가 세 차례나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겨우 연결된 질병관리본부는 환자의 일반 병원 이송을 권유했으며, 국가 지정 입원치료 병원은 지정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환자는 결국 열대열 말라리아로 사망했지만, 만약 에볼라였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지금,과연 우리의 에볼라 대응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까. 에볼라는 인도적 위기뿐만 아니라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의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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