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지구촌 전망대

메르켈 리더십

bluefox61 2015. 3. 16. 15:29

독일 베를린 동쪽에는‘박물관의 섬’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베를린 중심을 흐르는 슈프레 강 위의 섬으로,우리의 여의도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 


‘박물관의 섬’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페르가몬 박물관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이 5개나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집중적인 폭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장엄한 옛 건물들 사이를 걷다보면, 동독 시절의 정취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무미건조한 아파트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 한 아파트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워와 영향력을 지닌 지도자 한 명이 살고 있다.바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독일 총리의 집으로는 상상조차 못하는 이유는 경찰관 두 어명만 앞을 지키고 있을 뿐,특별한 구석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없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파트 입구에 붙은 거주자 명패에는 ‘자우어 교수’라고 쓰여 있다.메르켈 총리의 남편인 요하임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의 이름이다.독일 총리가 살고 있는 집은 미국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은 물론이고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와도 확연히 다르다. 물론 사저이기는 하다.



느닷없이 메르켈의 집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의 성격과 스타일을 단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집권한지 꼭 10년이 되는 메르켈 총리는, 소위 ‘오버’를 극도로 싫어하기로 유명하다.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 동독으로 건너가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뛰어난 학습 능력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수줍은 성품에 앞으로 나서기를 극도로 꺼려 종종 선생님들의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메르켈은 지금도 마이크를 붙잡고 열변을 토하거나,인간적인 매력과 카리스마로 국민을 사로잡는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심지어 지난해 환갑잔치를 저명한 역사학자 위르켄 오스터함멜의 ‘19세기의 세계화’란 역사·경제학 강연듣기로 대신했을 정도다.
 

총리란 직함만 빼면 특별한 구석이라곤 없는 소박한 동네 아줌마같은 느낌의 메르켈이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놀랍기까지하다. 그러나 메르켈은 ‘여성’총리란 표현이 진부할 정도로, 지금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능가하는 명실상부한 ‘세계의 지도자’로서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부터 그리스 탈유로존 위기까지, 세계경제위기 극복부터 과거사를 외면하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가르치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이다.
 

메르켈을  말할 때 항상 지적되는 것이 실용주의이다. 하지만, 최근 메르켈 리더십을 분석한 한 외신기사를 읽다가 ‘타협의 정치’‘듣기의 정치’를 언급한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메르켈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파워’가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협력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한 측근은 메르켈이 남들과 대화할 때 직접 말하는 비중이 20%이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비중은 80%라고 말했다. 또 메르켈을 ‘듣기의 달인’으로 표현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메르켈이 내 말을 듣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할 말을 하는 결단력과 행동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리더십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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