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내가 몰랐던 역사6-예루살렘은 어느 나라 땅인가

bluefox61 2021. 3. 5. 08:42

2018년 5월 14일 전 세계의 시선이 중동의 고도(古都) 예루살렘에 집중됐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개관식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 프리드먼 David Friedman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개관을 공식 선언하면서 대사관의 새 위치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대사관 이전을 전격 강행한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을 언급할 때는 기립 박수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 Jared Kushner 백악관 선임고문은 축사에서 "대사관 이전과 개관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며 "미국은 옳은 일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과 오늘의 개관식이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미국의 강한 의지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또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언급하며 "폭력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미국은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평화협정을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이날 개관식에는 약 800여명의 내빈이 참석했다. 쿠슈너 선임고문과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Ivanka Trump, 스티븐 므누신 Steven Mnuchin 재무장관 등이 미국 정부 측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관식에 보낸 영상을 통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앞서 트위터에서도 "이스라엘에 매우 중요한 날"이라며 "축하한다!"는 뜻을 밝혔다.그는 이미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대사관 이전계획을 공식화한 바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는 대사관 개관식에서 "영광스러운 날"이라며 "이 순간을 기억하자"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역사를 인정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어냈다"고 극찬하면서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인 미국이 오늘 이 곳에 미국 대사관을 열었다. 예루살렘의 미국 대사관 개관이 진실을 넓게 퍼뜨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각, 팔레스타인령 가자지구 Gaza Strip와 요르단강 서안 West Bank에서는 팔레스타인 측 시위대의 거센 항의 시위가 열렸다. 이스라엘군이 실탄 사격으로 맞서면서 60여명 사망하고 2700여명이 다쳤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대사관까지 이곳으로 이전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국제사회는 비난을 쏟아냈다.국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정세를 뒤흔드는 무모한 행동이란 것이다. 1947년 유엔이 분쟁지역인 예루살렘에 ‘특별한 국제체제(Special International Regime)' 라는 그야말로 독특한 지위를 부여한 이후 이곳은 국제법상 그 어떤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다.

 

바람 잘 날없는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고도(古都)이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예루살렘은 역사상 늘 바람 잘 날 없는 분쟁의 도시, 유혈의 도시이다. 예루살렘이 특별한 이유는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왕이 통일왕국을 세워 수도로 삼은 곳이자 솔로몬 국왕이 최초의 유대교 성전을 세운 곳이며,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던 바위가 있는 곳이다. 이슬람 신도들에게는 선지자 마호메트가 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로 찾아와 승천한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인구는 약 100만명(2019년 현재). 37%는 아랍계 즉 팔레스타인 인이고, 61%는 유대계이다. 유대계 주민 중 약 20만명은 이른바 초강경 유대교 원리주의자로 분류된다. 아랍계 기독교 인구는 약 1%로 추정된다.

 

그야말로 '지붕없는 박물관'인 예루살렘 내에서도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들이 몰려있는 이른바 구시가는 동예루살렘 쪽에 있다. 면적은 0.9㎢에 불과하다. 성벽에 둘러싸여있는 예루살렘 구시가는 '무슬림 구역', '기독교인 구역', '유대인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4분할되어 있다.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는데, 어느 나라의 유산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저 도시명과 함께 '요르단이 제안한 유적 Site proposed by Jordan’'으로 표현돼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세계유산 지정은 요르단이 신청하면서 이뤄졌다.당시 미국 정부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므로 요르단에게는 신청 자격이 없다며 반대했지만 승인이 이뤄졌다.

 

예루살렘의 최고 성지는 1982년 이래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중 한 곳이기도 한 템플마운트 Temple Mount(아랍어로 하람 알샤리프 Haram al Sharif)이다. 이 곳에는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 Al Aqsa Mosque('메카로부터 가장 먼 모스크'란 뜻)와 솔로몬왕의 유대교성전이 세워졌던 곳, 그리고 예수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묘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다. 미국 대사관은 이같은 성지들과 자동차로 불과 10분 남짓 떨어진 거리에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영원한 우리 수도”

 

예루살렘은 늘 갈등과 충돌의 땅이었고, 수없이 파괴된 후 재건됐다. 200년동안이나 계속된 십자군 전쟁동안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피를 흘렸다. 예루살렘은 결국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됐고, 1차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자 영국과 프랑스의 점령을 다시 받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도 예루살렘에서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인티파다 Intifada(아랍어로 '봉기'란 뜻)' 와 이스라엘군의 탄압 등 갈등이 계속 이어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1948년 1차 중동전쟁 때 예루살렘 서쪽 지역을 점령하고 이듬해 이곳을 수도로 선포했다.1950년 1월엔 의회 역시 “예루살렘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수도였다”고 선언했다. 1967년에는 동쪽 지역까지 점령해 1980년 동·서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하는 법률을 발효시켰다. 이스라엘 정부 청사와 국회의사당, 대법원, 그리고 중앙은행 등은 모두 서예루살렘에 위치하고 있다. 경제부처와 군 관련 기관들, 그리고 각국 대사관들은 텔아비브에 있다.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등 일부 국가들이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둔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엔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과 수도 법을 선포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모두 대사관을 철수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중재로, 오슬로 협정 Oslo Accord을 통해 ‘두 국가 해법’에 전격합의했다. 이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영토로 인정됐다. 예루살렘의 경우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을 나눠, 서쪽은 이스라엘 영유권을 인정해주고 동쪽은 팔레스타인의 영유권을 보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 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인정하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점령한 땅들에서 공식 철수한 뒤에도 동예루살렘 불법 점령은 풀지 않았다. 세계에서 불러들인 유대인 이주자들의 살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 요르단강 서안에 정착촌들을 짓고 자국민들이 살게 했으며 정착촌들을 잇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세워 영토를 굳히는 작업을 해왔다.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지 2년 뒤인 1995년 미국 상하원은 '예루살렘대사관법(israel Embassy Act)'을 가결했다.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대사관을 이전한다는 것은 곧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 법에는 유예조항이 붙어있는데, 대통령이 외교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결정을 6개월간 보류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빌 클린턴 ,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모두 대사관 이전 결정을 유예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017년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 이전 계획을 공식화하기 전까지는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이전 결정을 유예했었다.

 

미국이 예루살렘에 대사관 문을 연지 불과 이틀 뒤인 5월 16일 남미국가 과테말라도 자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파라과이도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이전했지만, 같은해 9월 정권이 바뀌면서 국제법 존중을 이유로 대사관을 텔아비브로 다시 옮기겠다고 발표해 이스라엘 정부와 외교분쟁 자초했다. 미국과 과테말라에 이어 루마니아, 체코, 온두라스 등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을 수도로 인정했으며, 자국 대사관을 이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2020년 1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가 백악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중동평화구상’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땅인 요르단강 서안에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지은 이른바 ‘정착촌’들을 모두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이스라엘은 앞으로 4년 동안 새로운 정착촌을 세우지 않는 조건을 수락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밝혔다.

 

정착촌에 사는 이스라엘인은 최소 6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서안 전체 영토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름만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일 뿐, 사실상 이스라엘이 점유하면서 치안유지를 빌미로 병력을 주둔시키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통행을 수시로 통제하고, 심지어 우물을 팔 수조차 없게 막고 있다. 트럼프 정부 구상대로라면 팔레스타인은 영토의 절반 이상을 이스라엘에 내주는 셈이 된다. 그 대신 미국은 팔레스타인에게 “독립국가를 세우고 대사관을 개설하는 일에 500억달러의 국제금융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미국이 원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국제금융기관에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구상을 발표한 뒤 “세기의 딜”이라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마무드 아바스 Mahmoud Abbas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이날 “예루살렘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미국의 구상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낼 것”이라고 비난했다.

 

2021년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Joe Bidden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을 다시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이 강행했던 이스라엘 주권인정과 예루살렘 주재 대사관을 번복할지는 미지수이다. 당파를 막론하고 유대계 유권자들과 보수 기독교 유권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 정치인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