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내가 몰랐던 역사4-인류문명의 가장 작은 부품 '못'

bluefox61 2021. 3. 3. 11:59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 구조물 중 하나이다. 이 탑을 건축한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 Alexandre Gustave Eiffel의 이름을 따 에펠탑으로 불리지만, 탑의 구체적인 구조방식을 구상한 사람은 에펠의 협력자였던 건축가 겸 엔지니어 에밀 누기에 Émile Nouguier와 구조 엔지니어 모리스 쾨를렝 Maurice Koechlin이었다. 이미 프랑스 곳곳에 철교를 세우고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내부 철골구조를 설계해내 ‘강철의 마술사’로 불렸던 에펠이었지만 철근으로만 이뤄진 거대한 탑을 세우자는 아이디어에 처음엔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에펠탑은 콘크리트 기초에 4개의 철각(鐵脚)으로 세우고, 그 위에 철 탑을 얹어 놓는 구조이다. 자재의 총무게는 약 8,000톤. 본체에 사용된 연철만 약 7000톤이다. 약1만2000개의 철 부품들은 파리 북서부 외곽에 위치한 르발루아-페레 Levallois-Perret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다음 건축현장인 파리 샹드마르스 Champ de Mars로 옮겨져 조립됐다.300여명의 인부들이 25개월 동안 작업한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302m 높이의 위용을 드러냈다. 이후 에펠탑은 1959년 텔레비전 송전탑과 안테나가 더해져 320m로 증축되었다.

 

오늘날까지 파리의 상징으로 사랑 받고 있는 에펠탑에서 가장 작은 부품은 바로 못의 일종인 리벳 rivet 이다. 철판 두 개에 구멍을 뚫어 금속 못을 넣은 다음 지름이 작은 쪽을 망치로 내려쳐 하나로 연결하는 방법 자체를 리벳으로 부르기도 한다. 홈이 파인 나사(암나사.볼트)와 너트(수나사)로 철판을 연결하는 것보다 무게가 덜 나가는데다가 풀기가 어렵고 작업 시간이 덜 걸린다는 장점이 있다.에펠탑에 들어간 리벳은 약 250만개. 이 작은 리벳들 덕분에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오랜 세월동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참고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에는 120만개의 리벳이 사용됐다고 한다.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에는 600만개, 침몰한 타이태닉호를 조립하는데에는 300만개의 리벳이 사용됐다.

 

 

5000년 전의 점토 못 

 

 

인류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작은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못은 과연 언제 어떻게 발명됐을까? 

미국 하버드대 박물관에는 약 5000년전 메소포타미아 문명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 못이 보관돼있다. 메소포타미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좁고 긴 땅을 가르킨다. BC4000년쯤 이 땅의 하류지역에 도시국가를 세우고 문명을 일군 사람들은 수메르 Sumer 인들이었다. ‘수메르’란 단어 자체가 ‘두 강 사이를 낮은 땅’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메르 인들은 신을 기리는 크고 작은 신전들은 세웠는데, 특이하게도 지금의 못과 비슷한 형태의 점토 못을 만들어 신전을 치장했다. 미국 하버드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점토 못은 BC2400년쯤 수메르의 라가시 Lagash왕국을 통치하던 엔메테나 국왕 King Enmetena의 명령으로 신전을 건축하는데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오늘날의 작고 가는 철 못과 달리 점토를 구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크기가 크고 굵은데다가 몸통에는 쐐기문자가 새겨져 있다.문자의 내용은 “엔테메나 국왕의 명령을 받아 신전의 기초로 이 못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수메르 인들은 점토를 구워 만든 이런 못들을 흙덩어리 속에 박아 신전 바닥과 벽을 만들고, 못의 머리에 색을 칠해 벽면에 문양을 만들어 장식하기도 했다. 미국 시카고대 박물관이 1938년 한 골동품 상으로부터 구매한 점토 못 경우 못 머리부분의 직경이 187mm이고 몸체의 길이는 110mm이다. 못의 머리와 몸체에는 역시 쐐기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학자들이 해석한 결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최전성기 때 BC18세기경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국왕 King Hammurabi 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청동 등 금속 못은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95년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의 고고학자 윌프레드 그릭스 C. Wilfred Griggs 교수 연구팀은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소재 로시쿠르시안 이집트 박물관 The Rosicrucian Egyptian Museum 에 소장된 이집트 남성 미이라를 엑스레이로 촬영해 살펴본 결과 깜짝 놀랐다. 약 3000년 전인 BC 1000년대 쯤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남성의 왼쪽 넓적다리 뼈와 종아리 뼈를 연결하는 부위에 약 23cm 길이의 홈이 파진 금속 못(또는 핀)이 박혀 있었던 것.

 

당초 연구팀은 미이라가 도굴된 이후 밀매되는 과정에서 다리 뼈가 부러지는 손상을 입었고, 밀매꾼들이 이를 ‘수리’하기 위해 기술자들을 동원해 금속 못을 뼈에 박아넣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팀은 확실히 규명하기 위해 박물관 측의 허가를 받아 미이라를 감싸고 있는 천을 벗겨내 다리 접합 부분을 세밀히 조사했다. 그 결과 남성의 뼈 속에 박힌 못이 고대 이집트 시대의 것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을 미이라로 만드는 과정에서 기술자들이 부러진 다리를 나사 못으로 연결하는 시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고인이 건강한 몸으로 내세에서 살아갈 수있도록 부러진 다리를 못으로 연결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인들이 비록 오늘날과 같은 정형외과 수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나사 못을 사용해 부러진 뼈를 연결할 수있다는 개념을 3000년 전에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못은 성서에도 등장한다. 구약에는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했듯이, 로마인들은 죄수를 처형하는데도 쇠못을 사용했다. 86~87년 쯤 영국을 침공한 로마인들이 세운 요새 유적지에서는 무려 7톤의 쇠못이 발굴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못의 역사도 최소 200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BC1세기 후반인 원삼국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 경상남도 창원시 동면 다호리고분 제1호분 목관 밑에서 나무칼 한 개가 발굴됐다. 이 칼은 엑스선으로 촬영해본 결과 칼 손잡이에 7~8mm 길이의 청동 장식못이 박혀있는 것이 발견됐다. 백제 무령왕릉에서도 세가지 종류의 관 못이 나왔다. 501~523년 재위한 백제의 무령왕의 릉에서는 세가지 종류의 관 못이 나오기도 했다. 머리 형태에 따라 화형(花形)·원형·방형(8cm 정도)의 못이다.  526년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신덕고분에서는 원두정(圓頭釘)·방두정(方頭釘)·편원두정(偏圓頭釘)의 관못이 무려 150여 점이나 출토됐다,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으로 추정되는 평안남도 대동군 화성리 쌍곽분의 동곽에서 10~12cm 길이의 관 못 34개가 발굴되기도 했다. 머리는 반원형으로 곱게 만든 것과 납작한 것의 두 종류로 길이는 2cm 정도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발명한 나사 못

 

 ‘미이라 못’에서 보듯, 못의 몸체에 홈을 낸 나사못의 역사도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사란 원통 모양의 못에 한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홈을 파놓은 것을 말한다. 일반적인 못과 달리 나사 못은 작은 힘으로도 두 물체를 꽉 조일 수 있도록 해준다. 기록상으로 전하는 나사의 최초 발명자는 BC3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이다.정확하게 말하면 나사 못 자체라기 보다는 나사의 원리를 발견했다고 할 수있다.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후 맨 몸으로 뛰쳐나와 ‘유레카 eureka’를 외쳤다는 일화로 잘 알려진 아르키메데스는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이자 발명가이고 무기 디자이너였다. BC 287년 쯤 오늘날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도시인 시라쿠사에서 태어났다.시라쿠사 Siracusa는 고대 그리스의 코린토스인과 테네아인들이 세운 도시국가 시라쿠사는 로마공화정 말기의 정치인이자 저술가인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가 "모든 그리스인들의 도시 중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을만큼 번성한 곳이었다.

 

기록에 따르면,아르키메데스는 BC270~215년 재위한 시라쿠사의 국왕 히에론2세 Hierón II의 부탁을 받아 거대한 선박을 설계했다.시라쿠시아 Syracusia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선박은 무려 600여 명이 승선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였다. 아르키메데스는 선박에 물이 들어찼을 때 이를 퍼올릴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냈다. 바로 속이 빈 긴 원기둥에 회전축을 두고 나선을 붙인 다음, 말이나 소로 회전축을 돌려 물을 퍼 올리도록 만든 것. 아르키메데스는 나선의 각도에 가해지는 힘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그 힘을 이용해 얼마만큼의 물을 끌어올릴 수있는지를 계산해냈다. 이 장치를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나사 Archimedes’ Screw’ 또는 ‘아르키메데스의 펌프 Archimedes’ Pump’로 부른다. 로마 시대의 건축가 겸 작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는 아르키메데스 펌프가 바빌로니아의 공중 정원에서 사용되었던 펌프를 개량한 것이라고 기록했는데, 아르키메데스가 젊은 시절 이집트에서 수학했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BC5세기 그리스 피타고라스학파의 수학자 아르키타스Archytas 가 원뿔곡선 이론을 세워 아르키메데스 보다 먼저 나사 못의 원리를 제시했다는 주장도 있다.나무로 만든 ‘아르키메데스의 펌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지금처럼 크기가 작은 금속 나사는 1513년 무렵 독일의 한 시계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으로 일일이 만들었던 나사 못을 기계로 생산해낸 사람은 영국 ‘공작기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모즐리Henry Gwyn Jeffreys Moseley다. 그는 1797년 제각각 다르던 나사의 굵기와 나사선의 간격을 통일화한 선반기계를 발명해 대량생산시대를 연다.나사 산의 각도를 규격화한 제품을 고안한 사람은 모즐리의 공장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조지프 위트워스 Joseph Whitworth였다. 그가 1841년 위트워스가 만들어낸 일명 ‘위트 나사’는 영국 철도국의 공식 나사로 채택됐다. 이 규격은 다른 분야로도 보급되면서 영국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국가간에 서로 다른 나사 규격이 통일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이다. 전쟁 당시 미국과 영국 간에 나사 못 규격이 달라 비행기 부품 등을 수리하는데 큰 애를 먹었던 경험이 결국 규격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나사 못을 드라이버로 더욱 단단하고 안전하게 조일 수 있도록 못의 머리에 홈을 내는 아이디어는 1875년 미국인 앨런 커밍스 Allan Cummings가 처음 구상했지만, 이를 제품으로 생산해낸 사람은 캐나다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피터 L 로버트슨 Peter Lynburner Robertson 이었다. 그는 나사 못 머리에 네모난 홈을 낸 제품을 1908년 캐나다 온타리오 밀턴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해 팔기 시작했다. 십자홈 나사못은 1900년대 초 미국의 엔지니어 헨리 필립스 Henry Frank Phillips에 의해 발명됐다. 이 나사 못은 오늘날까지도 ‘필립스 나사’로 불린다. 필립스는 1933년 특허를 내고 십자 나사를 대량생산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십자 나사용 드라이버 역시 그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