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

내가 몰랐던 역사9-피임은 어떻게 발전했나

bluefox61 2021. 3. 17. 12:37

생어(왼쪽)와 핀커스

1950년 어느날 밤, 미국의 생물학자 그레고리 굿윈 핀커스 Gregory Goodwin Pincus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한 여성을 만났다. 그 여성의 이름은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 백발이 성성한 71세 나이의 생어는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악명’높은 여성이었다.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평생동안 여성의 피임권리를 주장하면서 숱한 고난 속에서도 산아제한운동을 펼쳐온 투사였다.핀커스도 만만치는 않았다. 코넬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한 그는 1934년 토끼의 난세포를 체외수정하는데 성공해 ‘프랑켄슈타인’이란 비난을 불러일으킨 전력이 있었다.

 

생어는 산아제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핀커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할 수 있을까요?” 알약으로 피임할 수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그는 이미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회의적인 답변을 얻었을 뿐이었다. 만에 하나 과학적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제약회사가 법적 제한에 맞서 피임약을 출시할리 없다는게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핀커스의 반응은 달랐다. 생어의 제안을 받은 그는 매사추세츠주 슈러스버리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 ‘실험적 생물학을 위한 워스터 재단’ 사무실로 달려가 동료 연구원 중 한 명인 장민줴  張明覺박사를 만났다. 그는 “생어 여사를 방금 만났는데, 피임약 개발에 강한 관심을 보이더라. 주사나 바르는 젤리, 여성의 성기에 도구를 삽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먹는 알약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류 역사를 바꾼 발명품

 

핀커스와 장박사는 토끼에게 성호르몬 프로게스테론 progesterone을 주입하면 배란을 막을 수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프로게스테론은 주로 난소에서 배란 후 만들어지며,생리주기와 임신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의 몸은 임신하게 되면 배란을 멈추는데, 여성호르몬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estrogen의 농도가 높으면 난자의 성숙과 배란이 억제된다.

 

토끼를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 세계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생물학자 루드비히 하벌란트  Ludwig Haberlant 였다. 그는 1921년 암컷 토끼에게 임신한 또다른 암토끼의 난소를 이식, 호르몬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피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하벌란트는 1931년 펴낸 연구서에서 “여성을 일시적으로 호르몬 불임이 되도록 만드는 방법은, 의문의 여지없이, 인류사회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선구적인 1932년 그가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핀커스와 창 박사는 여성의 몸이 자연적으로 이같은 피임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데 주목했고, 이를 기반으로 경구 피임약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동물이 아닌 인간 여성을 대상으로 프로게스테론 주입 실험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법적 제약 뿐만 아니라 돈도 문제였다. 프로게스테론을 얻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이에 생어는 핀커스를 돕기 위해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이자 생물학도 출신인 캐서린 매코믹 Catherine McCormick 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생어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매코믹은 피임약 개발을 위해 200만 달러를 선뜻 내놓았다. 지금의 화폐가치로는 약2000만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핀커스 연구팀은 1943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러셀 얼 마커 Russell Earl Marker 교수가 멕시코의 열대 정글에서 자생하는 식물인 얌을 이용해 프로게스테론을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한데 주목했다. 1951년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화학자 칼 제라시 Carl Djerassi 가 스테로이드 연구를 하면서 프로게스테론의 유사체인 노르에티스테론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핀커스는 위와같은 연구성과들을 흡수해 1954년 메스트라놀(에스트로겐)과 노르에티노드렐(프로게스틴)을 주성분으로 하는 피임약을 개발해내는데 성공했다. 1956년에는 임상실험이 단행됐고, 1960년에는 마침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공식 인정을 받아 ‘에노비드10’란 이름의 피임약이 출시됐다.  여성들이 드디어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활동 확대와 의식 및 사회구조 변화로 이어졌다. 경구피임약이 ‘20세기 최고의 발명’ ‘인류역사를 바꾼 발명’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성서가 권한 질외사정 피임법

 

피임의 역사는 수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필라델피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명 ‘카훈 파피루스 Kahun Papyrus(또는 라훈 Lahun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부인과 치료술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BC1800년쯤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파피루스는 영국의 이집트학자 플린더스 페트리 Flinders Petrie가 1889년 이집트 파이윰에서 발굴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로 피임법. 아카시아 나무 진액 등을 여성의 질 속에 넣으면 임신을 피할 수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독일 라이프치히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명 ‘에버스 파피루스 Ebers Ppyrus’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1873년경 이집트 룩소르에서 이 파피루스를 입수해 유럽으로 가져왔던 독일인 이집트학자 게오르크 에버스 George Ebers의 이름을 따서 ‘에버스 파피루스’로 불리는 약 20m 길이의 이 두루마리 문서는 BC1550년경 씌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도 “수태를 막으려면 대추와 아카시아잎사귀 반죽, 꿀을 바른 양털을 질 안에다 넣는다”라고 적혀 있다. 악어의 똥 또는 코끼리 똥을 일종의 살정제로 사용하라는 대목도 있다.이런 방법들이 임신을 피하는데 효과가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 이집트에 ‘피임’의 개념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가장 고전적인 피임법은 질외사정이다.성서 창세기에도 등장하는 방법이다. 유다의 아들 오난은 형 엘이 사망한 후 유대인의 풍습대로 홀로 남은 형수와 결혼한다. 하지만 형의 자손을 낳지 않기 위해, 아내와 성관계 때 체내 사정을 하지 않고 바닥에 체외 사정을 하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오난은 자위 또는 마스터베이션은 대명사가 됐다. 

고대 그리스와 근동지역에서는 북아프리카에 자생하는 식물 실피움이 피임에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임신을 피하려는 여성들이 이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석류,박하,쑥 등을 살정제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교전 질 안에 삼나무 오일을 바르면 임신을 막을 수있다고 주장했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성교 후에 질 안을 씻어내는 피임법을 권하기도 했다. 9~10세기 페르시아 의사 모하메드 이븐 자카리야 알 라지Muhammad Zakariya al Razi 는 피임법으로 질외사정, 코끼리 똥과 양배추 등으로 만든 좌약을 주장했고, 비슷한 시기의 또다른 의사 알리 이븐 아바스 알마주시 Ali Ibn al Abbas al Majusi는 암염으로 만든 좌약을 질 안에 넣어 임신을 막는 방법을 문서에 기록해놓았다.

 

 

콘돔을 사랑한 국왕과 호색한 

 

콘돔의 역사도 길다.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동물의 내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양의 창자와 물고기 껍질, 붕어의 부레, 동물 가죽, 거북의 등껍질 등을 썼다. 중국에서는 기름을 바른 비단 종이나 염소 내장으로 귀두용 콘돔을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아마포로 만든 콘돔이 등장했다.

 

콘돔은 당초 피임 보다는 성병을 막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이탈리아 의사 가브리엘레 팔로피오 Gabriele Falloppio는 한 논문에서 매독의 심각성과 콘돔 사용법에 관해 기술했다. 유럽에서 매독이 크게 번진 것은 1490년쯤이었다. 매독은 감염되면 몇 개월안에 죽을수도 있는 치명적인 병이었다. 팔로피오는 매독 감염을 막으려면 성관계를 하기 전 약물을 묻혀 말린 천으로 귀두를 감싼 다음 리본을 묶으라고 권했다. 그는 남성 1100명을 상대로 자신의 발명품이 과연 성병을 막는데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진행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콘돔이 유럽에서 피임기구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1605년 가톨릭 교리학자 레오나르두스 레시우스 Leonardus Lessius가 발표한 ‘정의와 법에 관하여 On Justice and Law’란 제목의 글을 통해 확인된다. 그는 남성들이 콘돔을 성병예방이란 당초 목적과 달리 피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이는 비도덕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1666년 영국의 한 문건에는 출산률이 최근 하락하고 있으며, 이는 ‘콘돈(condon)’ 때문이라는 지적이 등장한다. 영국 공문서에 콘돔을 의미하는 ‘콘돈’이란 단어가 등장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1872년판 카사노바 자서전에 수록된 삽화. 콘돔의 안전성을 체크하는 카사노바(왼쪽)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호색한 자코모 카사노바 Giacomo Casanova 는 자칭 콘돔애호가였다. 그는 자서전에서 젊은 시절엔 콘돔 사용에 부정적이었지만, 질병과 임신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애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콘돔을 사용하기 전 새는 곳이 없는지 체크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당시 유럽 대도시의 술집, 이발소, 약국 또는 시장 등에서 콘돔을 구할 수있었다. 다만 가격이 비싸 중상류층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콘돔은 대중화된다.1855년 세계최초의 고무 콘돔 제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George Bernard Shaw가 콘돔을 “19세기 최고의 발명품 greatest invention of 19th centry” 으로 극찬했을 정도이다. 20세기 중반에는 얇고 탄성이 뛰어난 라텍스 콘돔이 등장했고, 여성의 질 전체를 감싸는 콘돔도 발명됐다. 전 세계 콘돔 시장은 2020년 현재 약 92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콘돔이란 단어가 어떻게 등장하게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17세기 중후반 영국을 통치한 바람둥이 국왕 찰스 2세 Charles II를 위해 콘돔을 발명한 주치의의 이름을 따온 것이란 주장이 있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당시 궁정에 콘돔 또는 콘돔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팔로피오의 기록에서 보듯, 콘돔은 찰스 2세 재위기간 보다 100여년 전부터 유럽에 존재했다.다만 라틴어에서 어원을 유추해볼 수는 있다. 라틴어에는 그릇을 뜻하는 ‘콘돈(condon)’, 집이란 의미의 ‘콘다미나(condamina)’, 칼집 또는 통을 뜻하는 ‘쿰둠(cumdum)’이란 단어가 있다. 이런 단어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콘돔’으로 변형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탈리아어로 장갑을 뜻하는 ‘관토네(guantone)’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에는 경구피임약과 콘돔이 가장 대중적인 피임법이지만, 남성의 고환에서 생성된 정자들이 통과하는 정관을 묶거나 끊어주는 정관수술, 여성의 배란을 억제하는 황체호르몬을 매일 일정량씩 배출하는 장치를 피부 밑에 삽입하는 피하이식제도 사용되고 있다.성관계 이후 임신을 막는 ‘사후피임약’도 있다. 프로게스테론 유사물질인 레보노게스트렐을 한꺼번에 다량으로 투여해 자궁내 점액의 점도를 높여 수정난이 자궁점막에 안착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사후피임약의 원리이다.미국 등 60여개국에서 일반의약품으로 구입할 수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