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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타니-그의 또다른 변신이 궁금하다

소설 ‘다빈치코드’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뉴스가 처음 전해졌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점은 ‘사일러스 ’를 어떤 배우가 맡게될 것인지였습니다. 멜라닌 색소 결핍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이른바 ‘알비노’ 증세를 타고난 독특한 외모는 물론이고,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신부를 위해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밤마다 가시박힌 채찍으로 내리치며 수행하는 사일러스야말로 원작자 마이클 브라운이 가장 공들여 창조한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저 역시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35만명의 관객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사일러스’를 연기한 폴 베타니(35. 사진)였습니다. ‘뷰티풀 마인드기사 윌리엄 마스터 앤드 커맨더’등 그에게 명성을 안겨다..

미셸 파이퍼-나의 영원한 수지

로잔나 아퀘트 감독의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한마디로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영화입니다. 어느덧 마흔고개를 넘어선 배우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인 아퀘트가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던 중, 은퇴선언조차 없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선배 배우 데브라 윙거(‘사관과 신사블랙위도우’)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요. 그렇다고해서 윙거의 뒤를 좇는 스릴러 형식은 아닙니다. 아퀘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수많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여성이자 배우로서 겪는 불안감과 좌절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이상하게도(?) 미셸 파이퍼(49)를 떠올렸습니다. 약 5년전에 출연한 ‘아이 엠 샘 (2001)’이후 그녀를 스크린에서 언제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

덴젤 워싱턴 -나를 영웅이라 부르지 말라

‘인사이드맨’은 모처럼 할리우드의 호화 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덴젤 워싱턴과 조디 포스터, 웰렘 데포와 크리스토퍼 플러머, 여기에 최근 주가가 한창 상승중인 영국 배우 클라이브 오웬까지 가세하고 있지요. 인종갈등 문제에 항상 예민하게 촉수를 드리워온 흑인감독인 스파이크 리는 이 작품에서 배우들의 고정된 이미지를 슬쩍 변형시켜 관객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늘 선과 정의 편에 서있던 덴젤 워싱턴은 경찰 내사과의 조사를 받고 있는 적당히 썩은 인질협상가, 차분하고 이지적이며 독립적인 조디 포스터는 돈과 권력을 가진자를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 ,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배우인 클라이브 오웬은 뭔가 특별한 목적을 숨긴듯한 은행강도로 등장하지요. 이중 가장 반가운 얼굴은 덴젤 워싱턴이었습니다. 모처럼..

랄프 파인스-차갑거나 혹은 뜨겁거나

13년전 ‘쉰들러 리스트’에서 랄프 파인스(44·사진)를 처음 보았을 때, 그의 혈관 속에는 뜨거운 피가 아니라 차가운 얼음물이 흐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우슈비츠 유대인수용소 소장이었던 그는 수용소 마당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저택의 2층 베란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기분전환으로 눈에 뜨이는 유대인들을 총으로 쏴 죽이지요. 새하얀 피부, 여자 죄수들의 몸을 타고 흐르던 그의 투명하게 맑은 푸른 눈동자가 뱀처럼 얼마나 섬뜩했든지. 불과 3년뒤 파인스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아름다운 유부녀에게 사로잡힌 영국군 장교였던 그는 사랑과 자신의 열정에 모든 것을 거는 남자 , 그 자체였지요. 아프리카 사막의 머나먼 동굴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

레이첼 와이즈- 영국 영화의 새로운 히로인

지금 우리 극장가에서 의미심장한 사건 하나가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18세기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오만과 편견’이 개봉 3주차에 벌써 전국 약 70만명의 관객을 모으고 있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영화와 TV드라마로 리메이크됐던 이 작품이, 더구나 남녀가 만나서 지지고볶으며 싸우고 연애하다가 결국엔 결혼에 이르는 ‘구태의연’한 스토리의 이 영화가 , 가벼운 멜로와 코미디물이 판치는 우리 극장 문화 속에서 70만명 관객동원이란 기록을 세운 것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려는 배우는 ‘오만과 편견’의 여주인공 키라 나이틀리나 , 이 영화에서 셔츠 앞자락을 풀어헤친채 새벽 안개를 헤치고 걸어나오는 장면 하나로 역대 다아시 중 가장 남성적..

레니 리펜슈탈

레니 리펜슈탈(1902~2003). 그 이름만큼이나 100여년의 영화역사상 격찬과 비난, 천재와 악마로 평가가 엇갈렸던 감독은 없었다. 그녀는 ‘히틀러의 영화감독’이란 저주의 낙인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리펜슈탈 이전, 또 그 이후에도 다큐멘터리의 본질과 힘을 그녀만큼 꿰뚫어보았고 그것을 진정한 예술인 동시에 프로파간다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감독은 없었다. 리펜슈탈이란 이름이 아직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 히틀러와 나치즘에 일조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역사적 잣대로도 그녀의 천재적 영화적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폄훼할 수없다는 점 때문이라고 하겠다. 또한 리펜슈탈은 역사 속에서 영화감독이 어떤 책임의식을 지녀야하는지를 보여준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리펜슈탈이 히틀..

‘카포티’ 그리고 ‘인 콜드 블러드’

1984년 8월 28일.뉴욕타임스 부고란에 한 남자의 사망을 알리는 장문의 부음 기사가 실렸다. 부고는 이렇게 시작된다. “트루만 카포티. 명징하게 빛나는 탁월한 문장으로 전후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던 그가 59세 나이로 어제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졌다. 카포티는 소설가이자 단편작가이며, 로 논픽션 소설 장르를 개척한 문단의 셀레브리티(유명인사)였다. 십대 시절 첫 단편소설 으로 데뷔한 이래 그는 총 13권의 작품집을 남겼으나, 진정으로 위대한 미국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존 말콤 브리닌에 따르면, 카포티는 명성과 부(富), 그리고 쾌락을 좇는 데 자신의 시간과 재능, 건강을 탕진했다.” 국내 영화팬들에게 트루만 카포티란 이름은 주로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의..

오프사이드

월드컵 본선진출을 결정짓는 이란과 바레인의 마지막 경기. 이란 수도 테헤란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축구열기에 후끈 달아 올라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마다 대형 이란 국기를 휘두르고 구호를 외치면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다. 버스 한쪽 구석에 축구광 십대 소녀 미리엄도 앉아있다. 남자 옷을 입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이란 법에 따르면 여성의 축구장 입장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경기를 구경할 수 있지만, 경기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 군인들의 눈에 뜨이면 바로 퇴장조치를 당하거나 풍기문란 죄로 체포될 것이 분명하다. 일단 입장권을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아무리 남장을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여자티가 나기 때문에 정식의 매표소에서 표를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암..

이마무라 쇼헤이의 죽음을 추모하며

지난 2001년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해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다. (1983) (1997)로 두 차례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거장 감독과의 만남에 기자회견장은 시작 전부터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마무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부대행사인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에 신작 를 내놓고 전체 제작비 중 약 4억 엔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참이었다. 1926년생이니 당시 그의 나이 75세. 나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거동부터 얼굴색, 언어구사 능력 등에 이르기까지 이마무라의 건강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1시간 남짓한 길지않은 기자회견 내내 그는 힘에 부친듯 기자들이 퍼붓는 질문에 짧게 대답했고, 그나마도 종종 질문의 방향과 어긋나곤 했다. 영화제작과 관련..

'굿나잇 앤 굿럭', 머로, 그리고 부시를 생각한다

유럽대륙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휩싸여 있던 시절, 대서양 건너 미국사람들이 유럽의 최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라디오였다. 유럽에 가족이나 친척을 남겨둔 이민자들은 더욱 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과 위로는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CBS 런던특파원 에드워드 머로(1908~65)의 목소리뿐이었다. “여기는 런던입니다”로 시작해 “안녕히 계십시오, 행운을 빕니다(굿 나잇 앤 굿 럭)”으로 끝나는 그의 생생하고도 차분한 리포팅은 20세기 방송 저널리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본래 ‘굿 나잇 앤 굿 럭’은 머로가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1940년 말, 매일 밤낮으로 런던에 독일군의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던 이른바 ‘런던 블리츠’ 때 엘리자베스 공주(현 여왕 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