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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인 오스틴인가

"우리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오스틴이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커렌 조이 파울러의 ‘제인 오스틴 북클럽’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제인 오스틴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벌이는 독서클럽의 멤버인 조슬린에게 있어 오스틴은 결혼하지 않고도 사랑과 구혼에 대한 멋진 소설을 쓴 여자다. 또 다른 멤버 버나데트에게 있어 오스틴은 희극의 천재다. 실비아의 딸이자 동성애자인 알레그라에게 오스틴의 존재는 여성들의 개인적인 삶에서 경제적인 궁핍함이 가져오는 충격에 대한 글을 쓴 여자이며, 프루디란 여자에게 있어 오스틴은 겨우 마흔한 살의 나이에 호지킨병(림프계 암)으로 죽은 여자다.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여섯 멤버들의 삶과 오스틴 소설 속 캐릭터 또는 오스틴 자신의 삶(독신, 병, 죽음, 또는 사후 끊임없이 제기됐..

너무 농염한..스칼렛 요한손

성숙함이 반드시 나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스칼렛 요한슨을 보면 실감할 수있다. 이제 스믈두살밖에 되지 않은 이 여배우의 차분하고 깊은 눈빛은 나이를 잊게 만들정도로 경이롭다.동세대 배우인 키라 나이틀리나 린제이 로한, 나탈리 포트만, 시에나 밀러 등과 요한슨은 확연히 구별된다. 외모부터 그렇다. 요한슨은 인형같은 깜찍한 외모의 소유자도, 멋진 옷차림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패셔니스타도 아니다. 몸매도 로한처럼 깡마르거나, 나이틀리 처럼 큰키에 늘씬하기보다는 아담하고 풍만한 편이다. 요한슨은 21세기 신세대답지않게 로렌 바콜이나 리타 헤이워드같은 40~50년대 할리우드 전성기때 ‘디바’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를 가졌다. 요한슨의 특별함은 조숙함을 넘어 성숙한 눈매와 농염한 입술에서 흘러나온다. ..

쿨 가이, 조지 클루니

미국 영화계에서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 활동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로버트 레드포드, 와 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의 워렌 비티 등이 대표적인 감독 및 제작자 겸업 배우들. 비록 아카데미 상은 받지 못했지만 조디 포스터, 드류 배리모어 등도 할리우드의 파워 여성들로 꼽힌다. 그러나 조지 클루니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세계 영화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스타배우로서 그의 독특한 행보 때문이다. 블록버스터 오락물이 사실상 지배하는 할리우드에서 클루니는 진보적인 정치메시지 영화의 부활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할리우드의 진보주의자, 즉 80년대 초반 를 만들었던 워렌 비티, 그리고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그린 를 제작하는 등 인디영화의 대..

밴디다스

서부개척시대.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멕시코로 돌아온 우아한 미녀 사라 (셀마 헤이엑)와 거친 성격의 하층계급 여성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는 출신배경만큼이나 서로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상대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않지만, 우연한 일로 인해 손을 잡게 된다. 철도건설을 위해 무자비하게 멕시코 농민들을 수탈하는 미국은행에 의해 사라는 아버지를, 마리아는 생명처럼 소중한 농토를 잃었기 때문이다. 사라와 마리아는 가족을 위해, 나아가 멕시코의 힘없는 민중들을 위해 미국은행을 털기로 하고, 2인조 미녀은행강도로 나선다. 프랑스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뤽 베송이 제작을 맡은는 볼거리와 속도감있는 액션에 무게를 둔 작품이란 점에서 , 베송이 그간 할리우드와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내놓았던 일련의 영어영화..

하프라이트

레이첼 칼슨 (데미 무어)은 ‘황금단도상’ 등 저명한 추리문학상을 휩쓴 미국 여성작가다. 영화가 시작되면 레이첼이 런던의 아담한 자택서재에 앉아 구식 타이프라이터로 작품을 쓰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영국인 남편이 편지 한장을 들고 서재로 들어온다. 그는 영국 출판계가 알아주는 실력있는 편집자이지만, 스릴러 작가로는 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가 방금 읽은 편지도 스릴러 소설의 출판을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레이첼은 실망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좋은 작가야. 하지만 출판사측에서 스릴감이 좀 부족하다고 하니깐 조금 보완해서 다시 보내보는게 어때.” 만약 레이철의 남편이 쓴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 였다면, 출판사측의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스릴감이 부족한데다가, 엉성하기 ..

종로코아극장의 폐관을 아쉬워하며...

80,90년대 영화광세대에게 종로 2가의 코아극장은 특별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일겁니다. 왕가위의 '중경삼림'동사서독' 등을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코아극장이었고, 비교적 최근에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류승완이란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쁨을 안겨주었던 곳도 코아극장이었습니다. 영화뿐이겠습니까. 코아극장 앞은 종로서적과 함께 우리들의 단골 약속장소였고, 돈 좀 있는 날에는 반줄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즐기는 호기를 부렸는가하면, 호주머니가 가벼운 날은 오뎅과 떡볶이 한 접시를 친구들과 뚝딱 먹어치우며 수다를 떨었던 곳도 코아극장 주변에서였죠. 특히나 코아극장은 저같은 '프랑스 문화원'세대에겐 문화원 지하극장의 매케한 곰팡내를 추억할 수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스크린이 작아도, 좌석이 조..

양조위..한없이 깊은 우울

[2046]의 스틸 한장에 눈을 떼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양조위가 한 여자를 안고 있는 사진이죠. 여자는 등을 보인채 남자에게 안겨있습니다. 양조위는 여자의 어깨 넘어 허공을 응시하고 있지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한장의 사진에 양조위의 모든 것이 담겨있지 않은가요. 여자를 가슴에 안은채 이처럼 처절하게 우울한 눈빛을 지닐 수있는 남자가 양조위말고 또 있을까요. 양조위는 자기복제와 쾌락이 넘쳐나는 홍콩 영화계에서 마치 고요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더 깊어지고 여유로워지는 배우가 바로 양조위라고 생각됩니다. 그는 할리우드를 거치지 않고도 세계적인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한 중화권 유일의 연기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소하고 평범한 외모의 이 남자의 어디에서 도대..

[내머리속의 지우개]..그리고 알츠하이머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예전 국내외 영화들에서 백혈병과 폐결핵으로 죽어갔던 수많은 미인들을 떠올리게 되더군요. 그 시절, 백혈병과 결핵에 걸린 여자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이 새하얀 얼굴에 하늘하늘한 몸매를 지닌 섬세하기 짝이없는 미인이었던지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고통을 참는거라든지 가냘프게 쿨럭쿨럭 기침을 하던 모습이 어찌나 우아해보이던지...솔직히 어린시절 한두번은 흉내까지 내봤던 기억이 나네요.(흐억!) [춘희]를 영화로 리메이크한 [카미유]의 그레타 가르보에서부터 [라스트 콘서트]의 스텔라(배우 이름은 모르겠습니다)까지, 그리고 [선물]의 이영애를 비롯한 숱한 한국의 미인 불치병 환자들까지, 이 계보에 오른 여성은 아마도 수없이 많을 겁니다. [내머리 속의 지우개]는 고..

콜래트럴- 마이클 만을 사랑하는 이유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에게도 지성이 있다면, 마이클 만의 영화엔 지성적 테스토스테론을 끓는다. 그의 영화는 마초적이다. 그러나 마이클 만의 마초에게는 근육이 없다. 대신 그들에게는 일말의 감상이 끼어들 틈이없는 냉철한 현실주의와 일체의 환상을 거부하는 철저한 허무주의가 있을 뿐이다. 현존하는 미국 감독들 중 마이클 만처럼 남성적이면서도 동시에 허무주의적 영화색깔을 가진 이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또한 그만큼 미국 갱스터 누아르 장르를 풍요하게 만들고 새롭게 진화시켜온 감독도 없다. 인기감독의 명성을 안겨준 TV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부터 [맨헌터]와 [라스트 모히칸]을 거쳐 [히트]와 [인사이더][알리]를 거쳐 최신작 [콜래트럴]에 이르기까지 마이클 만은 거칠고 절망적인 상황에 던져진 한남자의 처절한 ..

[연인], 장예모의 진화 또는 변절?

장예모의 신작 '연인'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역시 스펙터클한 비주얼이다. 당나라 도성의 기방 깊은 곳에서부터 대나무 숲과 억새풀 우거진 들판을 거쳐 광활한 흰눈밭으로 장예모는 관객들을 휘몰고 다니며 현란한 액션과 색깔의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중 한사람인 장예모가 작정하고 스타일의 극치를 선보인만큼, 이 영화의 비주얼은 빼어나다. 두 남자주인공의 칼싸움이 낙엽지는 가을에 시작해 눈보라치는 겨울까지 이어지거나, 가을에 죽은(줄만알았던) 메이(장쯔이)가 눈 밭에 파묻혔다가 멀쩡히 기사회생하는 '대륙적 과장(또는 허풍)'마저도 이 영화의 탁월한 비주얼 덕분에 쉽게 잊혀질 정도다. 특히 장예모의 전작 '영웅'이 외국어영화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미국시장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연속 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