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영화로 본 세상

이란의 마이클 무어를 아시나요

bluefox61 2008. 6. 9. 23:41

마수드 데나마키. 이란에서는 매우 유명한 영화감독이지만, 국제영화계에서는 아직 낯선 이름이다. 

별명은 ‘이란의 마이클 무어’ . 그만큼 그의 영화가 매우 사회적이며 논쟁적이고 파격적이란 의미다. 좌파인 마이클 무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데나마키는 ‘울트라 보수 이슬람주의자’란 점이다.


해외에서는 이란 영화감독하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내친구 집은 어디인가>) ,마지드 마지디(<천국의 아이들>), 자파르 파나히(<서클>), 모흐센 마흐말바프(<칸다하르>) 등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 주목할 만한 이란 영화감독 명단에 최근 마수드 데나마키란 이름이 추가됐다. 지난해 개봉된 <에크라지하(Ekhhrajiha. 영어제목은 Outcasts)>가 4주만에 100만달러 이상의 놀랄만한 흥행성적을 올리며 일대 화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흥행기록은 역대 이란 영화 흥행 톱3위 안에 끼는 것이다. 개봉 며칠만에 테헤란 시내에 불법복사본이 유포됐을 정도로 사회적인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최근 기사에서 마수드 데나마키를 집중 조명하면서, 극도로 보수적인 이슬람 사상을 가진 그의 영화들이 이란 대중의 가슴 속을 파고드는 이유를 분석했다.

데나마키의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가 이란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이란 내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헤즈볼라의 지도자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앞서 그는 1979년 이란 혁명에도 참여했고, 1980년부터 8년동안 이어진 이란-이라크전쟁에도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99년 국립테헤란대학교 학생들이 진보언론 ‘살람’의 강제폐간조치에 항의하는 봉기를 일으키자, 데나마키는 안사르 헤즈볼라 조직원들을 이끌고 야밤에 학교로 습격해들어가 시위중인 학생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던 것으로 악명을 얻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데나마키는 개혁개방주의자들에 대한 테러로 유명했다. 당시 데나마키는 CNN의 분쟁지역전문 저널리스트 크리스틴 아만푸어와 단독 인터뷰를 가질 정도로 무장단체 지도자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랬던 그가 2002년 느닷없이 영화감독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단순한 변신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가 내놓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제목부터 파격 그 자체였던 것. 


<가난과 매춘(Poverty and Prostitution)>이란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이란 사회에서 엄격하게 금기시되는 매춘의 실태, 그것도 빈부격차로 인해 비롯된 매춘의 뿌리를 파헤친 작품이었다. 

그보다 2년 앞서 자파르 파나히는 베니스영화제에 출품한 <서클>이란 작품에서 매춘과 사회불안을 그렸다는 이유로 이란내 개봉불가 등 탄압을 받아야했었다. 2년뒤 그는 또다시 다큐멘터리 <어떤 푸른색 ,어떤 붉은색(Which Blue,Which Red)>을 발표했다.


<에크라지하>는 데나마키의 극영화 데뷔작. 이란어로 ‘부랑자들’이란 의미다. 이 작품이 이란에서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이란-이라크전을 일종의 ‘성전’으로 묘사해왔던 기존 영화들과 너무도 다른 방식으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때문이었다. 이란에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이슬람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한 성스런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에크라지하>에서 감독 데나마키는 일체의 미화를 거부하고 있다 .주인공 마지드는 사회에서 낙오된 부랑자다. 경찰에 잡혀 교도소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한 후에도 그는 자신이 오랜 기간동안 메카 순례를 하고 돌아왔다며 주변사람들에게 ‘뻥’을 친다. 

약물중독자, 좀도둑 친구들과 어울리며 허송세월을 하던 그에게도 어느날 중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아름다운 한 여성에 대한 짝사랑에 빠진 것. 그는 그녀에게 용기를 입증해보이기 위해 ‘성스러운’ 이라크 전쟁터에 나간다. 

영화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부랑자 데나마키와 그 일당들이 군대에서 벌이는 온갖 해프닝을 코믹하게 비틀어 묘사하는가하면, ‘순교’를 자처했던 성직자와 지식인들이 전쟁터에서 두려움에 벌벌떠며 비겁자로 변하는 과정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란 ?이라크전을 이렇게 블랙코미디로 묘사하는 방식은 기존의 이란 영화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데나마키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와 인터뷰에서 “안사르 헤즈볼라 지휘자였을때도 나는 상투적인 관념이나 행동을 깨부수는 사람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실상에 관한한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 에크라지하>를 만들면서, 전쟁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려했다. 용기와 두려움, 승리와 패배가 엇갈리지 않는다면 진짜 전쟁이라고 할 수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시각 때문에 ,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이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크리스턴 사이언스 모니터에 따르면, 이 영화의 메이킹필름에는 배우들이 거침없는 대사 때문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담겨있다고 한다. 

한 여배우는 데마나키로부터 대사를 받아든 후 눈에 띄게 떨면서  “평소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영화를 만든다는사실을 알면 경찰이 와서 전부 잡아갈 것이다. 제발 이 영화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개봉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고.


데마나키는 현재 이란 영화사상 최대 자본이 들어가는 대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무장단체 지도자 시절이었던) 과거엔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통 국민들을 비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젠 부패한 지도층이 문제란 사실을 깨닫았다. 그들은 이슬람 혁명의 평등과 정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했다. 감독으로서 이 같은 문제를 영화 속에 적극 담아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이후 그의 정치관은 과거의 무력투쟁노선에서 벗어나 이슬람과 모더니즘의 공존을 모색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최근 데마나키 감독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사회악을 막고 정의를 구현하는 일보다 여성의 복장규제에나 매달리는” 정책을 맹비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