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원제는 incendies. 우리말로는 '불에 그을려 타버린 사람들'이란 의미)'는 국내외 블럭버스터영화들이 넘쳐나는 8월의 국내 극장가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현재 개봉중인 덴마크 영화 '인 어 베터 월드'와 함께 올해 초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상 부문(수상작은 '인 어 베터 월드')에 나란히 올랐던 이 작품은 와이디 무아와드의 동명 연극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중동출신이 아니면서도 이 연극에 완전히 매료됐던 빌뇌브 감독은 익숙치않은 중동역사를 공부하고 레바논, 요르단등을 실제로 방문해가면서 이 영화를 준비하고 연출했다고 합니다.
영화는 중동의 어느 한 곳인듯한 어떤 지역의 허름한 집안에서 어린 사내아이들이 남자어른들에 의해 삭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무런 대사없이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란 강렬한 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막 머리가 깍이고 있는 대여섯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카메라를 쏘아봅니다. 이 아이는 왜 이런 곳에서 머리가 깎이고 있는 것일까요. 아이는 강제로 소년병이 되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살폭탄테러에 동원되려하는 것일까요?
카메라는 이제 어느 추운 겨울날 캐나다의 몬트리얼에 있는 한 공증인 사무소를 비춥니다. 공증인 앞에는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이 앉아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어머니 나왈 마르완이 공증인을 통해 남긴 유언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의 유언은 이렇습니다. 너희 아버지를 찾아서 편지를 전해라. 너희 형(오빠)을 찾아서 편지를 전해라. 편지를 전했다면 내가 너희 두사람에게 남긴 편지를 공증인으로부터 받아라. 내가 남긴 요청을 모든 행했다면 내 시신을 땅에 묻고 묘비를 세워도 좋지만, 만약 행하지 못했다면 옷을 모두 벗겨 얼굴이 땅쪽을 향하도록 뒤집어 묻은 다음 비석조차 세우지 말아라.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매는 기가막힘니다. 아버지는 두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형(오빠)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들 시몽은 화를 냅니다. "평생 어머니는 정상이었던 적이 없어요. 장례식만큼은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치를 겁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해할 수없는 태도와 생활방식으로 자식들을 너무나도 힘들게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딸 잔느는 어머니의 유품을 치우던 중 낡은 사진한장을 발견합니다. 아마도 20대 초반쯤이었을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잔느가 평생 알고 지냈던 우울하고, 반쯤은 미친사람같고, 이해할 수없었던 ,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늙은 어머니는 그 사진에는 없었습니다. 대신 사진 속의 어머니는 강직한 눈망울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입니다. 잔느는 생각했을 겁니다. 이랬던 어머니가 왜 그렇게 변해버린걸까. 어머니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사람(아버지와 오빠)에게 남긴 편지 내용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 아버지와 오빠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결국 잔느는 말리는 시몽을 뒤로하고 캐나다를 떠나, 사진 한장을 들고 어머니의 고향을 찾습니다.
영화는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나가면서, 자신들이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고국의 참혹했던 현실을 인식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며, 결국엔 자신의 뿌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다룹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빌뇌브 감독이 나왈 마르완이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고, 임신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끔찍한 폭력에 잃는 고통을 겪고, 자식을 잃어버리며, 결국엔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리는 '고국'이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끝까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레바논 내전 상황을 잘 모른채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다소 어리둥절할 수있습니다 . 영화는 사실 마르완 가족의 허구 이야기( 어쩌면 이 가족의 비극적인 사연도 레바논의 수많은 가족이 겪었을 실화인지도 모릅니다) 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의 실화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내전당시 레바논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레바논 남부지역에서 성장한 마르완이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첫 설정부터 이스라엘 건국이후 인접국 레바논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상황을 고려할때 충분히 있음직한 일입니다. 팔레스타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가톨릭계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 역시 당시 수많은 연인들이 겪은 일이었을 겁니다. 마르완이 아기를 포기하고 고아원에 맡긴 후 대도시(영화 속의 도시는 레바논의 베이루트가 아닌 가상도시)로 가서 대학생이 되고 진보정치운동에 뛰어드는 것이나, 정치혼란으로 내전이 발생하는 과정도 실제와 매우 흡사합니다. 특히, 마르완이 고아원에 맡겨둔 아이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기독계 민병대가 저지르는 끔찍한 이슬람계 버스탑승객 학살사건을 목격하는 에피소드는 레바논 내전이 격화되는 계기가 됐던 실제 사건 그대롭니다. 기독교계이지만 친이슬람테러리스트가 돼서 기독교계 정치인을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은, 1982년 레바논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지 3주만에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었던 팔랑헤당(=카타엡당) 지도자 바시르 게마엘 암살사건을 그대로 재연해내고 있습니다. 실제 게마엘을 암살한 사람은 남성이지만, 영화속 마르완처럼 프랑스 파리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지식인 하비브 샤르투니 역시 기독교계의 악행을 끝장내기 위해 자진해 테러리스트가 됐다가 붙잡혀 악명높은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한 후 내전이 끝나기 직전인 1990년에야 석방됐다고 합니다.
빌뇌브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의도적으로 '레바논'을 감춘 이유에 대해 "분노의 연쇄고리라는 주제에 보편적인 힘을 부여하기 위해 실제사건을 시적으로 변용한 원작의도를 살렸다"고 말했습니다. 즉 마르완 가족, 레바논이 겪은 비극과 분노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라도 벌어질 수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영화는 레바논 내전 그 자체보다, 고통스런 과거를 함께 헤쳐나감으로써 결국엔 이해와 사랑에 도달하는 가족의 내면에 집중하려 했다는 겁니다.
마르완, 잔느, 시몽 그리고 이 영화 속에서 가장 '그리스 비극'적인 인물 아부 타렉. 어쩌면 내전에 휩쓸려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아부 타렉일 겁니다.(영화의 핵심 열쇄를 가진 사람인만큼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습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사는 "과거란 목구멍속에 박힌 칼처럼 빼내기 힘든 것이다"입니다.
빌뇌브 감독은 이 영화를 "분노의 연쇄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작품"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네 사람은 과연 그 빼내기 힘든 목구멍 속의 칼을 빼내고 이제 자유로와졌을까요.
빌뇌브 감독은 올해 카를로비바리영화제 '특별전'에 초대받는 등 불과 4편의 작품을 만든 감독으로는 이례적으로 평단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카를로비바리가 김기덕 감독을 특별전으로 조명해, 유럽의 인기작가로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셈이지요.
현재 빌뇌브 감독은 마틴 스코세즈가 제작을 맡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등, 할리우드의 열렬한 콜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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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을 계기로 레바논 내전과 현재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속 장면장면이 레바논의 실제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해, 복잡하기 짝이없는 레바논을 공부하기엔 더 없이 교재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감독은 레바논이란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 기회에 레바논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레바논 내전이 끝난지 20여년이나 됐는데도 그곳의 혼란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2005년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했던 라피크 하리리 전총리가 폭탄테러로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가 하면, 곧 이어 친시리아계 정부의 축출을 요구하는 그 유명한 '백향목 혁명'이 발생했고, 2006년 7월에는 이스라엘이 자국 군인을 납치해간 레바논 헤즈볼라를 응징하겠다면서 국경을 넘어 침공을 단행해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총선에서 남부 이슬람거주지역을 장악한 헤즈볼라당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켜 친시리아정부는 물론 전세계를 깜짝놀라게 했고, 헤즈볼라와의 연정이 붕괴되면서 오랜시간 정정불안이 계속됐다가 지난 6월에야 겨우 헤즈볼라측이 추천한 친시리아계 온건파이자 성공한 기업인 출신인 나집 마카티 총리가 취임하면서 나라꼴이 조금은 안정을 되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 영화 속 장면을 통해 레바논 내전이 왜 일어났으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가톨릭신자 어머니와 팔레스타인 난민 사이에 태어나 가톨릭 고아원에서 성장한 아부 타렉은 왜 이슬람민병대 저격수가 됐다가, 기독교민병대의 교도소 고문기술자가 됐을까요.
아부 타렉이 종교를 넘나들면서 살인마가 된 데에는 레바논의 복잡한 종교 및 인종 구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레바논의 종교,인종구성 표를 보겠습니다.
왼쪽으로는 지중해, 오른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은 예로부터 인종과 종교가 복잡하기로 유명합니다. 지중해 건너 유럽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중동의 다른 국가들과 밀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프랑스 식민시절에는 베이루트가 '중동의 파리'로 불릴만큼 세련되고 자유로운 문화교류지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의 작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자서전에 보면, 이스라엘 건국전 베이루트가 얼마나 서구화된 대도시였는지 잘 알 수있습니다.
레바논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은 같은 아랍족인데도 이슬람신도도 있고, 기독교 신도도 있어서 인종만으로 정확하게 구분을 지을 수가 없다는 점때문일겁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아랍인인데도 기독교 신자가 많고, 내전 당시 기독교 우파 팔랑헤당(카타엡당)민병대의 악행이 극에 달했던 것은 레바논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종파별 거주분포지형을 보겠습니다.(2009년 기준)
가장 인구가 많은 종교는 역시 이슬람에서 수니와 시아파입니다. 그다음 마론파는 5세기 시리아 수도자 마론에서 비롯된 기독교의 한 파벌로, 주로 시리아에 신도가 많습니다. 정확한 교리는 모르겠으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단시하는 종교로 알고 있습니다. 내전의 핵심 당사자 중 하나이지요. 또다른 기독교파는 로마가톨릭입니다. 영화 속의 마르완 가족은 이슬람신자들이 많은 남부지역의 소수파인 가톨릭마을에 살고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드루이즈는 이슬람 시아파에서 갈려나온 종파로, 일신교를 숭상하고 이슬람과 달리 일부일처제 남녀평등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밖에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알라위파, 이스마일파가 있고, 기독교계로는 그리스 정교파가 있습니다.
종교가 이렇게 복잡하고, 갈등이 심하기때문에 레바논에서는 의회 의석도 종파별로 엄격하게 할당돼있습니다.
대체로 대통령은 기독교계인 마론파에서 나오고, 총리는 이슬람 수니,국회의장은 시아파 쪽에서 나오는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르완의 아들 아부 타렉은 이슬람민병대가 남부지역을 장악해 가톨릭고아원을 접수하자,
이슬람군인들의 손에 의해 자라나면서 저격수로 키워집니다. 그랬다가 기독교민병대에 체포된 후에는 다시 고문기술자로 훈련을 받고 악명높은 교도소에 배치되는 것이지요(아마도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원래 가톨릭고아원 출신이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겠지요). 이 교도소는 내전때 이스라엘 군이 장악한 남부지역에 실존했던 교도소를 모델로 삼은 듯합니다. 이런 교도소는 한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은 영화 속 마르완처럼 재판도 받지 못한채 고문당하고 , 살해당하고, 강간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영화 속에서 '버스학살'을 저지르는 기독교 민병대는 누구인가.
영화 속에서 마르완은 몇해전 고아원에 맡긴 아들을 찾기 위해 , 대학생활을 하던 대도시(아마도 베이루트)를 떠나 남부지역으로 향합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남부지역은 팔레스타인난민들이 대거 유입된 곳이며,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군(PLO)의 근거지였고, 내전때는 기독교계 민병대에 의해 끔찍한 학살을 당한 곳이며, 이스라엘군에 의해 오랜세월 점령당했던 비극의 땅입니다. 마르완은 목에 늘 걸고 다니는 나무 십자가를 풀어 가방에 감춘채 이슬람계 사람들로 가득찬 버스를 타고 남부땅을 가던 중, 기독교 민병대와 마주칩니다. 버스안에서 유일한 기독교신자인 마르완은 십자가를 꺼내 보여줄지말지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무차별 총격이 퍼부어지고 버스에 휘발류가 끼얹어져지는 순간, 결국엔 '나는 기독교 신자다'라고 외치고 살아나게 됩니다. 하지만 민병대가 던진 불길에 버스가 불타버리고, 어린 소녀까지 총격으로 사망하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합니다. 그가 기독교신자이면서도 반기독교파가 되고, 이슬람조직에 들어가 기독교계 정치인을 암살하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입니다.
레바논 내전(1972~91년)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선 학설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2차세계대전 이후 정정불안, 팔레스타인난민유입에 따른 종족, 종교적 갈등, PLO유입 등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는데는 의견이 일치됩니다.
직접적으로 내전이 불붙게 된 것은 1975년 기독교민병대의 유명한 '버스 학살'이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앞서 75년 4월 13일 팔레스타인계로 추정되는 무장괴한들이 4명의 팔랑헤 조직원을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슬람계주민들이 타고 있던 버스 한대에 팔랑헤가 무차별 총격을 퍼부은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버스안에 타고있던 26명이 몰살했다고 합니다.
유사한 집단학살로는, 내전중인 82년 9월 16~18일 수도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계 거주지역인 사브라와 샤틸라에서 기독교 민병대가 학살을 저지른 사건이 있습니다. 이 곳은 82년 6월 PLO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갈릴리 평화작전'이란 이름으로 레바논 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이 장악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기독교민병대가 자기네 관할구역을 급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 학살하는 것을 수수방관, 아니 사실상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팔랑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목에건 십자가를 보십시오.
3. 영화 속 정치인 암살사건은 실제로 일어났나.
1982년 내전중에 레바논에서는 대선이 치러집니다. 여기서 팔랑헤(카타엡당) 초대당수 피에르 게마엘의 아들이자 지도자인 바시르 게마엘이 당선됩니다. 종교는 당연히 마론파 기독교인지요. 이탈리아와 스페인 파시스트정당을 모델로 삼아 1936년 창설된 팔랑헤가 저지른 악행은 당시에도 국제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는데,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바시르 게마엘을 "레바논에 희망의 빛을 가져다주는 젊은 지도자"로 치켜세웠습니다. 중동에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니, 미국으로선 어쩌면 당연히 편을 들만했겠지요. 그래도 '희망'이라니 너무했습니다.
그가 당선된 후 3주후 한 남성이 그를 겨냥한 폭탄테러를 감행합니다. 이름은 하비브 샤르투니.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지식인이었습니다. 영화 속 마르완처럼 그도 종교에 상관없이 ,진보적인 좌익사상에 경도됐던 것같습니다. 종교는 마론파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레바논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선 악의 상징인 팔랑헤 지도자 게마엘을 죽여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게마엘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위층에 폭탄을 장치했고 원격장치로 터트려 게마엘을 비롯한 20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이후 곧 체포된 그는 8년간 악명높은 루미에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고, 90년 석방됐다고 합니다.
바시르 게마엘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남부에서는 정당조직으로 변신한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강력합니다. 레바논은 지난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암살당한 사건이후 친시리아계 세력이 장악한 정치체제의 변화를 촉구하는 백향목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혁명으로 75년이래 레바논 평화유지를 내세워 주둔해왔던 시리아군이 30여년만에 철군하는 대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2006년 이스라엘 군과 헤즈볼라 간의 전쟁으로 정부조직이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됐고,
2009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헤즈볼라당 출신 의원들이 각료로 임명되는 연합내각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총선에서는 친서방파 '3.8세력'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헤즈볼라를 포용하는 연합내각이 출범한 것이지요.
하지만 하리리 전총리 암살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하리리 죽음에 시리아와 이란의 사주를 받은 헤즈볼라가 개입됐다고 주장하면서 야권소속 장관 11명이 항의사표를 던지는 바람에 지난 1월 연정이 와해됐습니다. 장기간 정치혼란이 계속되다가 5개월 남짓 후인 지난 6월에야 헤즈볼라가 온건파 미카티를 총리로 내세우면서 겨우 정부 꼴이 갖춰지게 됐습니다.
<레바논 주요 연표>
1946년 프랑스 군정체제로부터 독립
1975년 내전 발발
1978년 이스라엘, 레바논 내전 개입
1992년 내전 종식
2000년 이스라엘 군, 레바논 철수
2002년 총선서 반시리아계 야당연합 승리. 라피크 하리리 총리 취임
2005년 2월 14일 하리리, 폭탄테러로 사망
2005년 2∼3월 친시리아 정부 퇴진 요구하는 '백향목 혁명' 발발 및 레바논 주둔 시리아 군 철수
2007년 유엔, 하리리 암살 관련 '레바논특별법정'설립
2010년 무장정파 헤즈볼라 참여 연립정부 출범
2011년 하리리 암살조사 관련 갈등으로 연정 붕괴 및 '레바논특별법정' 용의자 4명에 대한 공소장 공개
2014년 1월 16일 '레바논특별법정' 첫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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