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너무나도 성숙한 노르웨이 국민의식

bluefox61 2011. 7. 29. 14:26
"더많은 민주주의와 인도주의,관용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르웨이 국민들이 `행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총리와 국왕의 호소를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지 않았다. 증오와 비난 대신 사랑과 관용의 상징인 장미꽃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노르웨이 국민들이 `참여 정치'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정당으로 몰려가고 있다. `나만 잘먹고 잘사는 것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없다'는 새로운 자각은 적십자사 등 구호단체 회원 급증과 기부금으로 나타나고 있다

29일 현지 공영방송 NRK와 로이터통신 등은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 하랄 5세 국왕이 대국민연설에서 민주주의와 인도주의의 가치를 역설한 후부터 노르웨이 각 정당과 구호단체의 신규가입 신청이 폭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당가입이 늘어난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정당활동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국정에 반영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존 정치시스템에 대한 신뢰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같은 현상은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수개월째 재정위기,긴축재정, 연금개정 반대시위로 몸살을 앓고있는 서유럽 각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집권여당인 노동당은 물론 반이민 극우성향의 진보당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당에서 최근 며칠사이 입당 신청이 수백건씩 폭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노동당의 스베인 한센 대변인은 "총리의 호소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으로 해석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입당신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1887년 창당한 노동당은 한때 20만명의 당원수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약 5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센 대변인은 정확한 신규입당자 숫자를 밝히지 않았으나, 연정파트너인 `사회주의좌파당'의 최근 입당자가 약 300명을 기록한 것을 볼때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된다.
 
2009년 총선에서 약2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진보당에는 최근 487명이 입당했다. 1973년 창당한 진보당의 당원수는 약 2만7000명이다.
마자르 케슈바레 대변인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휴가철인 7월에 당원 수가 증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입당이유를 적는 난에 `테러에 맞서 나라가 단결하기 위해선 나자신이 정치적으로 보다 적극적이 될 필요성을 느꼈다'는 글이 많았다"라고 밝혔다. 노르웨이에서는 오는 9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이민자 유입, 다문화정책,극우주의 등에 대해 유례없이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노르웨이 적십자사는 지난 22일 연쇄테러사건 이후 오히려 기부금과 회원 가입신청이 급증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NRK와 인터뷰에서 "지난 15일부터 소말리아 기아돕기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22일 사건전까지 10만 크로네에 머물렀던 기부금이 사건후 폭증하기 시작더니 현재 300만 크로네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노르웨이교회구호'단체에도 100만크로네에 가까운 기부금이 쏟아져들어왔다. 스벤 몰레클레이브 적십자사 총재는 "테러가 노르웨이 국민들의 인도주의와 국제연대의식을 더 강화시켰다"고 말했다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의 7월 29일자 경향신문 기고 글>


여태까지 ‘평화 국가로 알려져 있었던 노르웨이는 이번의 오슬로 참극이 계기가 되어서 그 이면을 드러내고 말았다. 우리에게 노르웨이는 무엇보다도 ‘사민주의 복지국갗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의 비극이 보여주었듯이 모든 노르웨이인이 사민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2011년 7월 중순에는 사민주의를 대변하는 노르웨이 노동당의 지지율이 29% 정도였지만, 테러범이 한때 몸 담았던 극우정당 ‘진보당’의 지지율도 무려 20%에 이르렀다.

진보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진보당’의 주된 목표들은 무엇인가? 지금 노르웨이 국내 상장 기업 총(總)주가의 약 30%를 차지하는 거의 모든 국영기업의 민영화, 민영병원 위주의 의료체제 구축, 1년 내 ‘비(非)서구 이민자’의 수를 1000명으로 제한하고 그 중에서 피난민의 수를 100명으로 제한시키는 초강경 이민규제다. 공공부문이 발달하고 ‘다문화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내거는 오늘날 노르웨이로서는 이와 같은 강령이 ‘미친 정책’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친 정책’을 유권자들의 5분의 1이나 지지한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복지국가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위한 경제질서’ 같은 것이 법제화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복지국가란 다수를 위해 일부 세액을 재분배하는 메커니즘을 일컫는 것일 뿐이다. 복지국가들 중에서도 노르웨이는 유독 강력한 공공부문을 보유하긴 하지만, 일단 다수의 생산수단은 대기업들이 소유한다.
에너지기술 등을 생산하는 기업 ‘아케르 솔루션스’ 주식의 다수를 소유하고 있는 켈 인게 러케나 노르웨이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알려진 ‘부동산 왕’ 울라브 툰 등 소수의 대자본가들은 복지국가의 테두리 안에서도 생산부문을 좌우하고 있다.

세계 대다수의 부자들이 그렇듯이 그들도 신자유주의를 신봉하고, 세율의 인하와 대대적 민영화 조치 등을 갈망한다. 그들의 이상적 모델은 이번 참사의 테러범도 찬양해 마지 않은 저(低)세율과 노동자 해고의 자유, 부동산투기 자유의 왕국, 즉 대한민국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꼭 이민자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평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한민국이나 일본을 벤치마킹해서 ‘문화적으로 다른’ 다수의 근로이민자들의 정착을 막는 이민규제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큰소리를 칠 수도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기층민중은 배타적 감정의 유포를 통해서 정치적 자본을 축적하려는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정당인 ‘진보당’을 왜 지지하고 있는가?
하기 싫은 말이지만, 상당수의 민중을 ‘진보당’의 지지자로 만든 것은 바로 노르웨이의 온건좌파, 특히 오랫동안 권력을 견지해온 노동당의 실책, 즉 신자유주의의 부분적 수용이었다.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는 규모이지만 노르웨이에서도 지난 20여년 동안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많은 민중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노동당이 방관해온 저임금 국가로의 제조업 이전으로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의 중심지에서 실업이 발생하고, 우체국의 독립법인화도 체신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수천명의 실업자를 만들었다. 국가와 지역자치단체들이 청소를 비롯한 비본질적 업무를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악화됐다. 국영병원의 예산 부족이 야기한 여러 문제들은 상당수 일반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와 같은 반(反)민중적 정책을 실행해온 것이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는 온건좌파 세력인 노동당이었기에, 수많은 과거의 노동당 지지자들은 만악의 근원이 ‘무절제한 이민자 유입’이라는 거짓말로 민심을 잡아보려는 극우파 포퓰리스트들에게 가버리고 말았다. 온건좌파가 좌파성을 잃었기에 극우파가 양산된 것이다.
전투적이고 철저하게 반(反)신자유주의적 ‘좌파 야성의 부활’만이 극우파의 창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좌파가 극우들과의 투쟁에서 이기려면 일단 자기 원칙에 충실한 반신자유주의적 실천부터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