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샬럿 램플링

bluefox61 2008. 2. 18. 15:43
예순을 바라보는 여자의 섹스를 아름답게 그릴 수있는 영화감독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프랑스 감독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랑수아 오종의 2000년작 [사랑의 추억](원제는 [모래 아래(sous le sable)])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만큼, 이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의 섹스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지요.

이 영화의 DVD 서플먼트에는 오종 감독이 장면장면마다 어떻게 연출했는지를
직접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주인공역의 여배우가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누드 연기도 해야 한다는
점때문에 캐스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나이든
여배우들은 젊지 않은 육체를 화면에 드러내야한다는데 모두들 고개를 내저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오종이 50대 여주인공의 섹슈얼리티와 마음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 바로 샬롯트 램플링이란 아름답고 걸출한 여배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인 셈이지요.

46년생이니까, 올해 나이 57세. [사랑의 추억]이 2000년도 작품이니까, 램플링이 54세때 찍은 영화이군요.

[사랑의 추억]은 제 개인적으로, 한동안 기억의 창고 한 구석에 조용히 잠자고 있었던
램플링이란 배우에 대한 추억과 느낌을 재발견하는 기쁨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십수년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 젊었을때와는 또다른 완숙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더군요.
제가 50세가 넘었을때, 그녀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멋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램플링의 아름다움은 여느 여배우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지요.
서늘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오래전 그녀가 제 가슴에 맨 처음에 와서 박혔던 것은
바로 그 눈매때문이었습니다. 눈꺼풀이 눈동자의 절반쯤에 걸치는 나른한 눈매라고 할까.
아무튼 뭐라 표현할 수없는 그 묘한 눈매는
유리조각같은 날카로움과 연약함, 얼음처럼 차가울 것같으면서도 그 밑에는 활활타는 불길이
숨겨져있는 듯한 , 정숙하면서도 퇴폐적인,첫맛은 달콤하지만 뒷맛은 떫고 씁쓸한
오래된 레드와인같은 ,그런 복잡미묘한 것이었죠.

모델로 사회활동을 시작했으니 미모야 타고 난 것이었지만,
이처럼 강렬한 개성으로 인해 램플링은 영화계에 진출해서도
평범한 역할과의 거의 인연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처음 만난 영화도 , 그 유명한 릴리아나 카바니의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
였습니다.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아우슈비츠의 나치 고문관과 우연히 25년만에 재회한 여자는
마음 속 깊이 그를 혐오하면서도 몸으로는 남자에 대한 기억과 갈망으로 진저리치지요.
이 영화로 램플링은 70년대 유럽 시네마의 새로운 디바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밖에 램플링은 프랑스 주재 영국 외교관 부인이 고릴라와 사랑에 빠지는 희안한 이야기인
[막스 , 내사랑](프랑스 문화원의 그 퀴퀴한 극장에서 화면 위로 펼쳐지는
고릴라와 여자의 정신적, 육체적 사랑행각을 바라보며
적잖이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을 비롯해 ,
[심판][엔젤하트][스타더스트 메모리] 등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구축해나가게 되지요.

데뷔이래 거의 쉰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왔는데 불구하고
국내에 그리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 남편 장 미셀 자르는 유명한 영화음악가)
유럽 여배우(영국에서 태어났지만 활동은 거의 프랑스에서 하기때문에 
국적은 별 의미가 없는듯합니다)란 점과,
대중적인 오락영화와는 인연이 거의 없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50대에 접어들어, 30대의 신성이었던 오종 감독을 만나
제2의 연기인생을 열게 된 것은 램플링에게 크나큰 행운이라고 할 수있겠지요.
[사랑의 추억]에서 어느날 갑자기 해변가에서 남편이 실종된후(자살로 추정되는),
남편이 도대체 무엇때문에 사라져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아내의
절망적인 심정과 치욕감 같은 것등을 램플링은 미묘한 얼굴표정, 몸짓 하나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오종과의 두번째 작업인 [스위밍풀]은 이보다는 훨씬 경쾌하고 가벼운 분위기이지만,
내면에 들끊는 성과 살인의 욕구를 품고있다는 점에서 역시나 범상치않은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하지요.


'푸른여우의 영화 이야기 > 내가 사랑하는 배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전 서랜든  (0) 2008.02.18
장만옥  (0) 2008.02.18
[킬빌]의 배우들  (0) 2008.02.18
게리 올드먼  (0) 2008.02.18
양조위  (0) 2008.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