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여우의 세상 이야기/내가 본 세계

"거리로 나가 흙을 묻혀라"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

bluefox61 2013. 11. 29. 16:05

"교황을 알현했을 때 첫마디가'책상을 팔라'였다. 사무실에 앉아있지 말고 바티칸 밖으로 나가라는 의미였다. 사람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흙을 묻혀 더러워진 교회'를 역설하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자선담당 비서인 콘라드 크라예프스키(50·사진)  추기경이 28일 AP통신 등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격의없이 다가가는 '행동하는 교황'의 일화들을 공개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최근 베드로광장에서 마주친 한 병자를 어루만지는 모습. 

베네치오 리바(53)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선천성 장애로 얼굴전체가 일그러지는 병을 앓고 있으며, 

교황이 전혀 거리낌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포옹하고 입을 맞춰 감격했다고 말했다.


 

폴란드 출신인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지난 3월 교황의 개인 자선 담당 비서로 임명됐다. 대통령 특별교부금 관리자처럼, 교황을 대신해 어려운 사람들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일종의 '자선 구급대원'이라고 할 수있다. 공식 직함은 영어로 '알모너(almoner)'. 왕실이나 교회가 서민들에게 내리는 시혜금을 관리하는 사람을 칭한다. 


13세기때부터 역대 교황이 개인 자선담당 비서관을 둬왔지만, 은퇴를 앞둔 원로 고위 성직자들이 맡는 일종의 명예직이었던 이 직책이 교황 프란치스코에 들어와서 180도 바뀌게 됐다고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전했다. 50세인 '젊은' 성직자인 자신을 자선 담당 비서로 임명함으로써, 교황이 바티칸 내부의 형식적이었던 직책을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는 것이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매일 아침 교황이 바티칸 헌병을 통해 전달하는 편지다발을 받는다. 편지마다 '어떻게 도와줄지 알아보시오''나가서 만나보시오''대화해보시오'란 교황의 친필이 쓰여있다. 이탈리아 및 각국에서 온 이 편지들은 교황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들을 들고 밖으로 나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교황의 이름으로 '맞춤형 도움'을 주는게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의 일이다. 최근에는 3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람페두사 불법이민선박 전복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된 사람들이 고향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할 수있도록 전화카드 1600장을 사서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가장 인상깊었던 일화로,  교황이 불치병을 앓는 18개월된 아기를 둔 젊은 부부의 편지를 받은 후 직접 자신의 숙소로 초대해 함께 자고 식사하며 위로했던 일을 꼽았다. 부부는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불치병을 앓는 아기를 둔 부모의 절절한 심정을 전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호소했다. 


교황은 부부가 사는 집으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을 보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도록 했다. 그 이후 아기의 상태는 더 나빠졌고, 교황은 이번에는 바티칸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이들 가족을 초청했다. 이들은 교황이 머물고 있는 소박한 호텔에서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교황은 일요일 베드로광장 미사를 집전하면서 아기이야기를 꺼냈고,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신도들과 함께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젊은 부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전했다. 

 

지난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개인 자선담당 비서를 통해 집행한 일종의 특별교부금은 약 100만유로(14억 4156만원).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올해는 전년 대비 2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규제없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독재'로 비판하면서 '빈자들을 위한 교회'' 탈바티칸중심적 교회'로의 개혁을 선언했다. 또 전세계 정치인들에게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 것처럼 오늘날 (불평등한)경제가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이 26일 발표한  84쪽 분량의 '사제로서의 훈계(복음의 기쁨)' 문서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개혁방향을 제시했다고 라스탐파, BBC 등이 보도했다. 교황은 직접 작성한 이 문서에서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차단하고 투기행위를 근절하는 등의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라며 경제적 불평등은 궁극적으로 폭력사태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집 없는 노인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돼 죽는 것은 기사가 안 되고,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기사가 된다"고 맹목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교황은 특히 "지나친 중앙화가 교회의 생명과 선교활동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늘 이런 방식으로 해왔다고 말하는 태도를 벗어라"라고 사제들에게 요구했다. 또 " 조직의 안위에만 매달리는 교회보다는 길에서 뒹굴며 상처입고 때가 묻어 더러워진 교회를 더 좋아한다"면서 거리로 나가 평신도들과 함께 할 것을 선언했다. 그런가하면 "이슬람 전통을 가진 나라로부터 존중받기 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온 이슬람 이민자들은 준중하고 사랑으로 포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사제, 낙태 등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BBC, CNN 등 외신들은 이 문서를 교황의 교회개혁 로드맵, '교황판 '내겐 꿈이 있어요' 연설' 등으로 표현하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내겐 꿈이 있어요'는 흑인 인권목사 마틴 루서 킹이 1963년 워싱턴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흑백인종이 화합된 미국을 감동적으로 제시한 명연설이다. 


전문가들은 교황의 이번 문서가 전임 교황들의 학문적이고 교리중심적인 글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단순하고 따뜻한 설교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