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사막에서 연어낚시' 의 원제는 '예멘에서 연어낚시하기(Salmon Fishing in Yemen)'입니다.
'개같은 나의 인생''초콜렛'등으로 잘 알려진 라세 할스트룀 감독의 2011년도 작품이지요. 이완 맥그리거가 영국의 어류학자인 알프레드 존슨 박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에밀리 블런트가 컨설팅회사의 열정적인 직원인 해리엇 쳇우드 탤보드, 그리고 전형적인 '정치 홍보꾼'인 총리 홍보수석으로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출연하는 영화이죠. 원작은 폴 토데이의 2007년도 동명 소설입니다.
<연어프로젝트에 회의적인 존슨박사를 스코틀랜드 성으로 초대해 함께 연어낚시를 하며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예멘 출신의 갑부 셰이크 무하메드>
원작자가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중동 국가 중 예멘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어쩌면 중동 국가 중 예멘이 그나마 연어가 서식할 수있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예멘 북부 고원지역에는 연평균 강우량이 1000~1500밀리에 이르고, 여름 평균기온이 21도 겨울에는 0도로 연어가 서식할 수있는 환경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처럼 댐고 있고요. 하지만 예멘 장면은 모두 모로코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치안불안때문이었겠지요. )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랑스런 로맨틱코미디입니다. 삶에 안주해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거나,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어떻게 새로운 인생 또는 관계를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할스트룀의 작품답게 동화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국제뉴스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으로 영화 속의 주요 배경이 되는 예멘에 대한 묘사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전반적으로 영화는 최근 수년간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박한 정치상황, 테러활동, 내전 등을 거의 무시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영화만 보면, 예멘에 약간의 보혁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테러와는 거리가 먼 나라인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하지요.
한국인으로서 예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09년 3월 고대도시 시밤에서 발생한 한국인관광객 겨냥 자살폭탄테러 사건일겁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4명이 목숨을 잃었지요. 시밤은 '사막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진흙고층건물들이 밀집해있는 매우 특이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예멘정부는 한국인 관광객 4명과 예멘인 관광가이드 1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사태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자살폭탄테러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발표했었죠. 경찰은 18세 이하 미성년자를 자살폭탄테러범으로 지목했고요. 그로부터 약 3달 뒤인 6월에는 예멘에서 NGO동료들과 여행하던 여성 엄영선씨가 납치된 후 9월에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도 있었고요.
<예멘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시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죠. 2009년 한국인 테러가 난 곳도 바로 시밤을 내려다보는 언덕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꼭 가보고픈 곳 중 하나인데... 어떻게 진흙벽돌로만 저런 고층건물을 지은걸까요.5층부터 11층까지 다양한 높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신기한 모습입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저런 고층빌딩숲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지 너무 궁금합니다. >
아라비아 반도의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예멘은 아프리카-중동-아시아 대륙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수백년전부터 향료무역로의 주요 거점이 됐던 곳입니다. 1500년 대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편입됐다가 19세기 중반에 일부분이 영국 통치를 받기도 했고, 1918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붕괴되면서 독립해 이맘 야히야 가문이 예멘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62년 내전이 일어나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왕당파와 이집트 지원을 받는 공화국파가 무력 충돌을 벌였고, 1967년 남예멘이 공산체제인 '예멘인민민주공화국'로 분리독립하면서 예멘은 분단국가가 돼죠.
이후 남북 충돌이 계속되다 1990년 결국 통일됐고, 통일국가의 초대 대통령으로 알리 압둘라 살레가 당선됩니다. 1978년부터 북예멘의 대통령이었던 살레는 2011년 '아랍의 봄' 열풍으로 하야선언을 하고, 이듬해 2012년 초 물러나기 전까지 무려 30년이 넘도록 철권을 휘둘렀지요. 현재 대통령은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입니다.
예멘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들의 은신처 중 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살레가 장기독재를 했다고는 하지만 계속된 내전, 부족갈등 속에 중앙정부의 치안력이 취약한데다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각종 총기 및 납치 사고가 잦은 국가이죠.
특히 예멘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빈 라덴 자신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났지만요.미국 등은 예멘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들의 거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0년 10월에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폭탄을 적재한 소형 보트를 타고 예멘 아덴항에 정박해 있던 미 해군 구축함 USS콜호를 공격해 미 해군병사 17명이 사망했습니다 . 이 사건은 최초의 해상 자살폭탄테러였지요. 소설 '예멘에서 연어낚시하기' 가 출간된 해인 2007년 7월에는 예멘 중부 고대 사원에서 자살폭탄테러로 스페인인 7명과 예멘인 2명이 사망하기도 했고요.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 저술가인 로버트 카플란은 '제국의 최전선-지상의 미군들'이란 저서에서 미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예멘을 이렇게 묘사하지요.
"오사마 빈 라덴과 싸우는 미국이 아무리 거세게 요구해도 살레 대통령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에 미국인은 그제 곁에 두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견제용으로나 써먹을 또 하나의 미친 부족에 불과할 뿐이예요. 알카에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멘에서는 부족제도가 정부도다 강하고, 때에 따라서는 이슬람보다 강합니다."
국제 무기조사 기관인 ‘스몰암스 서베이’에 따르면 예멘 전체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 수는 1700만정(2007년 기준)으로 성인 1인당 평균 3정의 총기를 보유하고있다고 합니다. 최근 4년간 발생한 4만5000건의 범죄 중 절반이 총기 사용으로 인한 것이었죠.
알카에다는 2011년 아랍의 봄 시위가 예멘으로 확산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를 예멘에 두고 있습니다 . 알카에다는 2012년 하디 대통령의 취임식날 대통령궁에 자살 폭탄 테러와 공격을 감행, 정부군 수십명을 살해하는 등 끊임없이 테러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특히 소말리아) 인들이 예멘으로 넘어와 AQAP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예멘에 막대한 대테러 지원자금을 주고 있고, 드론공격 지원도 해주고 있는거죠.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직접 예멘을 방문한 적도 있고요.
하디 정부 출범이후 나라꼴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예멘에서는 여전히 테러가 끊이지 않는데다가 시아파 분리주의 세력인 후티족과의 내전도 이어지고 있지요. 정부군과 후티 반군은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내전으로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십만명의 난민을 만들어냈고, 지난 9월 21일에는 후티가 사나를 장악하기까지했지요. 정부와 후티는 현재 협상중인데, 10월 25일 기사에 따르면 정부측에서 후티와의 타협 조건으로 정부 각료직 6개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후티의 편에 섰다간 우방이자 수니파 종구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발에직면하게 되고, 반대로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알카에다를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는 후티가 국경지대까지 확산하자 19일 "테러단체(후티)가 국경을 침범하거나 마약이나 무기를 밀수하는 하는 행위를 감시하려고 경계태세를 최고로 올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우디는 후티가 같은 시아파인 이란과도 연관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죠. 라다 지역에선 후티와 AQAP 측이 21일부터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여왔으며 24일 밤 다시 전투가 재개되면서 양측에서 사상사 수십명이 났고요.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사막에서 연어낚시'는 고국 예멘에 댐을 세워 국민들에게 풍부한 수자원을 공급하고, 아울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려는 에멘출신 갑부 셰이크 무하마드가 영국 어류학자 존슨박사와 쳇우드-탤보트 등의 도움을 얻어 '연어낚시' 이벤트를 벌이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요. 존슨 박사는 당연히 '미친 발상'이라며 , 제안을 거절하고요. 하지만 셰이크 무하마드에게 연어낚시는 그냥 단순한 낚시질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 불가능을 이룰수있다는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작가가 '예멘에서 숭어낚시'나 '예멘에서 붕어낚시' 라고 하지 않고 '연어'를 선택한 것도 연어의 회귀본능, 온갖 고난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가는 그 독특한 습성 때문일테이고요.
영화 속의 셰이크 무하마드는 영국에서 큰 돈을 벌어, 스코틀랜드에 으리으리한 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 자신이 연어낚시 광이고, 낚시를 통해 인내와 겸손을 배웠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결국 존슨박사는 '강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가 되기로 해보죠. 영화 속 셰이크는 1987년 예멘 북부 마리브에 댐을 건설했던 아랍에미리트연합의 통치자였던 셰이크 자예드 빈 술탄 알 나이한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여러 부족(에미리트)가 결합된 왕국인데, 셰이크 자예트 빈 술탄 알 나이한이 소속된 부족의 뿌리가 바로 예멘의 마리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상의 땅에 댐을 건설해준 것이죠.
그 댐의 물줄길 어딘가에 연어가 살고 있을까요. (영화 개봉 후 영국 관광부는 "에멘에서 연어낚시관광이 가능한가"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현재는 불가능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고 하니, 아직은 불가능한 꿈인듯합니다)
예멘이 언젠가는 풍요한 나라, 평화로운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예멘의 오늘과 미래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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